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광웅 Apr 02. 2016

100일 내가 본 유럽-런던(Ⅱ)

햇살, 날씨

2015년 8월 25일


런던 국회의사당


햇살- 버킹엄 궁전


도중에 값싼 파스타를 구입해서 공원에서 먹고 있는데 내가 하고 있는 게 여행이 맞나 회의감이 몰려왔다.

일정에 쫓겨서 보는 것도 제대로 못 보고 런던 물가에 눌려서 먹고 싶은 거 제대로 못 먹고 샌드위치 생활을 하는 내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초라했다.

비는 그쳤지만 날씨가 추워서 바람막이를 입고 있는데도 부들부들 떨렸고 발에는 힘이 없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10'


여행을 위해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계획하고 그걸 이행하기 위해 바쁘게 다녔는지 모른다. 나는 국회의사당 관람을 마치고 버킹엄 궁전에서 하는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 뛰어갔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 일정이 있었지만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서는 공원에 들를 여유가 없었다. 사람들은 이미 버킹엄 궁전 앞 쪽에 들어 차 있었고 나는 다가갈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근위병들이 궁전 내에서 교대식을 마치고 내쪽으로 행진해 왔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뛰면서 촬영한 근위병 교대식
비가 내리고 있는 버킹엄 궁전 앞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구경하고 나온 후 날씨는 언제 맑았냐는 듯이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비가 와도 런던에서의 일정은 소화해야 했다. 버킹엄 궁전에 있는 로열 뮤즈와 퀸즈 갤러리를 구경한 후 서둘러서 켄징턴 궁전까지 구경했다. 다음 일정이었던 테이트 브리튼을 보기 위해서 지하철을 탔는데 방향이 달라서 계획된 시간에 차질이 생겼다. 결국 계획했었던 테이트 브리튼 일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뭐라도 하나 건지고 싶어서 파스타를 사 들고 오전에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던 세인트 제임스 파크로 들어왔다. 런던의 공원 답게 수많은 새들이 보이고 사람들은 강아지들을 끌고 다니며 산책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우산을 쓰고 다녔지만 런던 사람들은 날씨가 익숙한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닌다. 내 몸은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공원 의자에 앉아 있다 보니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왔다.


내가 하는 게 여행 맞나?...



여행이라고 하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관광지를 거닐고 우아하게 걸어 다니면서 낭만에 빠지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겨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모습은 런던 날씨에 지쳐서 우울해하고 일정은 빡빡해서 쉴틈 없이 돌아다니고 물가에 짓눌려서 길거리 음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힘이 없었다. 춥고 배고팠다... 그러던 중에 우중충했던 런던의 하늘에 한 줄기 햇빛이 들어왔다. 갑자기 하늘이 밝아지고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햇빛은 버킹엄 궁전 쪽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햇빛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버킹엄 궁전으로 가는 길에
햇살. 버킹엄 궁전


햇살이 이렇게 소중한 존재였나?

 햇살을 받으니 몸은 다시 따뜻해지고 우울해졌던 내 기분은 점차 회복되었다. 언제 지쳐있었냐는 듯이 내 몸은 놀라울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유럽 사람들은 햇빛이 나면 잔디밭에 나와서 햇살을 받으며 일광욕을 즐긴다고 들었을 때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건 그쪽 사람들이 여유로워서 여과 시간을 즐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런던을 여행하면서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여기서 햇살은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였다. 햇살이 없이는 우울해져서 조금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날씨가 흐린 그들에게 일광욕은 여유가 아니라 축복이다.


빅벤과 2층 버스. 런던



2015년 8월 26일


식물원 내의 온실 건물


날씨- 큐 왕립 식물원


도서관에 나오자 언제 비가 쏟아졌다는 듯 거짓말처럼 날이 맑았다.

이제 이런 날씨 변화에 익숙해져야 하지만 나는 아직도 런던의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햇빛을 받으니까 축 처졌던 내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11'


 2일간 비 때문에 고생했으니까 오늘은 아니겠지?


런던의 날씨만큼 여행자에게 매정한 곳이 있을까?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큐 왕립 식물원에 도착하기 전까진 괜찮았다. 그 이후 변덕스러운 날씨가 문제였다. 정원의 특성상 밖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비가 오면 이동이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 비는 바람을 동반해 세차게 몰아쳤다. 날을 완전히 잘못 잡은 샘이다. 비 때문에 춥고 우울한데 바람에 의해서 신발 안으로 빗물이 다 들어왔다. 나는 양말이 다 젖은 채로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온실 안에 들어가서 몸을 녹이고 나와도 밖에 나오면 나의 몸은 다시 흠뻑 젖었다. 식물원을 마쳤을 땐 런던의 날씨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내 모든 고생이 이 날씨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 화가 났다.


큐 왕립식물원 온실 내부


대영 도서관으로 이동하는 길에는 날씨로 인해서 열차 신호가 고장 나 열차가 연착이 되었다.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서관에 도착해서도 제대로 관람을 할 수 없었다. 날씨로 인해서 몸의 온도가 떨어져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며칠간 비 때문에 고생을 하고 나니까 몸서리가 났다. 런던의 날씨는 인정하기 싫었고 괜히 나에게만 이렇게 혹독한가 싶었다.


대영 도서관을 나왔을 때 런던의 날씨는 다시 한번 바뀌었다. 언제 비가 쏟아졌느냐는 듯이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고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우울했던 감정이 사라지고 따스함을 느끼니 다시 힘이 나기 시작했다. 나에게 온갖 고생은 다 시켜놓고 이제 와서 나를 달래다니... 화가 나다가도 햇살을 느끼니까 런던의 날씨를 미워할 수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은 아직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필요 없는 것이란 없다. 런던의 날씨를 통해서 나는 잊을 수 없는 경험들을 느끼면서 배웠다.


대영 도서관
캠든 마켓
매거진의 이전글 100일 내가 본 유럽-런던(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