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lesse Oblige』 와 "Outrageous"(3)
『Noblesse Oblige』 와 "Outrageous"(3)
자 이제 자매들의 삶을 대략 살펴보았으니 다시 낸시의 에세이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낸시의 에세이에 대해서는 앞의 글(귀족이란 무엇인가?(1) https://brunch.co.kr/@europeanhistory/41)을 참고해 주세요.
낸시는 귀족과 일반인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뿐일까요? 귀족이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본질은 결국 그들이 행사하는 영향력에 있습니다. 미트포드 자매들은 권력에 대한 접근성, 사회적 영향력, 그리고 경제적 윤택함이 당연하게 주어진 세계에서 자랐습니다. 그들에게 유명 정치인이나 고위 권력자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고, 그저 이웃이거나 친척, 혹은 가족의 친구에 불과했습니다.
드라마에서 낸시 역할을 맡은 연기자 베시 카터는 이러한 배경이 자매들에게 “놀랄 만한 자신감"을 부여했으며, 이는 자신들의 행동이 일으킬 후폭풍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게 한 요인이었다고 분석합니다. 그들 스스로는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못한 듯한데 낸시가 말하는 U 화자들의 언어 'Hon'이 'Honourable'의 약자라는 작가 이블린의 주장에 데보라는 그것은 원래 암탉을 뜻하는 “hen”에서 나온 농담일 뿐이었다고 일축합니다. 자매들 사이의 사소한 언어유희가 영국 지성계를 뒤흔든 논쟁의 씨앗이 된 셈이죠.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유니티와 히틀러의 관계는 드라마에서도 매우 인상적으로 묘사됩니다. 유니티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자 빗발치듯 전화가 걸려옵니다. 전화를 받는 어머니는 비록 이름 앞에 '레이디'라는 칭호가 붙는 남작가의 여주인이지만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집안일을 하는 평범한 주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리즈데일 남작이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문 앞에는 이미 수십 명의 기자가 대기하고 있었고, 그들은 미트포드 가문이, 나아가 영국 귀족 전체가 유니티의 정치적 입장에 동조하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그들에게 유니티는 그저 치기 어린 한 젊은 여성이 아닙니다.
실제로 유니티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는 가족 내에서도 찬반이 갈렸고 드라마에서도 종종 갈등 유발의 요인이 됩니다. 이는 더 나아가 당시 영국 귀족 계층 전체의 상황이기도 했는데 제시카의 남편 에스먼드 로밀리는 유니티와 정반대 입장에 선 대표적인 귀족 자제였습니다. 그는 처칠의 조카였고 명문 이튼 스쿨에 진학했으나 중퇴하고 1935년에는 이튼의 교육을 과격하게 비판하는 책을 출간하기도 합니다. 이미 십 대 시절부터 사회주의와 반파시스트 운동의 선봉에 서서 극 중 제시카의 가슴을 뛰게 했지요.
그럼 이런 젊은 귀족들의 행보가 왜 그리도 언론의 주목을 받고 국민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던 것일까요? 전통적으로 영국의 귀족들은 그저 부유한 상류층이 아니라 실질적인 영국의 지배 계층이었습니다. 마그나 카르타로부터 현대의 상원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영국 의회정치의 상징이며 국가를 직접 운영했을 뿐 아니라 늘 국가와 운명을 같이 해 왔습니다. 왕실 역시 그들의 일부입니다.
낸시가 그의 에세이에서 이제 유럽에 남아 있는 진정한 귀족은 오직 영국 귀족뿐이다라고 말한 근거도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20세기 초 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전쟁의 선봉에 서서 죽어간 수많은 귀족과 엘리트 젊은이들의 존재는 크나큰 국가적 손실인 동시에 국민들을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중 버마에서 전사한 미트포드 집안의 외동아들 톰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이는 영국의 왕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무용론과 여러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하겠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단순히 '가진 것의 일부를 나누는 한 줌 선의'가 아니라 그들이 행사하는 영향력이 사회 전체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책임의식을 의미합니다. 낸시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비록 가난하나 품위 있게 살아가는 한 귀족 가문의 삶을 소개하며, 중산층이 돈과 권력을 좇는다면 귀족은 그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명예와 영향력을 추구한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상류층이라면 자신의 선택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무게를 이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법적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새로운 형태의 상류층을 흠모합니다. 그 때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전통적인 귀족들은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대중 매체는 여전히 그들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누군가는 그 이미지를 흉내 내며 상징적 특권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 특권이 지닌 책임의 무게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그들이 절대 진짜가 될 수 없는 이유지요.
그러나 이 자매들의 삶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도전은 그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저는 ‘역사적 교훈’이라는 표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생각의 확장은 반드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정된 사고방식의 깨어진 파편은 어떤 모양이든 그 자체로 사유의 지평을 확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고 똑같이 폐쇄적인 환경에서 자랐으며 특유의 'Hon'을 공유했으나 세상을 향한 그들의 생각과 삶의 방향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사람의 삶, 그들이 만들어가는 역사란 이런 것입니다. 한 인간은 그를 둘러싼 모든 것에 제약을 받으나 그 어떤 것에도 전적으로 지배받지 않습니다. 그 어떤 강력한 제도도, 제도도, 터부도, 종교도 누군가에 의해 반드시 도전을 받고 아무리 견고한 틀에도 균열이 생기며 언젠가는 깨어집니다.
온갖 풍파를 경험한 후 자신이 속한 계층이 나아갈 길을 고민한 낸시의 통찰은 분명히 가치가 있지만 미트포드 자매들의 삶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바람직한 귀족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 각자가 보여준 ‘나’라는 존재를 둘러싼 세계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려는 의지는 결국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고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다른 존재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진 지점에서 생명력은 스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의 인물들에게서,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내 안에서 그 생명력의 불씨를 찾아내는 즐거움은 소소하면서도 참 값진 것입니다. 오랜만에 이러한 즐거움을 선사한 드라마 Outrageous Season 2의 빠른 출시를 강력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