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외계인 알피의 책 이야기
알피 시리즈는 참 오랜만이라 혹 알피가 누구냐 하실 분들을 위해 지난 글을 링크합니다.
https://brunch.co.kr/@europeanhistory/30
알피는 책을 무척 좋아하는 만 11세 꼬마 외계인이고, 요즘은 거의 활자 먹깨비 수준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읽을거리를 섭렵하는 중입니다. 이번 학기에 고대 그리스를 배웠으니 곧 역사 교육 관찰기(4)를 쓸 수 있겠군요.
미리 밝혀두어야 할 것은 알피의 독서는 학교 성적이나 앞으로의 진로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독서 노트는 초반에 좀 쓰다가 2학년쯤 되어서는 아예 손을 놓았고, 부모도 아이가 읽는 책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지 않습니다.
아이의 문해력 수준은... 사실 모릅니다. 얼마 전 읽은 『동물농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슬쩍 물어본 적이 있는데, 돌아온 답은 “나폴레옹은 못됐어. 돼지들이 왜 우유를 다 먹어?” 뭐… 이 정도면 대략 알 만하지요?
부모가 알피의 독서에 신경 쓰는 사항은 단 하나, 아이가 나이에 맞는 책을 읽고 있는가입니다. 기본적인 원칙은 “권장 나이 + 1~2년 정도까지는 무엇을 보든 제한하지 않고, 그 이상은 부모가 반드시 미리 보고 판단하여 허용한다”입니다.
이 원칙은 어린 시절 아버지 서재를 놀이공원인 양 탐험하며 나이에 맞지 않는 온갖 놀이기구를 몸소 체험하다 여러 번 크게 다친 경험이 있는 알피 엄마의 경험에서 나왔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얻은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판단입니다.
그럼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커서 무엇이 될까요? 물론 개인마다 다르겠으나 알피 엄마의 예를 보면 그냥 “어릴 때 책을 좋아했던 어른”이 됩니다. 여전히 읽는 일을 하고 있긴 하나, 어릴 적 바짝 마른 해면이 물을 빨아들이듯 책을 탐닉했던 시절은 아쉽게도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네요.
그래서 밥을 먹을 때나 차를 탈 때나 무엇인가를 기다릴 때나, 암튼 잠깐이라도 틈이 나면 계속 책을 읽고 오디오북을 듣는 아이를 보면 그 시절의 제 모습이 생각나 부럽기도 하고, 아이의 세계에 저도 잠깐 머리를 들이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건 사실 아빠도 비슷한 마음이겠지만, 아이도 자신만의 취향과 세계가 있는지라 가능한 한 아이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각자 다른 전략으로 조심스럽게 틈을 파고드는 중입니다.
서론이 길었군요. 자, 첫 번째 사진은 알피의 픽입니다. 아이는 학교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들르는 동네 서점에서, 3학년 때부터 구독 중인 어린이 시사 잡지 "The Week Junior"와 월간 과학 잡지 "Science+Nature"에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친구들의 입소문으로부터 보고 싶은 책 목록을 가져옵니다.
그러면 일단 학교 도서관이나 지역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책은 빌리고, 킨들로 봐도 괜찮을 듯한 책이라면 e-book으로 사고, 여러 번 보고 싶거나 꼭 갖고 싶은 책은 구입해 줍니다. 사진에서도 보이듯 알피가 요즘 관심을 갖는 분야는 신화, 추리소설 및 탐정놀이, 그리고 그림 그리기입니다.
여기에 더해 셜록 홈스 시리즈와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 아라비안나이트는 e-book으로 읽는 중인데, 소장하고 싶은 예쁜 책을 발견하면 사주기로 약속한 상황입니다. 이런 책들은 영국에서는 e-book 가격이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일단 e-book으로 먼저 사놓는 편입니다.
두 번째 사진은 아빠의 픽입니다. 아빠는 주로 비문학과 과학 담당인데, 3학년쯤 담임 선생님과 상담 중 아이의 독서가 스토리 쪽에 치우쳐 있다는 피드백을 받은 후, 아이가 관심을 가질 만한 과학책들을 골라 잠자리 독서 시간에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빠와 함께 하는 잠자리 독서는 돌 무렵부터 계속된 루틴인데, 소리를 들어보면 요즘은 반은 책, 반은 유튜브 시청인 듯합니다. 이 아빠 픽 유튜브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다뤄보겠습니다. 세트로 구입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의 안내서』는 알피가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 읽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책인데, 이제야 소원을 이뤘습니다.
세 번째는 고전입니다. 고전은 가능한 한 가장 디자인이 예쁜 책으로 사서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해 두고 지켜보다가 스스로 읽지 않는 것 같으면, 잠자리 독서 시간에 앞부분 몇 장을 읽어주며 일단 맛을 보여줍니다.
『호빗』은 2년 전쯤 시작했는데, 중간에 오크가 나오는 부분이 무섭다고 중단했다가 자신이 오크보다 커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오크가 사실 호빗보다 별로 크지 않더라고요. 일단 속도가 붙으니 잘 나가서, 곧 『반지의 제왕』도 끝을 볼 것 같습니다. 오호, 그럼 이제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볼 수 있겠군요!
알피네는 책과 영화가 모두 있는 작품은 책부터 보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입니다. 피터 래빗, 위니 더 푸 같은 유아용 애니메이션은 예외지만, 알피가 혼자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후부터는 대부분 책–영화 순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아빠와 함께 퍼시 잭슨 시리즈 중 하나를 보기로 했다고 하네요.
고전을 꼭 읽어야 하는가? 는 사실 답이 딱히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엄마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을 아이도 읽으면 세대 간 괴리가 조금이라도 줄고, 비슷한 문화적 토양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제가 좋아했던 작품 위주로 아이의 책장을 채우고 있는 중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아이에게 읽혀보고 싶은 책 + 엄마가 읽고 싶은 책 조합입니다. 이제 유희로서의 독서와는 많이 멀어진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책에 대한 일말의 호기심이 남아 있는 알피 엄마는 알피가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들과 본인이 궁금한 책들을 일단 구입해서 알피의 책장 여기저기에 꽂아놓습니다.
어린 시절, 다락방에 몰래 숨어든 생쥐마냥 아버지의 서재를 뒤지며 새로운 보물들을 하나씩 발견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탐닉했던 즐거움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생생한 기억입니다. 이제는 제법 엄마의 책장을 궁금해하고, 어떤 책들은 가끔 열어보기도 하는 알피가 자신의 책장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기쁨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물론 그 기쁨을 엄마와 나눠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고요. 그저 무심히 지나쳐 선택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뭐, 나중에라도 제가 데려와 읽어주면 될 일이지요. 언젠가 다시 놀이처럼 독서를 즐기게 되는 그날이 온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