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많이 하면 문해력과 사고력이 향상된다"라는 많이 알려진 명제에서 시작해 보겠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이 능력에는 어떤 책을 선택하느냐가 매우 큰 지분을 차지합니다. 물론 그저 즐거움으로서의 독서활동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문해력이란 글을 읽고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 사고력은 다양한 정보들의 연관관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일단 정의하고 소위 리버럴 아츠(Lliberal Arts)가 등장한 시대로 돌아가보자면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유럽 중세 대학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인간은 한 카테고리 안에서 다뤄졌습니다.
인류가 어떻게 공유하는 상징체계를 발전시켰는가부터 시작하시고 싶은 분들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나 비슷한 문헌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서양의 학문 체계의 근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리버럴 아츠의 과목들을 살펴보면 이미 당시부터 자연법칙을 모방한 논리적인 사고체계에 대한 고민과 연구의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아마 『오르가논』이라는 명제집의 이름 정도는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올바른 사유의 도구로 사용되는 논리학의 기초를 놓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지요. 여기서 올바르다는 말은 좋다 나쁘다의 뜻이 아니라 자연법칙, 즉 수학적 논리에 따른 사유방식을 말합니다. 누구나 관찰 가능하고 어디에나 적용되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사용 가능한 정보 처리 방식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이후 학문이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으로 분리되고 다양한 분과가 생겨났지만 모든 학문은 여전히 이 논리 체계에 기반합니다. 예술은 학문이 아니지만 미학은 학문이고 문학은 학문이 아니나 비평은 학문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문학 역시 넓은 의미에서는 과학인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이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논리적 사고는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이는 사실 모든 근대 사회의 기초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입니다. 영국의 초등학교를 예로 든다면 단체생활과 규율에 익숙해지고 학교를 즐거운 곳으로 인식하게 하는 목적을 가진 KS1(유치원-2학년까지)이 지나면 KS2(3-6학년) 과정 중 앞의 두 학년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훈련합니다.
방법은 엄청난 양의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문제 해결 능력(problem and solving)을 중점으로 한 수학교육입니다. 이 시기에 아이들의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균형입니다. 아이마다 읽는 속도와 지적 능력이 다르므로 일정한 양을 정해 주지는 않으나 어떤 종류의 책을 읽고 있는지는 꼼꼼한 독서 노트 점검으로 관리합니다.
돌이켜 보면 이 시기에 아이 학교 선생님과 면담했을 때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는 아이의 독서 기록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스토리와 비문학의 양적 균형, 자연과 사회에 대한 폭넓은 관심 등등.. 이전의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때부터 아이는 밤마다 자기 전 아빠와 함께 과학책을 읽었고 어린이들을 위한 시사잡지 The Week Junior를 구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학교는 학년말이 되면 1년간 공부했던 공책들을 집으로 가져옵니다. 물론 제가 가장 관심 있게 본 공책은 역사 과목이었으나 사실 놀란 부분은 글쓰기의 양입니다. 아이가 배우는 모든 과목에 관련된 다양한 글이 시나 상상의 이야기 외에 설명과 논술, 관찰기 형식으로 공책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고 그중에는 초등학교에서 다룰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던 내용들도 꽤 많았지요.
다시 독서라는 주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서를 통해 사고력을 기르려면 일단 논리적 사고에 기반한 검증된 책들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모든 영역에서 고전이라고 인정된 책들은 대부분 이 카테고리에 들어갑니다. 제가 아이의 책장에 슬며시 화려한 양장본의 고전들을 끼워 넣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지금부터는 아이가 아닌 제 경험입니다. 이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는 문자 불가사리 시절, 집에 있던 모든 종류의 전집을 무조건 1권부터 읽어치우다 우연히 발견한 사실은 “모든 지식이 연결되어 있고 A 책에서 이런 의미로 사용한 단어가 B 책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C 책은 A책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D책은 B책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나 조금 다른데 A책과 약간의 유사성이 있다”였습니다.
학문 분류 체계 따위를 알 리가 없는 초등학생이었지만 단어의 의미를 비슷하게 쓰는 책들끼리 나름 분류를 하고 그 책들을 같이 읽으면 서로의 내용을 보완해 주어서 이해가 훨씬 빠르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이후 그 책들을 묶어서 책장에 같이 꽂아놓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지나니 그 책들이 내용 안에서 서로를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저자의 이름을 보기 시작했지요. 그중에는 사이가 좋은 책도 사이가 나쁜 책도 있었고 일방적으로 무시당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서로 무시하는 책도 있었습니다.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양 들떴던 어린이는 그들이 서로에게 동의하는 부분과 동의하지 않는 부분, 서로 다른 생각의 포인트가 무엇인지 혼자 계속 생각하기 시작했고 본인이 이해가 가는 부분에 입각하여 나름대로 점수를 주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책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읽었고 그런 책들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한 구절만 들어도 그 페이지 전체가 바로 떠오릅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이어가면서 추억 속의 책들을 하나씩 다시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인 책들도 있었고 전혀 다른 내용도 있었지만 다 오래된 친구들이었죠. 물론 순위에는 큰 변화가 생겼지만요.
지금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그 책들이 대부분 고전들이었고 그들의 사유방식을 따라가며 고민했던 생각들이 통용되는 논리적 구조 안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학창 시절 따로 논술 수업을 들은 적이 없지만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적어도 논리적 사고에 대해 지적받은 적은 거의 없었던 듯합니다.
또한 그 모든 것을 혼자 했기 때문에 물론 수없는 시행착오와 비효율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지만 부모님이 굳이 도움을 주시지 않은 점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버지에게 물어봤으면 바로 해결되었을 문제들이 한 가득이나 그랬으면 그렇게 혼자 오래 고민해 본 경험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 제 아이에게는 가능한 한 다양한 경험을 시켜 주고 다양한 리소스를 공급해 주려 하나 굳이 감상을 묻거나 함께 생각해 보자 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세계는 아이가 만들어갈 것이나 리소스 안에 이미 부모의 취향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을 것이므로(물론 고질적인 귀차니즘도 85% 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요).
물론 독서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은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지요. 지금도 제 부모님이 인문학이 아니라 과학을 하셨다면, 그래서 그 책장이 온통 과학책으로 가득했다면, 아니면 부모님이 예술가여서 집이 온통 그림과 예술적 오브제로 가득했다면 하는 상상을 합니다. 그럼 여기서 지금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가지 않은 길은 항상 황홀한 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