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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을 태우고 난 뒤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1889)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자화상 (Portrait of the Artist)

- 작가 :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 제작시기 : 1889년

- 전시장소 : 파리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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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37세의 젊은 나이로 산화한 천재 화가다. 하지만 화가의 꿈을 안고 네덜란드에서 프랑스로 찾아와 활동하던 내내 철저한 무명이었고, 정신질환을 앓았다. 그러던 고흐가 아를(Arles)에 아틀리에를 차리고 활동하던 시기, 그 유명한 <해바라기> 연작을 포함하여 비로소 고흐의 작품 세계관이 원숙해진다. 물론 여전히 무명이었지만 말이다.


고흐는 아를의 아틀리에에 동료 화가를 초청하여 함께 작업하기를 희망하였지만 초청에 응한 화가는 폴 고갱(Paul Gauguin)이 유일했고, 고흐와 고갱의 관계는 두 달만에 파국에 이른다. 고갱이 자신을 조롱한다고 확신한 고흐는 귀를 자르는 자해 소동을 벌이고, 생레미(Saint-Rémy)의 정신병원에서 지내게 된다. 비록 정신은 온전치 않았으나, 그에 반비례하여 고흐의 작품은 비범한 경지에 이르게 되니 최고의 걸작 <별이 빛나는 밤>이 여기서 탄생하였다.


고흐는 생전 약 40여점의 자화상을 그렸다고 한다. 가난한 화가가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스스로의 모습을 그렸다는 말도 있다. 아무튼, 고흐의 자화상에 비추인 그의 표정과 차림새의 변화, 그것을 화폭에 담은 색감과 붓질의 변화는 고흐의 작품 세계관의 변화를 추적하는 단서가 된다.


1889년의 자화상은 마치 <별이 빛나는 밤>을 연상케 하는 "아지랑이" 패턴이 눈에 띈다. 두 작품은 같은 해에 같은 장소에서 그렸으니 당시 고흐의 불안한 심리를 나타내는 단서라 할 수 있겠다.


아를에서 원숙해진 고흐의 작품은 생레미에서 독창적인 표현을 더하며 서서히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고흐는 모든 것을 불태운 듯 결국 1년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1889년의 자화상은 그의 마지막 자화상으로 알려져 있다(이후 가족에게 보낸 자화상이 하나 더 있다고 하지만). 작품 속 불안한 눈빛과 대비되는 완고한 표정, 조금도 헝클어지지 않은 단정한 차림새는, 그의 마지막 불꽃을 보여주는 듯하다.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그림한점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개인적인 감상, 일반적인 미술사 해석, 여행 이야기 등 작품을 주제로 여러 관점의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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