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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라고 불린 작은 마을

독일 소도시 여행 - 고슬라르

by 유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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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중부 하르츠산맥(Harz) 부근에 고슬라르(Goslar)라는 소도시가 있다. 인구 5만명 정도에 불과한 작은 도시, 그런데 고슬라르의 별명이 "북방의 로마"다. 무려 로마에 비유한 별명만 보더라도 중세 고슬라르의 존재감을 엿볼 수 있다.


고슬라르는 독일여행 중 소도시가 줄 수 있는 시각적 즐거움이 높은 수준에서 펼쳐지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독일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다섯 가지 장면으로 고슬라르의 매력을 정리한다.


Scene 1. 마르크트 광장

네모반듯한 광장의 사면이 중세의 건축물에 둘러싸여 있다. 모두 하나같이 단아한 품위가 느껴지는 멋진 광장이다. 그 중 한 건물의 박공에 설치된 특수장치 시계에서 시간에 맞춰 인형극이 펼쳐지는데, 그 내용은 광부의 삶이다. 고슬라르 뒷산 라멜스베르크(Rammelsberg)는 10세기부터 광산이 존재하였으며, 1988년에 폐광될 때까지 1천년 이상 가동하였다. 광산은 고슬라르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 주었으며,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특별히 챙길 정도로 그 존재감은 어마어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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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마르크트 광장 / 우: 특수장치 시계


Scene 2. 고제강

고슬라르를 관통하여 흐르는 고제강(Gose)은, 우리 관점으로는 실개천 정도라고 해도 될 물줄기지만, 이 주변에 옛 목조 건축물이 가득하여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는 마을 풍경이 가장 잘 펼쳐진다. 특히 고제강 주변으로 오늘날 예술인의 공방과 아트숍, 박물관 등이 자리하고 있어 여행자에게도 큰 재미를 준다. 단순히 옛 모습을 보존한 것이 아니라, 옛 풍경 속에서 현대적인 일상을 누리는 재미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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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고제강 / 우: 고제강 부근 골목 풍경


Scene 3. 카이저팔츠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직접 챙길 정도의 도시. 당연히 황제의 궁전도 있다. 카이저팔츠(Kaiserpfalz)는 황제 하인리히 3세(1016~1056)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하인리히 3세는 재위 중 서로마 교황을 폐위시키고 본인이 직접 새 교황을 지명할 정도로 강력한 권력을 떨쳤다. 종교국가의 성격이 강한 신성로마제국에서 일반적으로 황제보다 교황의 영향력이 크다고 알려져 있으나, 예외적으로 황권이 더 강력한 시절이 몇 존재하는데, 하인리히 3세가 그 중 하나이며, 그 시기 고슬라르가 제국에서 중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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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4. 마르크트 교회

그 정도의 강력한 권력이 펼쳐진 현장이었고, 이 후에도 알프스 이북 지역에서 종교적 위세가 강하여 수십 개의 교회(수도원 포함) 첨탑이 하늘을 찌르듯 서 있었기 때문에 고슬라르를 일컬어 "북방의 로마"라고 불렀다. 이 작은 마을이 로마라고 불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슬라르를 뒤덮은 종교 건축물 중 으뜸은 대성당이었지만 지금은 현관 홀만 남아있다. 대성당을 본떠 건축한 고슬라르의 교회는 로마네스크 양식에 기반하고 있지만 마치 성탑을 보는 듯 높은 파사드가 특징인데, 오늘날 그 모습이 가장 잘 남아있는 곳은 마르크트 교회(Marktkirch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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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마르크트 교회 / 우: 대성당의 남아있는 부분


Scene 5. 지멘스 하우스

관광지로 유명한 카이저팔츠 등의 명소 뒤편으로 관광객이 잘 찾아가지 않는 주택가가 있다. 역시 좁은 골목마다 옛 목조 건축이 삐뚤삐뚤 고풍스러운 풍경을 완성하는데, 그 중에는 지멘스 하우스(Siemenshaus)처럼 눈에 띄는 건물도 있다. 지멘스는 독일 기업 이름으로 많이 들어보았을 텐데, 바로 그 지멘스 가문이 14세기경 고슬라르의 유력 가문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고슬라르에는 약 1500채의 중세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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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지멘스 하우스 / 우: 지멘스 하우스 부근 주택가

작은 마을이지만 "북방의 로마"라고 불린 과거에 걸맞게 부티가 흐르고 품위가 넘치는 고슬라르. 중세의 풍속을 보여주기 위한 민속촌 같은 개념이 아니라, 지금도 낡은 옛 건물에서 사람이 살고 가게가 영업하는 그런 일상의 풍경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특별한 재미가 있다.


독일에서 만나게 될 소도시가 대개 이런 식이다. 보여주기 위한 가공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가 묻어있는 일상의 공간, 나는 그래서 독일 소도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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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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