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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 같이 완성한 거탑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 바벨탑 (1563)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바벨탑 (The Tower of Babel)

- 작가 :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 (Pieter Bruegel de Oude)

- 제작시기 : 1563년

- 전시장소 :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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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이야기는 구약성서에 등장한다. 인간이 하늘에 닿기 위해 높은 탑을 쌓았고, 창조주는 인간의 언어를 흩어놓아 건설을 막았다는 스토리다. 기독교 문화권인 유럽에서 이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탑이 어떻게 생겼는지, 거대한 탑을 어떻게 쌓았는지, 이러한 부분은 상상의 영역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de Oude; 1525*~1569)은 상상 속의 바벨탑을 화폭에 옮겼다. 그는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하며 콜로세움을 보았고, 그 압도적인 위용에서 바벨탑의 힌트를 얻었다. 콜로세움의 구조로 층층이 쌓아올리면 하늘에 닿을 만큼 거대한 탑의 비주얼로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성서에 따르면 바벨탑은 미완성 건축물이다. 따라서 그림 속 바벨탑은 압도적인 규모를 가지고 있어야 함은 물론, 미완성(공사 중)이어야 한다. 브뤼헐은 콜로세움에서 착안한 탑의 모델을 바탕으로, 수많은 인부와 공사 장비, 공사자재 등 현실감을 더하는 장치를 더하였다. 그러면서 탑의 거대한 규모, 어딘지 위태롭고 기울어진 모습 등으로 바벨탑을 실감나게 시각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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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자세히 보면, 가장 꼭대기에도 깨알 같이 그려넣은 인부가 보인다. 사다리와 비계, 수레, 기중기 등 각종 장비를 디테일하게 표현함은 물론, 불을 피워 요리하는 사람들, 드러누워 쉬는 사람들, 심지어 용변을 보는 사람까지 온갖 군상이 담겨있다. 그런 가운데, "높으신 분"으로 보이는 이가 행차하여 시찰하는데, 구약성서에서 바벨탑 건축을 명한 군주로 해석되는 니므롯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린 이는 서넛 정도에 불과하고, 군주의 바로 옆에서도 정을 들고 돌을 깨고 있는 걸 보니 절대적인 권력은 아닌 듯하다.

한편, 브뤼헐은 <바벨탑>을 단지 성서 속 이야기를 재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성서에 묘사된 황량한 광야가 아닌, 건물이 밀집하고 성벽으로 방어하며 물에 닿아있는 중세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것에서 그 의도가 드러난다. 그가 활동한 16세기 초까지만 해도 성서 번역본이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화(聖畵)를 그려 성서 속 장면을 전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만약 브뤼헐이 이런 그림을 그리려 했다면 성서의 배경을 거스르는 배경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다른 목적이 있던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탑의 그림자 방향까지 계산해 채워넣은 널찍한 도시는 브뤼헐이 활동한 네덜란드 안트베르펜으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즉, 브뤼헐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바벨탑>으로 메시지를 전하고자 붓끝으로 깨알 같이 거탑을 쌓았다. 종교개혁 이후 혼란한 세상,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독립의 열망이 분출되던 시절이었고, 그 안에서도 계급 사회의 부조리가 드러난 현실을, 거대하지만 위태로운 바벨탑에 비유한 것이다.


콜로세움이 바벨탑의 모티브가 된 것도 의미심장한 해석을 동반한다. 콜로세움은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한 시절의 문물이다. 종교개혁으로 혼란한 시기, 교황청이 있는 로마의 유적인데, 그 뿌리는 기독교를 박해하던 시절의 것이라는 점에서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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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완전히 상상 속의 결과물이 아닌, 콜로세움이라는 실존하는 모델을 바탕으로 바벨탑을 설계했기 때문에 현실적인 몰입감을 준다. 인부와 자재 등 공사 현장에 깨알 같이 등장하는 장치들은 실제 공사 현장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고대 로마의 문명에 영감을 얻어 동시대의 언어로 표현하는데, 과학적 또는 공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시대를 반영한 주제를 함축한다. 그야말로 르네상스 정신의 완벽한 모범답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뤼헐은 알프스 이북 지역에서 르네상스 정신을 가장 훌륭히 표현한 거장으로 꼽힌다. <바벨탑>은 그 성취를 보여주는 단 하나의 작품으로 손꼽기에 손색이 없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개인적인 감상, 일반적인 미술사 해석, 여행 이야기 등 작품을 주제로 여러 관점의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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