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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찬란하여라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1907/1908)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키스 (The Kiss)

- 작가 :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 제작시기 : 1907/1908년

- 전시장소 : 비엔나 벨베데레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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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다. 꼭 원본이 아니어도 좋다. 사본은 반드시 보았을 테니. 나 역시 한참 다닌 회사 앞 식당에 이 그림의 사본 프린트가 걸려있어서 종종 보았다. 많은 사람이 그러할 것이다. 간첩이라도 알 수밖에 없는 그림, 클림트의 <키스>다.


그런데 벨베데레 궁전에서 <키스>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이 그림은 여기 걸린 이후 한 번도 궁전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고 한다). 포인트는 입체감이다. 그냥 사본 프린트 버전으로 볼 때에는 몰랐던 금박의 입체감이 그림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전혀 과장을 보태지 않은 말로, 완전히 다른 그림이었다. 그렇게 <키스> 앞에서 한참 빠져들었다. 비록 북적거리는 인파가 그 앞을 떠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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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는 볼 때마다 새롭다. 이후에도 취재차 비엔나에 들를 때마다 <키스>를 보았는데, 볼 때마다 새로운 포인트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느낀 기분은 남녀의 친밀한 스킨십이었다면, 다음에 느낀 기분은 벼랑 끝에 무릎 꿇은듯 발 끝이 허공에 걸린 여성이었고, 그 다음에 느낀 기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온한 여성의 표정이었다.


클림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해설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당연히 <키스>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비평가들은 이 여성이 클림트의 동반자인 패션 디자이너 에밀리에 플뢰게(Emilie Flöge)로 해석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얼굴을 보이지 않은 남성은 클림트 자신일까? 확신할만한 근거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작품 속 인물이 누구냐는 게 하등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벼랑 끝까지 내몰린 여성이 평온한 표정으로 남성에게 몸을 맡긴 것을 보면 두 사람은 매우 친밀한 사이로 보인다. 벼랑 끝과 같은 현실에서도 사랑하는 연인만은 나를 떠밀지 않고, 나에게서 달아나지 않는다는 중첩된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읽힌다. 더 아픈 사람은 나를 맡기고, 덜 아픈 사람은 그 상처를 보듬는다. 그들의 발밑에 작게나마 꽃이 핀 것은 그들의 신뢰에 조금이나마 푹신한 쿠션을 깔아주고 알록달록한 장식을 덧입히며 아름답게 가꾸어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일상적인 해석, 그러니까 남성의 의상에서 보이는 무채색의 직선적인 장식과 여성의 의상에서 보이는 유채색의 곡선적인 장식은, 각각 남성성과 여성성을 드러내는 장치라는 식의 해석에도 굳이 반대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세밀한 장식의 패턴이 주인공인 것 같지는 않다. 설령, 이 작품에서 남녀의 의상에 아무런 장식이 없다 하더라도 느낌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마치 합일(合一)의 경지에 이른 듯한 두 연인의 친밀감과 신뢰감, 그것이 벼랑 끝이더라도 변함 없다는 숭고한 가치가 핵심 메시지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금박을 입힌 클림트의 시도는 탁월했다. 알려진 바로는, 클림트가 금세공인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금을 다루는 재주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금박을 회화의 요소로 활용하는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기본적으로 금은 비싸다. 당시 비엔나 미술계의 주류를 거부하고 "분리되겠다"며 분리파(제체시온) 결성에 앞장선 클림트다. 비주류의 삶을 택한 클림트가 누군가의 의뢰 없이 오로지 작가의 자의로서 금박 입힌 작품을 만들겠다는 결심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금박을 입혔다. 그것으로 인해 작품의 생명력이 몇 갑절 피어난 것은 차치하자. 클림트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그의 시선으로 유추해보자. 아마도 클림트는 벼랑 끝에 몰려도 서로를 향한 절대적인 신뢰로 하나가 된 연인의 숭고한 사랑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금과 같은 경지에서 해석한 것으로 느껴진다. 이 작품에는 반드시 '금칠'을 해야 그 의미가 온전히 살아난다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것이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탁월한 작품이지만, 사본 프린트로 보았을 때와 원본을 보았을 때 가장 극명한 차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역시 금박의 입체감이었다. <키스>에서 금박은 단순한 기법이나 장치가 아니라, 공동 주연이나 마찬가지다. 금과 같은 사랑, 금과 같은 연인의 신뢰. 그래서 더 찬란하다.


사랑은 찬란하고, <키스>도 찬란하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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