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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커피 테이블 (1923/24)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커피 테이블 (Coffee Table)

- 작가 :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Ernst Ludwig Kirchner)

- 제작시기 : 1923/1924년

- 전시장소 : 에센 폴크방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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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감이 느껴졌다. 무언가 어색하고 불편했다. 분명 액자 속 인물들은 찻잔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한가로운 풍경 같은데, 편안하지 않고 친근하지 않은 느낌이다.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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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단서가 보였다. 각자의 시선이 모두 다른 곳을 향한다. 손짓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마 오른쪽의 여성이 한창 발언 중인 것 같은데, 맞은편의 여성은 경청하는 듯하나 그 외의 인물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어쩌면 서로 떠들고 있는 중일 수도 있어보인다. 이들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커피 테이블>은, 그가 제1차 세계대전 참전 후 몸과 마음이 아파 스위스 다보스에 머물 때 그린 작품이다. 화가가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작품 속 등을 보인 남성이 키르히너 본인일 것으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실제로 그가 고안한 가구나 장식품으로 추정되는 인테리어가 작품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 키르히너 부부(사실혼 관계의 에르나 실링과 함께 거주하였다)가 사는 집에 손님이 찾아와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렇게 동상이몽이라니.



언뜻 보기엔 도란도란 정겨운 듯하지만, 조금만 유의깊게 보면 서로 단절되고 고립된 개개인이 자기 할 말만 하는 혼란한 시간처럼 보인다. 키르히너는 많이 외로웠던 모양이다. 자신을 많이 챙겨주는 동반자와 풍경 좋은 스위스 마을에 살면서 나름 화가로서의 명성도 얻었지만 그의 마음은 늘 불안에 차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도, 자신에게 호의를 드러내는 사람도, 결국 자신과 분절된 철저한 타인에 불과하다며 그 거리감을 안은 채 살았던 것 같다.


원탁에 둘러앉아 차담을 나누는 이들의 미묘한 엇갈림이 그 거리감의 발로가 아닐까.


모두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 하지만
가슴속에는 모두 다른 마음
각자 걸어가고 있는 거야
아무런 말없이 어디로 가는가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 넥스트 <도시인> 中


그래, 키르히너는 외로운 "도시인"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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