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임 수틴, 방스의 큰 나무 (1929)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방스의 큰 나무 (The Great Tree of Vence)
- 작가 : 샤임 수틴 (Chaïm Soutine)
- 제작시기 : 1929년
- 전시장소 : 뒤셀도르프 K20 미술관
독일의 한 미술관에 방문했을 때 마침 한 화가의 작품을 모아 집중 조망하는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처음 보는 이름이었을뿐 아니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화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채로 특별전을 감상하였다. 전체적으로 일그러지고 우울한, 때로는 기괴한, 시쳇말로 '다크한' 그림들이 가득했다.
그러던 중 한 그림이 시선이 갔다. 그 전시에서 거의 유일하게 밝고 생기가 도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 거기에는 이리저리 가지를 뻗은 큰 나무가 있었다. 추상적이지는 않지만 사실적이지 않고 일그러진 듯한 느낌에 과감한 색채와 붓터치에서 감정이 한껏 느껴지는 게 꼭 고흐의 작품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화가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도 모르는채 전시장을 나섰고, 화가의 이름이 샤임 수틴이며 소더비 경매에서 그림 한 점이 2800만불에 낙찰된 '네임드'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방스의 큰 나무>는 그 제목 그대로 프랑스 방스(Vence) 마을에 실존하는 큰 나무를 그린 것이다. 늘 일그러지고 우울한 그림을 그리던 그가 유독 이 작품만은 자연의 생명력을 한껏 발산하는 긍정적인 시선으로 캔버스를 가득 채웠다. (비슷한 시기에 수틴이 유독 나무 그림에 몰두했다고 한다.)
뜬금없는 소리이지만, 한국에는 전통적으로 당산나무라는 민속문화가 있다. 수령이 오래 되어 덩치도 크고 가지도 멋들어지게 뻗은 나무를 신성시하며, 그 생기로 불길한 액운을 쫓고 마을을 지켜줄 것이라 믿으며,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방스의 큰 나무>를 보며 당산나무를 떠올린 것은 순전히 필자 개인의 '오버'이지만, 어쩌면 샤임 수틴이 이 나무가 발산하는 에너지에 매료되어 희망을 느꼈을지 모르니 감정의 결이 비슷하다.
이 작품에서 눈에 들어오는 두 번째 피사체는 사람이다. 큰 나무 그늘 아래에 사람이 앉아있다. 피사체를 세밀하게 표현하지 않는 수틴의 특성상, 이 사람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청년인지 노인인지, 웃는지 우는지, 전혀 유추할 단서가 없다. 하지만 두 발을 다소곳하게 모으고 앉은 모습은 제법 편해보인다. 미상의 인물은 큰 나무의 생기를 받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어쩌면 이 인물은 수틴의 심정을 대변하는 존재일지 모른다. 여전히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쓸쓸한 고독을 지닌 존재이지만, 큰 나무의 생기를 받으며 편하게 위로를 얻고 있는 사람. 늘 우울하고 절박하고 괴로워했던 수틴이 잠깐이지만 위로를 얻고 마음 속 고뇌와 번민으부터 벗어난 찰나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