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치는 눈빛에 긁힌 사람들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3) & 나나(1877)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풀밭 위의 점심식사 (The Luncheon on the Grass)

- 작가 : 에두아르 마네 (Édouard Manet)

- 제작시기 : 1863년

- 전시장소 : 파리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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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이제 서른을 갓 넘긴 젊은 화가는 파리 살롱전에 가로 2.6m, 세로 2m에 달하는 대형 유화를 출품하였으나 심사위원단에 의해 출품을 거절당하였다. 보수적인 심사 때문에 그해 살롱전에 탈락한 작품만 3천여점. 탈락한 화가들은 격렬히 반발했고, 황제 나폴레옹 3세는 탈락한 작품만 모아서 대중의 평가를 받도록 낙선전을 개최하도록 하다.


바로 이 살롱전에서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가장 화제성 높은 작품 중 하나였다. 물론 좋은 의미보다는 나쁜 의미로 그렇다. 숲에서 피크닉하는 네 명의 남녀를 그렸는데, 돗자리에 놓인 음식이 아무렇게나 구르는 걸 보니 애당초 점심식사가 목적인 건 아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두 남성, 그리고 완전히 벌거벗은 여성, 목욕 중인 여성. 요즘 표현을 빌려 TPO가 전혀 맞지 않는 연출인 셈이다.


이것은 젊은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도발이다. 당시 파리에는 고상하게 꾸미고 에티켓을 소중히 여기며 학식을 자랑하는 부르주아가 많았다. 그런데 이들이 숲 속에서 은밀히 매춘을 즐기는 게 유행이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앞에서는 교양 있는 번듯한 지식인으로 보이려 하나 뒤에서는 욕망에 충실하였고, 마네는 이러한 "위선"을 꼬집으려고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그린 것이다.

인물의 구도와 몸짓은 흡사 고전주의 작품 속 영웅이나 위인처럼 표현하였고, 배경도 그러하다. 하지만 위인이 있어야 할 영웅적 자리에서 벌어지는 이벤트는 매춘이다. 드러내는 구도와 연출, 감추고 싶은 사건. 이 모순적인 서사는 대중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벌거벗은 여성이 관람자를 응시하도록 그려서 눈이 마주치게 하였다. 가뜩이나 마음이 불편한데 눈까지 마주치니 속된 표현으로 "긁힌" 사람들이 많이 생긴 것이다.


노이즈마케팅이라고 해도 좋다. 살롱전에 탈락한 마네는 낙선전에서 이 한 점의 그림으로 그 누구보다 높은 인지도를 얻었고, 젊은 화가들이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메인스트림에서 인정받지 못한 화가들에게 마네라는 구심점이 생겨 일종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었고, 여기서 인상주의가 태동하는 미술사의 큰 혁명이 이어졌으니 <풀밭 위의 점심식사>의 도발로부터 시작한 나비효과가 실로 엄청나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나나 (Nana)

- 작가 : 에두아르 마네 (Édouard Manet)

- 제작시기 : 1877년

- 전시장소 : 함부르크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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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점심식사> 이후 마네의 명성은 점점 높아졌고 그의 작품은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훌륭한 평가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인기 화가로 명성이 드높은 1877년, 마네는 또 한 번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도발을 감행하였다.


제목은 <나나>. 화려한 옷을 입고 짙은 화장을 한 여성이 작품의 중앙에 서 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노신사가 의자에 앉아있다. 캔버스에 살짝 드러나는 가구는 침대로 보인다. 이번에도 마네는 매춘 현장을 날 것 그대로 화폭에 옮겼다. '나나'는 당시 상류층을 주로 상대하는 이른바 고급 매춘부가 즐겨 사용하는 예명이었다고 한다.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는 나나는 촛불을 끄고 '일할 준비'를 마친 것 같고, 노신사는 침대를 바라본다.

앞에서는 멋쟁이 노신사, 하지만 뒤에서는 욕망에 충실하다. 마네는 다시 한 번 이러한 "위선"을 꼬집었다. 하필 나나는 거울을 보지 않고 고개를 돌려 관람객을 바라본다. <나나>를 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처럼 헐벗은 등장인물은 없으나 그림을 보는 관람객에게는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게 똑같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불편한 와중에 눈까지 마주치니 또 "긁힌"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마네는 <나나>를 살롱전에 출품했으나 거절당하였다.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마네의 그림이건만, 이 작품만큼은 점잖은 사회에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거절 사유는 "도덕성을 경멸한다."였다고 하니 노골적인 도발에 여러 사람이 "긁힌" 게 분명하다.


1863년의 도발은 무명 화가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노이즈마케팅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면 1877년의 도발은? 오히려 논란을 만들면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많은 위치에 오른 마네는 왜 다시 한 번 세상을 도발했을까? 마네는 그냥 앞과 뒤가 다른 사람들의 위선을 혐오한 게 분명하다. 다시 한 번 세상을 꼬집으며, 이번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내심 기대하면서, 속으로 킬킬 거렸을지 모르겠다.


그래, 예술은 이런 사람이 해야 하는 거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