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1876)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Bal du moulin de la Galette)
- 작가 :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 제작시기 : 1876년
- 전시장소 : 파리 오르세 미술관
사람들이 몹시 행복해 보인다. 살짝 취기 오른 텐션, 주고 받는 대화, 기분 좋은 날씨. 거창한 이벤트는 없어도 좋은 사람들과 분위기 좋은 곳에서 함께 여가시간을 보내면 스트레스가 풀리기 마련. 그림 속 인물들이 딱 그런 '디톡스'의 시간을 경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너무도 유명한 그림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는 실제로 존재한 무도회장을 배경으로 한다. 우스갯소리로 범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몽마르트의 '물랭(풍차)'이 둘 있다는 말이 있다. 영화 <물랭 루즈>의 그곳, 그리고 그림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의 그 곳. 그림 속의 공간이 바로 후자에 해당한다.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이제 막 인상주의에 눈을 떴을 무렵이다. 1874년에 제1회 인상파 전시회가 열렸으니, 그로부터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에 아직 무명에 가까운 젊은 화가가 1.7 x 1.3m 사이즈의 대형 그림을 빛과 그림자로 가득 채웠다. 인상주의의 대부 클로드 모네가 주로 대자연 속에서 빛의 포착에 주목했다면 르누아르는 일찌감치 인물 군상 속에서 빛의 포착에 주목한 셈이다.
무도회장은 아름드리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가운데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스며든다. 르누아르는 마치 "밝은 덩어리"와 "어두운 덩어리"의 퍼즐을 맞추듯 큰 캔버스에 명암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때 르누아르가 그림자를 그리면서 검정색 물감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림자조차도 빛을 머금어 저마다 다른 톤의 색을 가지고 있음을, 르누아르는 간과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1초 미만의 셔터스피드로 찰나를 기록하는 사진기가 아니다. 그림은 필연적으로 오랜 작업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계속 움직이고, 그림자도 움직인다. 르누아르는 무도회장에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구도를 발견하자 재빠르게 대략적으로 스케치한 뒤 작업실에서 작품을 완성하였다. 당연히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기는 어려우니 지인에게 모델을 부탁하였다.
그러니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는 현실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포착된 찰나 위에 작가의 연출로 완성된 가상의 세상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림을 보면서 현실의 생생한 몰입감을 느낀다. 햇빛이 스며드는 따뜻한 온기, 휴일의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한가로운 기운, 모든 것이 현장을 그대로 떼어다 캔버스에 붙여놓은 듯하다.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보며 살랑살랑 불어오는 오후의 나른한 바람을 느꼈다. 기분 좋은 따뜻함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