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리뷰 - 지나고 보면 부질없음을

암펠만숍 & DDR 박물관

by 유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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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펠만숍


솔직히 말해서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아주 예쁘거나 고풍스럽지는 않다. 런던이나 파리 또는 바르셀로나처럼, 기차역에서 내리는 순간 “우와” 하며 탄성을 자아내는 중세의 계획도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사진만 봐도 설렘에 빠져들게 만드는, 낭만에 몸서리치게 만드는 그런 도시와는 전체적인 비주얼에 차이가 있다.


그런데 사실은 원래 베를린도 그런 부류의 도시였다. 아마 150년쯤 전에 베를린에 갔다면 파리와 비슷한 비주얼을 보았을지 모른다. 두 차례의 참혹한 전쟁, 그 결과로 초래한 비극적인 분단, 미학을 추구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은 환경 때문에 깊이 생채기가 난 지금의 베를린에게 “우와” 하는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을 기대하는 건 무리한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를린에 처음 도착한 날, K는 기차역에서 몇 걸음 걷기 전 “우와” 하며 소리를 질렀다. 거기에는 평범한 신호등이 있었을 뿐이다. 아니, 평범한 신호등은 아니다. 귀여운 신호등이 있었다. 빨간불과 초록불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같지만, 거기에 표시되는 캐릭터의 센스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별천지에 도달한 경지를 뽐낸다.


K는 한참 서서 빨간불과 초록불이 바뀌는 걸 구경했다. J는 “안 그래도 돼. 다음 건널목에서 또 볼 거니까.”라고 이야기했지만, K의 귀에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베를린의 신호등 캐릭터를 암펠만(Ampelmann)이라 부른다. 직역하면 ‘신호등 사람’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하고자 ‘신호등 소인’이라는 뜻의 암펠멘헨(Ampelmännchen)으로 부르기도 한다. 베를린이 워낙 디자인으로 앞서 있다 보니 그 센스의 집합체로서 최근 들어 생긴 캐릭터인가?


“아니, 암펠만은 1961년에 탄생했어.” J의 설명을 듣고 K는 신호등을 다시 쳐다본다. 이게 60년도 더 된 아이디어라니!


암펠만은 동독 정부가 만들었다. 교통심리학자가 보행자와 자전거의 안전한 통행을 위해 고안하다가 지금의 암펠만이 탄생했다고 한다. K가 신호등을 재차 바라본다. “디자이너가 아니라 심리학자가 만들었다고? 온 민족의 디자인 감각이 남다르구나. 역시 동독도 독일은 독일이네.”


아무래도 K는 암펠만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J는 그런 K를 데리고 암펠만숍(Ampelmannshop)으로 들어간다. 세상에, 거기에는 온갖 종류의 암펠만 캐릭터 상품이 존재한다. “훗날 이렇게 훌륭한 캐릭터로 쓰일 걸 동독에서도 알았을까?”


K의 질문에 J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그랬을 거야. 실제로 동독에서도 암펠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교통안전 캠페인 영상을 만들었다고 하거든.” 만화 주인공으로 재탄생할 정도의 확장성을 가졌다면 당연히 캐릭터로서의 활용성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독일 통일 후 동독의 암펠만이 사라진 시기가 있었다. 아무래도 한 나라 안에서 교통 시스템이 하나의 표준을 유지하는 게 당연하니까 구동독 지역에도 서독의 시스템을 그대로 이식받는 게 당연했으리라. 암펠만이 사라지는 건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그러나 동독 출신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저장된 암펠만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향수(鄕愁)’라는 강력한 힘을 뒤에 업고 암펠만은 기어이 캐릭터 상품으로 부활해 화제가 되고, 그 인기가 워낙 높았기 때문에 결국 원래 있던 그 자리, 신호등 속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한 나라 안에서 교통 시스템이 통일되지 못하는 셈이니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거야.” J가 말을 잇는다. “특히 독일인은 질서에 환장하는 민족이거든. 이렇게 질서가 흐트러진 걸 절대 참고 넘길 수 없어. 그걸 용납했단 말이야.”


K는 예전에 어디서 들은 말이 생각났다. 한국인이 때와 장소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식사하셨어요?”라고 안부를 묻는 것처럼, 독일인은 때와 장소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알레스 인 오르트눙?(Alles in Ordnung?)”이라고 안부를 묻는다. 직역하면, “모든 게 질서 속에 있나요?”라는 뜻이다. 한국인이 밥을 중요시하는 것과 동급으로 독일인은 질서를 중요시한다. 그 정도로 독일인에게 질서는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그걸 깼다. 이것은 마치 한국인에게 의무적으로 금식하는 수준의 결단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K는 생각했다. “귀엽잖아. 귀여운 게 제일 센 거야. 서독 출신 사람들도 이 귀여움에 홀랑 넘어갔겠지. 질서가 흐려져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큼.”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암펠만 캐릭터를 되살린 사업가도 서독 출신이고, 지금은 서베를린을 포함하여 구서독 지역까지 암펠만이 진출한 걸 보면, 향수에 사로잡힌 동독 출신이 아니어도 암펠만의 귀여움에 무장해제된 건 분명해 보인다. 암펠만이 동독 것이었다는 게 뭐 중요한가. 지나고 보면 다 부질없거늘. 그렇게 생각하는 K의 양손에 암펠만숍에서 ‘득템’한 귀여운 아이템이 잔뜩 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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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 암펠만숍


DDR 박물관


비단 암펠만뿐 아니라 동독의 생활상은 독일인에게 하나의 문화 콘텐츠 장르로 자리매김 중이다. 특히 베를린처럼 동독의 역사를 공유하는 곳에서는 동독의 콘텐츠가 하나의 비즈니스 아이템이다. 이제 세상에 없는 모습을 박제하여 현실에 끄집어냈으니,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향수를 느낄 테고, 그 시대를 모르는 이들은 신기하고 재미있을 게다. 여기에는 세대 차이도 있고 지역 차이도 있다.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세대공감 지역공감의 재미가 보장되니 장르의 생명력은 꽤 오래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DDR 박물관(DDR Museum)이 그런 곳이다. 소싯적에 오락실 펌프 기계에서 스텝 좀 밟아보았던 K가 묻는다. “DDR이 뭐야? 게임이야?”


이걸 모른다고 K를 탓할 수는 없다. DDR이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데 DDR을 모르는 게 이상하지 않은 노릇이다. “DDR은 독일민주공화국(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의 이니셜이야. 그러니까 동독이지.” 기왕이면 ‘디디알’이 아니라 ‘데데아르’로 읽어달라는 당부와 함께 J가 뜻을 일러주었다. DDR 박물관은 곧 동독 박물관이라는 뜻이었다.


혹시 박물관 속에 암펠만 같은 귀여운 게 더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며 K가 앞장서서 들어갔다. 안타깝게도 거기에 암펠만 같은 귀여움이 폭발하는 디자인 굿즈는 없었다. 하지만 동독이 존재했을 당시, 동독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무얼 먹고 마시고 가지고 살았는지 그 생생한 자료가 잔뜩 있었다.


또한, 역사 속에 실제 벌어진 사건들, 그 사건을 담고 있는 시청각 자료, 그 사건이 벌어진 시대의 동독의 모습 등 여러 전시품은 입체적으로 연결된다. 다수의 소장품은 서랍이나 캐비닛을 열어 구경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물 찾듯 박물관 곳곳에 놓인 서랍장이나 캐비닛을 열어 그 안에 숨어있는 정보를 발견한다. 그냥 구경하는 재미가 있고, 역사를 배우는 재미가 있다. 말하자면, 지성과 감성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박물관이다.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 분명 현대 시대에 존재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나라. 우리로서는 교류할 기회도 없었기에 더더욱 ‘전설’처럼 느껴지는 나라, 동독. 위대하게 보여지고자 열심히 포장했던 ‘가짜’ 모습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웃고 울며 살았을 그 ‘진짜’ 현장의 오브제와 데이터를 보고 있노라니, 이게 다큐멘터리인지 SF인지 K는 그저 어리둥절하다.


“엄밀히 따지면 남의 나라 역사잖아. 동독 역사박물관이 나하고 상관없어 보이잖아. 그런데 참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네.” K의 감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아무튼 재미있었고, 배울 점이 많았다.” 정도로 풀이되지 않을까?


막장 드라마처럼 선을 긋고 서로 대립하던 시기에는 이런 일상적인 모습조차도 누군가에게는 타도의 대상이거나 동정의 대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선이 사라지고 모든 게 하나로 합쳐진 지금의 시선에서 보니 이 또한 역사의 한 토막이었고 거기에 수많은 사람의 애환이 담겨있었으며 그 나름의 의의가 있었다. 무엇보다 세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기억을 대물림하는 가치가 있고, 그렇게 역사를 기억하는 의미가 있고, 다른 걸 떠나서 어쨌든 재미가 있다.


이렇게 될 것을 그때는 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을까. 하긴, 점쟁이도 아닌데 미래를 예견하지 못했다고 타박하는 것도 웃기다. 그냥, 지나고 보면 부질없다. 사라졌다가 되살아난 암펠만처럼 동독의 일상도 하나의 콘텐츠 장르가 되었고, 다시 살아나 세대를 초월하며 독일인과 세계인의 가슴에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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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유 : DDR 박물관

<리뷰를 보고 싶어서>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아님)에서 숱하게 반공 포스터와 통일 포스터를 그렸고, <간첩 잡는 똘이장군>을 보며 자란 세대입니다. 독일 통일을 TV 뉴스로 보았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습니다. 18년 동안 독일을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많은 역사의 기록과 기억을 접하는 가운데 통일이라는 주제를 한 발 떨어져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본 리뷰입니다. 특별히 베를린에서 본 통일의 리뷰를 여행 에세이의 형식을 빌려 전합니다.

(매주 화,목,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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