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낭만주의자가 세상을 바꾼다

by 유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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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와 K는 베를린에서 보았던 것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J는 K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네가 보기에 독일이 통일해서 잘 된 것 같아, 아니면 망한 것 같아?”


K는 굳이 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베를린의 현재를 두 눈으로 본 사람 중 “독일이 괜히 통일해서 망조가 들었다”고 답할 사람은 감히 단언컨대 지구촌 80억 인구 중 단 1명도 없을 테니까. 누구나 공통으로[common] 느끼는 그 감정[sense]이 곧 상식[common sense]이다. 상식적인 답을 구태여 입밖으로 꺼낼 필요가 있을까?


통일이 독일에게 기회가 되었고 그 결과 분단 시절보다 지금이 행복하다고 생각되면 우리도 그러한 길을 모색하는 게 옳다. 통일이 독일에게 짐이 되었고 그 결과 서독이 불행해졌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그 길을 쳐다보지 않는게 옳다. 일단 이 대명제에 있어서 '상식'은 명확한 답을 주고 있다.


리뷰를 위해 고생한 J와 K는 저자의 지성과 감성을 뜻한다. J와 K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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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베를린 장벽이 처음 무너진 보른홀머 거리 | 우: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며 한동안 설치하였던 통일정


물론 독일의 사례를 한반도에 이입하는 건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극과 극의 견해 차이가 존재하는 것인데, 그 해답도 리뷰에 힌트가 들어있다.


리뷰는 말한다. 베를린 장벽의 비현실적인 존재감을. 이런 흉물을 도시 한복판에 세워 둘로 나눈 것 자체가 합리와 지성의 영역은 아니다. 리뷰는 말한다. 선진국 수도의 위용에 어울리는 초현대식 마천루도 통일이 아니었다면 생길 수 없었다고. 만약 한반도가 분단될 때 서울도 남북으로 나누어 강남은 남한의 수도, 강북은 북한의 수도로 삼았다고 가정하자. 당연히 지금의 강변 마천루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제아무리 남한의 경제가 발전해도 마치 포츠담 광장이 그러했듯 서울 한복판이 폐허로 남았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갈등이 많이 완화되었다 하더라도 매일 이런 비현실적인 광경을 마주하며 살아야 하고, 어쩌다 사이가 나빠져 총구를 겨누기라도 하면 전쟁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것이다.


만약 내가 사는 현실이 그러하다면, 전쟁을 겪은 사람이던 그렇지 않은 사람이던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 것 같다. “이념이고 정치고 경제고 나발이고 간에 이 괴이한 분단의 현실을 고쳐야 마땅하지 않겠는가?”라고. 비정상의 현실이 매일 눈에 보이면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데, 우리는 최전방 병사를 제외하면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 현실을 외면하는 셈이다. 하지만 리뷰는 말한다. 시작이 조금 늦어도 괜찮으니 일단 방향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방향만 잘 잡으면 늦게 시작한 게 오히려 축복이 될 수도 있노라고.


리뷰는 말한다. 민족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라며 브란덴부르크문을 보려고 먼발치에서 망원경으로라도 구경해야 했듯 평범한 사람 개개인이 분단의 부조리한 현실을 깨부술 능력은 없다고. 어쩌면 지금 우리의 처지가 그와 같아서 환경에 순응하며 큰 불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 모른다. 리뷰는 또 말한다. ‘교황의 복수’라는 말을 대놓고 할 정도로 이성이 마비된 현실이 실존했음을, 그러나 상황이 종료된 지금의 시선에서 보니 별것도 아닌 것으로 유치하게 호들갑이었음을.


빌리 브란트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냉전 중 모두가 이성을 잃은 시기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대량살상무기를 없애라는 것도 아니고, 인권을 보장하라는 주문도 없고, 일단 싸우지 말고 대화 좀 하자며 손을 내밀었고, 도울 수 있는 걸 대가 없이 도왔다. 그의 재임 중 서독 내에서도 동방정책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았으며, 빌리 브란트는 ‘간첩’ 소리도 들으며 이른바 색깔론 시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으나, 우직하게 평화로 가는 길을 닦았다.


독일 통일 당시 서독 총리는 빌리 브란트와 다른 정당 소속이었다. 빌리 브란트가 소위 진보 성향의 사회민주당(SPD;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소속이었고, 통일 당시 서독 총리 헬무트 콜은 소위 보수 성향의 기독민주연합(CDU; Christlich Demokratische Union Deutschlands) 소속이었다. 즉, 통일은 진보와 보수 모두가 추구할 가치이며,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달리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어느 나라이든 노동정책을 펼 때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 어디에 비중을 둘지, 노동자와 사용자 중 어디에 비중을 둘지, 환경정책을 펼 때 개발과 보존 중 어디에 비중을 둘지, 에너지의 효율과 친환경 중 어디에 비중을 둘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정책의 지향점이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평화를 추구하는 것도 마치 노동이나 환경 정책처럼 정치적 입장에 따라 결정이 갈리는 이슈로 보이지만 어떻게 평화에 대해 진보와 보수가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겠는가. 진보 정당 소속 지도자가 '간첩' 소리를 들어가며 닦아놓은 길을 보수 정당 소속 지도자가 엎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 통일이 가능하였다는 것은 강력한 시사점이다.


리뷰는 말한다. 베를린 장벽은 우연이 겹치며 어느 한순간 무너졌음을. 베를린 장벽 붕괴 시나리오가 존재했던 게 아니다. 사실 서독 내에서도, 빌리 브란트를 포함하여 대부분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의 길이 열릴 것이라 확신하지 못했다. 설령 동서가 화해해도 주변 강대국이 모두 독일 통일을 원하지 않았으니 통일은 꿈 같은 일이었고, 게다가 동서간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 통일은 헛된 망상이었다. 이런 와중에 누가 통일을 이야기하면 “현실감각 없는 자가 헛된 꿈을 꾸고 있다”는 말을 듣기 딱 좋았다. 현실에 동떨어진 낭만주의자의 희망사항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빌리 브란트 이후 꾸준히 화해의 길을 닦아놓았기 때문에 독일은 운명처럼 다가온 그 순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우연한 '사고'처럼 베를린 장벽이 열렸고, 장벽이 열려버린 이상 주변 강대국도 억지로 틀어막을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독일은 이른바 '2+4 조약'이라 불리는 주변국 승인 아래 통일의 길을 완성했다. 만약 서독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레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다면? 높은 확률로 큰 혼란이 발생함은 물론, 자칫 무력 충돌을 야기하였을 지도 모른다. 예측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사고'를 직면할 때, 준비된 자와 준비되지 않은 자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


시나리오를 준비해 단계별로 통일을 추진하자는 건 독일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에서도 꿈 같은 일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통일을 이야기하면 비현실적인 낭만주의자라며 손가락질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주의자가 꿈을 꾸듯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어느 날 갑자기 운명처럼 통일의 길이 열릴 때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혹자는 말한다. 그 통일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리뷰가 답한다. 우발적인 충돌로 모든 번영이 한 줌의 재로 변할 가능성을 제거해버리는 것이야말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소득이라고. 여기서 비용의 손익을 계산하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이다. 또한, 만약 통일 자체는 찬성하나 비용이 문제라면 통일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비용을 줄일 생각을 먼저 하는 게 옳다. 독일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하여 통일비용을 줄이고 연착륙하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텐데, 비용을 핑계로 통일을 거부하는 것은 올바른 사고의 흐름이라 보기 어렵다.


그래도 통일의 날에 우리에게 닥칠 것으로 우려되는 혼란과 혼돈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예상은 대부분 이성적이다. 혼란이 예상되니 반대한다는 것은 나름 논리적인 인과로 보인다. 그런데 리뷰는 말한다. 어차피 지금 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자 통일 후에는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고. 지금의 사고와 상상만으로 손익을 계산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방향성이다. 선을 긋고 이대로 살 것인가, 선을 지우고 가능성을 더 확장할 것인가. 선을 지우는 것이 이롭다면 방향성을 설정한 뒤 혼란과 혼돈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여야 한다. 독일이 통일 후 많은 혼란을 겪은 건 사실이다. 그리고 35년이 지난 지금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들은 갑자기 운명처럼 찾아온 통일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양방이 더 대화하고, 더 연구하고, 함께 준비할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서독도 동독도 통일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 그들은 참조할 리뷰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우리는 앞서 시행착오를 겪은 독일 덕분에 참조할 리뷰를 가지고 있다.


리뷰는 말한다. 지나고 나면 그 시절도 하나의 콘텐츠 장르가 되어 추억할 수 있다고. 갈라진 지금의 시선으로는 목숨을 걸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합쳐진 후에는 그냥 과거를 추억하며 술 한 잔 마시는 안줏거리 정도에 불과한 날이 온다고. 다만, 리뷰는 당부한다. 그 시절의 일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그래야 미래가 있는 거라고.


빌리 브란트가 먼저 손을 내밀고 대화의 물꼬를 튼 뒤에 15년이 지나서야 통일이 가시화되었다. 그 사이에 서독과 동독간의 분위기가 늘 화기애애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울퉁불퉁한 길을 지그재그로 갔을지언정, 어쨌든 목적지를 잊지 않고 계속 갔다는 게 중요하다. 남한이 손을 내밀어도 북한이 그 손을 잡지 않을 수 있다. 남과 북이 손을 잡으려 할 때 주변 강대국이 격렬히 훼방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날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울퉁불퉁한 길을 지그재그로 갈 날이 많을 것이다.


그걸 알지만 목적지를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과 같은 그 운명적인 날이 5년 뒤에, 10년 뒤에, 50년 뒤에, 100년 뒤에 올 지 아무도 모르지만, 거기에 대비가 되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베를린을 보았으면 한다. 독일의 정치, 외교, 사회, 경제, 역사를 공부할 필요 없다. 그냥 베를린의 오늘을 보고, 저들이 통일의 결과로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지 그것 하나만 느껴보았으면 한다. 통일이 독일에게 기회가 되었다는 것에 공감한다면, 우리가 일부러 그 기회를 사양하거나 기를 쓰고 반대할 필요가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다 좋아. 교과서 같은 소리인데, 현실적으로 그게 되겠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현실적인 물음 앞에 낭만적으로 응답한 빌리 브란트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독일 통일이 가능했다. 현실주의자는 세상을 바꾸지 못하지만 노력하는 낭만주의자는 세상을 바꾼다. 당장 가능성이 낮으면 어떤가. 울퉁불퉁한 길을 지그재그로 가더라도, 그 길이 옳은 길이라면 자녀 대에, 아니 손주 대에 결실을 맺어도 좋지 아니한가. 세상은 그렇게 바뀐다. 중요한 건 당장의 결과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방향이다.


<리뷰를 보고 싶어서>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아님)에서 숱하게 반공 포스터와 통일 포스터를 그렸고, <간첩 잡는 똘이장군>을 보며 자란 세대입니다. 독일 통일을 TV 뉴스로 보았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습니다. 18년 동안 독일을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많은 역사의 기록과 기억을 접하는 가운데 통일이라는 주제를 한 발 떨어져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본 리뷰입니다. 특별히 베를린에서 본 통일의 리뷰를 여행 에세이의 형식을 빌려 전합니다.

(매주 화,목,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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