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선적 가치에 대한 고민
나는 유럽에서 일을 하지만, 사실 온전히 유럽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회사의 유럽 법인에서 근무 중이기에 유럽에서 일하지만 한국에서 일하는 것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전반적인 근무환경이나 근무에 대한 태도 등은 한국 회사를 따라가는 경향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유럽에서 일을 하며 느낀 점은 다양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환경, 다른 사람들, 그리고 다른 고객들과 함께 일하며 내가 배웠던 것들은 확실히 한국에서 배우기는 어려웠던 것들이 많다.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상대적으로 유럽에서 생활해야만 잘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1.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흔히들 하는 말이지만, 이 사실을 직접 느껴보기 전까지는 와닿지 않는 말일 수도 있다. 사실, 같은 사람인데 뭐가 그리 다를 수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사소한 부분에서, 그리고 내가 느끼는 것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경우들이 종종있다.
예를 들면, 유럽 사람들은 에어컨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한 여름 7월 ~ 9월 사이에 한국인들에게 에어컨은 생존 필수품인데, 일부 유럽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물론, 에어컨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인공적인 추위를 버티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 편이다.
그래서 사무실 한 켠에서는 에어컨을 키고자 하는 한국인과 끄고자 하는 유럽인 간의 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이것에 대해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주지 못하면 실제로 감정이 상하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체 회식을 할 때도, 생각보다 불편한 부분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알러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문 편인데, 유럽에서는 본인이 먹는 음식, 못먹는 음식을 많이 구분하는 편이다. 이건 유럽 사람뿐아니라, 인도인들이나 이슬람 문화권과도 연관이 있다. 종교적 이유로 특정 음식을 먹지 못하거나, 알러지 혹은 편식을 해서 먹지 않는 음식이 있는 경우, 혹은 그냥 본인이 채식주의자인 경우 등 다양한 경우를 상정해야 한다. 그래서 회식 한 번 할 때도, 식당을 고름에 있어 다양한 메뉴 선택이 가능한 곳을 고려해야 한다.
배려와 이해가 있다면 어우러져 생활할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갈등을 겪고 어려움을 겪는다. 나 역시 몇몇 사례에서는 다른 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던 경우들이 있었다.
2. 내 생각보다 더 영어는 중요하다.
전 세계 공용어라면, 역시 영어일 것이다. 그리고 영어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하다. 유럽은 경계가 불분명하고, 육로 이동이 편한 덕에 한 나라에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다. 게다가 난민들 또한 많이 들어와 있는 편이라,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때문에 젊은 세대 혹은 현시점 중년층까지에게는 영어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원어민 수준의 영어실력이 아니더라도, 간단한 소통 정도를 할 수 있다면 영어는 그 쓰임을 다할 수 있다. 나의 현 직무에서 영어는 필수적인데, 그 실력 자체가 엄청 높은 수준이 요구되지는 않는다. 물론 잘할수록 좋긴하지만, 내가 너무 영어를 유창하게 해도,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과 소통이 잘되는 영어 실력이 더 중요하다.
특히나, 내가 주로 사업 활동을 하고 있는 동유럽권에서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보다는 못하는 사람이 더 많고, 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원어민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적절한 표현을 적절한 수준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덕분에 나는 영어를 매일 공부하고 있을 정도로, 영어의 소중함과 중요성에 대해 깨닫고 있다. 시간이 된다면, 유럽어를 꼭 하나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하지만, 아직까지는 해당 기회를 잡지는 못한 것 같다. 유럽에서 영어로 일을하며, 살아남기 위해서 영어 실력을 매일매일 향상시키고 있는 중이다.
3.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많이 다르다.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라는 것은 사실, 사람에따라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평균적인 반응들을 고려해봤을 때, 유럽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 간의 가치관 차이가 확실히 있다는 것은 단언할 수 있다. 가장 단편적인 사례가 나이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처음 만나는 누군가를 만나면, 기본적으로 따지는 것이 나이인데, 유럽에서는 단 한 번도 누가 나에게 먼저 나이를 물어본 적이 없다.
또한 가정과 가족에 대한 중요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과의 스케쥴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편. 예를 들어, 가족의 생일이나 일정이 있다고 하면, 유럽사람들은 '나 이때 가족과 여행 일정이 있어서 안돼.'라는 말을 한다. 한국인과의 차이를 본다면, 한국인은 '제가 이 주에 가족과 일정이 있을 수도 있어서 그런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휴가를 사용해도 될까요?' 라고 말할 것이다. 이미 느껴지겠지만, 한국인은 허락을 맡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유럽인들은 내 일정에 회사 업무를 맞추는 것이다. 물론 회사 일정 중에서도 필수불가결하게 참석해야 하는 업무라면, 업무에 일정을 맞추겠지만, 일반적인 일정에 대해서는 회사보다 개인과 가족을 위한 일정을 더 우선시한다.
이들과 어우러져 생활하며, 나 스스로도 내 인생에 대한 가치관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를 바꾼다는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이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 나은 기회를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