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호현 May 08. 2017

인간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영화 '프로메테우스', '커버넌트'의 숨겨진 의미와 세계관 분석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의 세계관의 내용과 프로메테우스, 커버넌트에 대해 스포일러, 추측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충격적인 글을 보았다. '나는 낳음 당했어'라는 자학적인 글이었다. 이제까지 탄생은 희생을 통한 성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도하고, 때로는 태어났기 때문에 고뇌와 고통이 생긴다는 비슷한 불만도 가져본 적이 있던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문장은 우리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태어났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자신과 부모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으로 여기는 문장이었다. 가치판단은 제쳐두고라도 대범한 상상력이라고 생각했다. 동물은 탄생과 죽음이 매우 우연하고 어쩌면 필연적이기에 생존과 번식을 목적으로 고민 없이 치열하게 살아간다. 반면에 인간의 탄생은 우연하지만 죽음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이러한 비대칭성 때문인지 우리는 삶의 의미와 그 기원을 종교, 일 등을 통해 찾으려 하며, 끊임없이 고뇌한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창조자를 만나겠다는 순수한 호기심과 웨일랜드(인간의 잔인한 욕망을 대변하는 회사)의 영생을 향한 욕망이 주인공들을 우주로 향하게 한다. 실제로 영화 초반부에서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창조자가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내려온다. 인간과 매우 닮은 엔지니어는 의문의 검은 액체를 마시고 자결함과 동시에 지구와 결합한다. 그렇게 인간은 탄생한다. 이후에도 엔지니어는 종종 지구를 찾아와 지식을 전달해주었다. 엔지니어의 언어가 태초의 언어와 비슷하다는 설정과 엔지니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행성 LV223 좌표를 나타내는 고대 벽화에서도 엔지니어는 나타난다. 여기서 유추해보건대, 엔지니어는 인간을 창조하고 일정기간까지 부모로서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엔지니어가 남겨놓은 행성의 좌표를 토대로 인간들은 항해를 시작한다. 무사히 행성 lv223에 도착한 인간들은 엔지니어의 행성을 발견하고 그들이 창조자임을 깨닫게 되지만, 얼마 안가 충격적인 사실과 맞닥뜨린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주선내의 엔지니어는 몰살당해있었고,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엄청난 양의 검은 액체를 가지고 지구를 파괴하려는 목적을 가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초반부에 나오는 액체와 같다고 단정할 수 없다.) 데이비드와 웨일랜드 사장은 살아남아 동면하고 있던 엔지니어를 깨우고 "이 분은 죽고 싶지 않아서 이곳에 왔습니다. 그는 당신이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켜 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프로메테우스에서 언어 자문역할을 한 SOAS 랭귀지 센터의 닥터 아닐 빌투에 의하면)라고 말한다. 그 후 엔지니어는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인간과 데이비드를 무참히 공격한다. 영문은 모르지만 파괴하려고 한 피조물이 그들의 피조물을 데리고 먼 행성까지 와서 그들도 갖지 못한 영생을 묻는다니 엔지니어 입장에선 터무니없을 법도 하다.


그렇다면 엔지니어는 도대체 우리를 왜 만들었으며, 왜 없애려고 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로봇 데이비드의 행동과 말을 보면 대략 유추할 수 있다. 극 중에서 데이비드는 인간을 돕기 위한 불완전한 로봇으로 만들어졌지만 서서히 자의식을 형성하고 인간처럼 존재와 생명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다. 그리고 질문한다. '인간은 저를 왜 만들었을까요?', 데이비드는 인간처럼 답을 들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만들 수 있으니까?'였다. 데이비드는 '당신들도 창조자를 만나고 같은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실망스러울지 상상이 됩니까?'하며 반문한다. 그리고는 극 중 후반부에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자식은 부모가 죽기를 바라지 않나요?'



엔지니어는 인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만들고 가르쳤다. 그리고 실망했거나, 단순히 실험의 일부일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었지만 자신들과 매우 닮은 인간의 과오 또한 보았을것이다. 인공지능 데이비드도 인간에게 부모의 불완전성(죽음과 질병, 더러운 욕망)에 실망했다. 이러한 부모 자식 간의 기대-실망 관계를 통해 리들리 스콧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대단하고 특별하다고 믿지만, 분수를 모르는 오만에 가득 찬 동물일 뿐이다라고. 데이비드는 엔지니어의 우주선에 있던 글을 모두 읽고서 '창조를 위해선 파괴가 필요하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엔지니어는 어떤 실험을 목적으로 인간을 만들었고 그 용도가 끝이나 폐기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실험용 동물들에게 그러하듯이.


영화는 독실한 신자인 엘리자베스 쇼의 믿음을 통해서 종교에 대해서도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데이비드는 엘리자베스 쇼의 십자가 목걸이가 오염됐을지도 모른다며 떼어가고, 불임인 엘리자베스 쇼는 끔찍한 외계인을 잉태한다. 엘리자베스 쇼는 끔찍한 상처를 입고, 창조자에 대한 믿음이 흔들림에도 기어이 데이비드에게서 십자가 목걸이를 돌려받고 다시 찬다. 살아남은 유일한 인간인 엘리자베스 쇼는 엔지니어의 행성으로 향하고, 데이비드는 또 묻는다.'무엇을 얻으려고 그곳을 갑니까?', 엘리자베스는 '그들은 우리를 창조해놓고 공격한 이유를 알고 싶다.'라고 했지만, '그들이 마음을 바꾼 이유가 중요합니까?'라며 데이비드는 궁금해한다. 아직도 엘리자베스 쇼는 인간의 탄생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데이비드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리들리 스콧은 블레이드 러너에도 그러하듯이 꾸준히 인간의 오만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간은 지구를 파괴하고 서로를 공격하며, 다른 존재를 무참히 학살한다. 그리고 순수성과 고귀함을 찾는 인간의 이중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의 내용에 대한 분석을 추가로 적습니다.


엔지니어가 인간을 우주무기인 에일리언의 숙주로 삼기 위해 만들었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저는 엄청난 문명과 과학을 지닌 엔지니어들이 걸리적거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방법으로 무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지적 호기심이 인간을 만들었고, 다시 한번 인간에게 어떤 실험 혹은 폐기를 하러 가던 도중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됩니다. lv 223에서 검은 액체를 실은 다수의 우주선이 발견됩니다. 모두 지구를 향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만, 엔지니어도 인간처럼 욕망이 있고 호기심이 있는 존재여서 행성 단위 실험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세계관을 빌리자면, 창조자인 젤나가는 가장 성스럽고 정신적인 프로토스 종족과 엄청난 생존력을 자랑하는 잔인한 생명체 저그를 만들어 실험합니다. 정신과 육체, 각각의 극한을 보려고 한 것입니다. 엔지니어도 비슷한 실험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과 같은 정신적인 생명체를 만들었고 실패하자, 그것을 지우거나 징벌하기 위해 파괴하려 한 것입니다. 데이비드가 창조를 위해 파괴가 필요하다고 한 것이 힌트가 될법합니다. 또한 검은 액체 창고의 흙에서 지렁이가 발견되고 흘러나온 액체가 지렁이를 흉폭한 괴생명체로 만든 것, 에일리언 퀸으로 추정되는 벽화를 볼 때 검은 액체는 생명체를 공격성을 띈 괴물로 변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생명의 본질은 자손을 남기고 유전자를 퍼뜨리는 것입니다. 자의식을 가진 인간만이 그 본능을 자유의지로 꺾을 수 있습니다. 생명의 본질에 집중해 본다면, 오로지 생존을 위한 강인한 육체와 어느 유전자든 압도해버리는 강력한 변이성이 띈 에일리언이야 말로 생명의 본질에 가까운 궁극적인 생명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은 실패한 생명체이지요. 엔지니어가 지구를 파괴하기 위해 행성 lv223을 출발하려던 시점은 대략 2000년 전입니다. 종교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리들리 스콧 감독은 어쩌면 예수의 탄생과도 연관 지었을 수도 있습니다. 


검은 액체 -> 인간+인간 -> 거대한 페이스 허거 -> 엔지니어+페이스 허거 -> 최초의 에일리언 디콘의 순으로 변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커버넌트에서 데이비드가 생체 실험을 통해 엘리자베스를 퀸으로 만들고 인간과 엔지니어를 멸종시키고 에일리언을 만들고 우주에 퍼뜨렸다는 설이 있는데 커버넌트가 나와봐야 알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양한 의견 환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이리언 : 커버넌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