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02 최범 선생님의 건국대 '한국의 미를 묻는다' 강연 소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나라랑 구분되는 한국만의 독특한 미란 도대체 뭘까?'라는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도무지 어떤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경복궁이나 한복 같은 사물의 특징을 통해 말하기도 한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도 뭔지 모를 답답함과 찝찝함이 남는다. 한국적인 것을 찾으려는 강박은 개인의 호기심이나 국가적 정체성의 발로일 수 있지만, 디자이너인 나는 '한국적인 것(혹은 각자 나라의 고유한 것)이 가장 세계적(상품)이다.'라는 명제를 믿고, 실현시키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혹은 다른 나라를 방문하거나 문화를 체험했을 때 '한국은 어째서 이렇게밖에 못할까'라는 열등의식일 수도 있겠다.
특정 나라의 미라고 하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이 아름다워하는 개별 대상이 아니라, 분명 '대상들'을 보고 느끼는 어떤 미적 작용, 미의식이라는 것만 어렴풋하게 느낄 뿐이다.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미의식이 분명 있을 터다. 38도의 위도에서 내리쬐는 일조량부터, 바다와 산맥과 같은 지형적 요인, 사계절의 뚜렷함까지 한반도의 환경이 고대인들부터 지금의 우리까지 미적 경험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예술 작품이나 손에 닿는 집기류까지 위와 같은 특성이 녹아있을 테고, 종교와 문화, 역사가 살을 붙여 현재까지 이어져왔을 것인데, 명쾌하게 표현이 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지도 모른다.
최범 선생님은 한국의 미를 말하기 전에, 한국이란 무엇이고 미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먼저 질문한다고 했다. 근대 이전의 사회는 명확한 신분사회로 계층끼리는 서로 다른 범주의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했다. 양반과 평민은 동물이라는 포유류일 뿐 개와 고양이 같이 서로 다른 카테고리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는 민족 관념이 생긴 것은 20세기 초 민족주의의 발로로 비로소 공통의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형성된다. '미'라는 것은 미적 경험과 미적 개념인데, 경험은 무언가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경험과 그것을 남긴 표현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미적 개념은 적어도 근대 이전 한국에서는 구체적으로 정립되거나 남겨진 적이 없다고 한다.
미적 개념이 남아있지 않다는 말은 또 무슨 의미일까? 한글에 빗대어 생각하면 쉽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한글이 왜 아름답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표현이 안됐던 것처럼 말이다. 일본은 '모노노아와레', '와비, 사비'등 미적 경험을 구체적인 개념으로 정립해놓았다. 서양의 미적 개념이 '불변의 아름다움-영원성'이라면 일본의 미적 개념은 '곧 사라질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이러한 개념은 모든 일본인들이 공유하는 집단적인 미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미적 개념이 남아있지 않은 한국은 남겨진 대상들을 보고 추측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적 개념이라는 것은 결국 미적 경험이 표현된 것들을 보고 누군가가 발굴해서 정립하고 보여주어야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일제강점기 시절 외국인, 특히 일본인들에게 발굴되고 공개되어왔다. 그 유명한 신윤복의 미인도 또한 고작 100명이 될까 말까 한 감상자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다가 세키노 다다시라는 미술사학자로부터 공개되어 비로소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렇듯 발굴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발굴이 되어야 비평이 가능하고 대중이 경험하기 때문이다. 만든 것은 조선사람이지만 연구한 건 일본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불편한 간극 또한 극복해내야 할 것 중 하나다.
최범 선생님은 한국의 미학은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발굴되고 정립됐다고도 했다. 세키노 다다시로부터 박정희까지 이어지는 엘리트 중심적인 예술(신라, 왕, 영웅 중심), 그에 대한 정치적 반발로 이어지는 민중 예술(조선, 민중, 다수의 서민 중심). 야나기 무네요시의 전통 조선 민중들의 생활품의 미학이 그 갈래다. 독특한 점이자 안타까운 점은 새마을 운동이 계획적으로 모든 생활 예술을 집어삼켰고, 삭막함으로 대체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계적인 문화의 삭제는 앞서 언급한 듯이 정치적 대립으로 민중예술이라는 것을 탄생시킨다.
한국은 미적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을뿐더러 각종 외세 침입, 외부의 영향, 내부의 악재 등으로 미적 개념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채 현대에 이른다. 한국의 미적 개념이 끊어지고 서양을 흉내 내는 식으로 급격하게 메워진 것이다. 현대 디자인 또한 그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적이라는 것은 오히려 배제되고 없어져야 할 것이 됐으며 구시대적이고 찬박한것으로 취급되었다. 요즘 한국적 디자인 운동이라는 것은 전통의 계승이 아니라 오히려 반서양적인 반발심의 결과로 밖에 설명되지 못한다. 최범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합리적인 것이 비합리적이 되고 관계가 수직적으로 변하면서 나타나는 차별의 역반응일 뿐이다. 그래서 한국의 미는 모티프로서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새마을 운동 이후 우리의 환경을 미학으로 설명하고, 그 이전을 연결하는 것으로 정립하는 것은 천년에 한번 나타날까 말까 하는 학자가 이룰 수 있는 엄청나게 어려운 것이라는 말로 강의는 마무리되었다. 나는 한국의 미가 정립되지 않은 것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 때문에 끊겼다고 생각했지만,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시기가 있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우리가 설명을 못하는 것은 나태했기도, 방법을 몰랐기도, 당연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미라는 두리뭉실한 고민은 어느 순간 근대화든, 한국전쟁이든, 우리의 주체성을 타인에게 빼앗기는 비극 때문에 정립되지 못하고 끊겼다는 확신이 든다.
현상 얘기만 하고 글을 마무리 짓기엔 맹숭맹숭하니 내가 생각하는 한국의 미란 무엇일까 고민해본다. 난 ‘애매모호한 관계성’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공간과 공간, 사물과 사물 모든 것에 엉성한 듯 애매모호한 관계성이 있으며 모든 추측과 배려, 정, 오해가 가득하다. 한두 발짝만 더 가면 무너질지 모르는 애매모호하고 불안한 안갯속 관계에서 우리의 위태위태한 균형감각이 한국의 미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