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 몇 번 들어본 수준에 팬도 아니어서 큰 기대는 안 했다. 근데 예상외로 엄청난 느낌을 받았다. 공연 내내 생각할 거리들이 퐁퐁퐁 쏟아지는 콘서트였다.
벌써 4~5년 된 것 같은데 밀레니얼 세대의 뉴트로 열풍은 당연히 음악 취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버블경제시대의 풍요로움이 만들어낸 시티팝이 그중 하나인데,
시티팝엔 엄청난 자본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각종 풍요로운 음악적 시도가 아주 세련되게 녹아들어 있다.
누군가 시티팝을 듣고 있으면 내일 걱정 없이 빛으로 빛나는 밤거리를 드라이브하는 기분이라고 하더라. 정말 공감되는 평이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와 심적 여유를 동시에 겪어 보지 못한 것 같다. 당장 둘 다 없었던 60-70년대, 경제성장으로 내일을 꿈꿨던 80-90년대, 물질과 정보의 홍수, 자원의 격차로 심적 빈곤을 겪고 있는 00-10년대
물질적 풍요와 심적 여유가 함께 있을 때 생기는 시대적 풍토(?)는 주로 문화와 취향에 많이 남게 된다. 우리는 그런 풍토가 약하기 때문에 낭만이 있었던 레트로를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대가 돌고 돈다는 것은 어쩌면 현재는 사라져 버린, 그 시대가 갖고 있던 어떤 풍요를 그리워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시티팝 속 풍요는 시대가 요구하는 연속성에서 벗어나 분절된 개성의 발견이 아니었을까?
물질의 풍요는 대게 개성의 표출로 드러나니까..
그 시절의 인상은 ‘빛’이 아닐까도 추측해본다.
인류가 처음 겪어본 각종 인공 빛이 낮에 건 밤에 건 빛나는 그 빛 속에서 반사로 발견되는 색들.
연속일 땐 모르던 빛을 색면으로 포착한 시대, 시대 속에 드러나는 개인의 개성
스크린에서 빛나는 빛, 네온사인, 밤마다 빛나는 가로등과 간판, 자동차 라이트, 풍요가 주는 반짝임
지금은 그런 인공 빛들도 익숙해지고 너무도 발달하여 현실과 혼동될 정도로 분간이 힘들어졌다.
개성도 죽여야 하고 개성을 펼칠 여유도 별로 없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걸 지도
아도이 앨범 아트를 담당하는 옥승철 작가도 언급 안 할 수 없는데, 주로 일본 만화 그림체로 어떤 한 장면을 담는다.
작품을 보면 아주 간단한 색면의 조합으로 매우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비결은 단연코 클로즈업과 순간 포착에 있다. 적은 컷으로 극적인 효과를 내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순간만 보아도 주인공의 감정과 상황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특히 특유의 색표현은 작품의 주인공이 어느 시간대와 어느 장소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도이가 공연에서 쏘았던 각종 조명과 배경 영상, 그리고 음악을 함께 듣고 있으면, 끊임없이 영감이 일어난다.
뭘 좀 아는 밴드구나 싶었음. 음악적으로는 밴드 사운드를 강조하다 보니 보컬의 톤이 많이 가려진 게 아쉬웠다. 아무래도 곡 구성 자체가 담백해서 공연으로 보여주기엔 심심했을 수도 있을 수도 있고, 큰 공연장에서 첫 공연이다 보니 멤버들의 밸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진짜 놀 랜건, 보컬 나이가 27살이고 심지어 이스턴 사이드킥의 오재환이라는 것..
공연장에서 언제나 부러운 것은 술 안 먹고도 재밌게 놀 수 있는 사람들, 나 같은 몸치에 체면충은 술 안 먹으면 도저히 내 꼴을 감당할 수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