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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Aug 02. 2019

기억의 전쟁

영화 <김복동>을 보다, 기억을 기억하라!

푸코 Michel Foucault는 어디선가 권력이란 실제에서는 인간의 몸을 둘러싼 대립을 통해 드러난다고 말했다. 근대국가가 광인의 위생과 정신을 관리하기 시작했듯이, 훈육을 통해 국가는 무엇보다 우리 몸에 대한 질서를 확립하고 싶어 한다. 우리 신체를 매개로 한 국가권력의 지배, 특히 여성의 몸을 매개로 한 국가권력의 지배는 국가와 계급의 탄생 이후 계속되어 왔고 지금도 보편적으로 만연한다.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이 우리의 신체와 분리된 다른 차원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몸의 일부인 대뇌활동의 활발한 작용의 결과라고 이해한다면, 권력은 우리 기억을 자신의 뜻대로 관리하고 재편하고 정리하고 싶어 하는 데에도 작동할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 포스터

일본 제국주의 위안부 범죄의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삶과 투쟁, 그리고 '소녀상'의 의미를 다룬 송일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은 이런 의미에서 내게는, 기억을 둘러싼 개인의, 개인과 국가의, 국가와 국가의 전쟁을 다룬 영화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는 곧 무엇을 지울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 기억의 전쟁은 여러 차원에서 진행된다. 김복동 개인의 차원에서도, 다양한 사회 세력을 매개로 해서도, 국가와 사회, 국가와 국가의 대립을 통해서도, 국제사회의 공론장 무대 위에서도 이 기억의 전쟁은 끊임없이 벌어진다.


“나이는 구십넷, 이름은 김복동입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어떤 기억과 싸워야 했나

1926년에 태어난 그녀는 14세의 어린 소녀로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로 일해야 했다. 일제 패망 이후 돌아온 조국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기억과 싸워야 했다. 해방과 전쟁의 혼돈 속에서도 억척같이 버티고 살아 가족을 돌보고 결혼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쌓인 응어리는 결코 풀어지지 않았다. 억지로 결혼을 시키려는 엄마에게 그동안 숨겨온 일본군 위안부의 기억을 고백했을 때 엄마는 그녀와 함께 밤새 목놓아 흐느꼈다. 그러나 엄마와 언니들이 그녀에게  요구했던 것은 '기억하지 말 것'이었다. "어린 조카들도 있으니,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으니..."


영화 <김복동>

그래서, 오랫동안 혼자만의 기억과 싸워야 했던 그녀는 자신의 기억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남편과 가족들로부터도 고립되었고,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그녀였기에 더욱더 외로운 삶을 살아가야 했다.  그동안 자신의 기억을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것으로 지우려 애썼던 그녀가 그 기억의 의미를 깨닫고 그 기억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려 하자 우선 그녀의 주변 세계부터 그녀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섰으며, 그녀는 그녀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하는 무수한 세력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기억하려는 자와 지우려는 자

그녀의 기억을 부정하고, 그 기억의 의미를 애써 폄하하고 부인하려는 자들은 누구인가? 무엇보다 자신들의 과거 전쟁 범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으로서는 그녀의 기억이 불손하고 무의미하고 추잡한 거짓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국가 목적인 전쟁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전쟁의 도구가 된 군인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시켜줘야 했고, 이를 위해 자신들이 식민지 조선의 어린 여성의 몸을 비인도적이며 가혹하게 수탈했음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김복동 할머니와 소녀상

전쟁은 했어도 비인도적 전쟁범죄는 결코 자행하지 않았다고 과거를 부정하는 기본입장을 고수하기에 일본 정부는 1965년 청구권 협상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상책임은 종결되었으며, 2016년 한일 당국 간에 합의한 위로금 10억 엔과 <화해 치유 재단> 설립을 통해 위안부 '문제'는 종국적으로, 비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위안부 피해자의 상처와 아픔의 상징이 된 <소녀상>은 조속히 철거하라고 우리 정부에게 요구한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적으로, 한 번은 더욱더 비극적으로!

<화해 치유 재단> 해산 시위에 참가한 김복동 할머니


역사는 이야기다

하지만 김복동의 기억은 그녀 혼자만의 기억이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의 기억을 되살려내고, 세상에  그 기억을 외치기 시작하자 그녀의 기억을 공유했던 사람들과 그녀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일본군의 성노예로 수탈당해야 했던 중국, 버마, 베트남 등 아시아의 여성들과 네덜란드의 종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 그녀의 기억은 하나의 기억, 하나의 이야기(story)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식민지 조선 어린 여성들과 아시아의 전쟁 피해 여성들이 공유했던 보편적인 이야기, 식민지 여성의 역사(herstory, Geschichte)였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이야기, 그녀의 기억에 같이 아파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은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모였고, 기억을 부정하려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몰염치에 맞서 싸우는 상징으로 <소녀상>을 세우고 외쳤다. 그녀들의 기억을 지우려 하지 말라고, 피해자의 기억을 부정하며 단 한 번도 사죄한 적이 없는 가해자와 어떻게 '화해와 용서'가 가능하겠느냐고?  그녀들의 기억은 거짓이라 부인하기엔 너무나 생생했고, 그녀들의 진술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너무나 또렸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들의 기억을 기억해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그렇게 그녀들의 기억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 되었다.

가해자의 침묵은 영원할 수 있을까?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 단발머리의 앳된 '소녀'는 그렇게 그 자리에서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머리에 흰 눈을 맞으며 앳된 얼굴로 가해자를 용서하기 위해 기다렸지만, 기억의 흔적조차 지우고 싶은 사람들은 그 소녀들이 하나둘 시간의 냉혹함에 쓰러져 갈 때까지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김복동 할머니는 2019년 1월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망각의 세계로 건너갔다.


권력은 여성의 몸을 매개로 행사된다.

식민지 조국에 태어난 죄로 국가로부터 자신의 몸에 대한 보호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그녀들에게 오늘의 국가권력은 그녀들의 기억을 지우려 함으로써 2차 가해를 가했다. 무엇보다 <화해 치유(?) 재단>을 설립을 통해 일본이 의도했던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비가역적'인 해결에 합의함으로써. 

일본은 자신들이 침탈한 식민지 여성을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을 위한 성노예로 짓밟은 자신들의 전쟁범죄의 엄중함과 잔혹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소녀들의 기억이 역사로 다시 살아나 미래 세대에 이야기되고 전해지길 원치 않는다. 얼마나 기억하기 싫으면 '비가역적'이란 표현까지 썼을까.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말, 비가역적! 

김복동 할머니


기억을 기억하라!

위안부 할머니들의 몸과 기억을 매개로 벌어지는 국가권력의 추한 자기 부정과 냉혹함을 보며 이 기억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기억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평화의 집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동료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그렇게 잘해줬고, 잘 지냈는데 난 도무지 기억이 안 나.
난 오래 기억하고 싶은데 말이야." 

    

기억하고 싶은 일도 시간 앞에서는 얼마나 무기력하고 어려운 일인지 그녀의 말은 보여준다. 시간과 죽음은 인간을 망각의 강으로 인도하는 기제들이기에. 자신들이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조차 시간 속에 유한한 인간 존재에겐 기억하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기억을 지우려는 자들, 기억을 부정하는 자들과 싸워야 하는 기억을 가진 사람들의 기억은 얼마나 위태로울 것인가. 그러므로, 기억을 기억하라!   


기억은 오래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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