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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Jul 19. 2019

왕처럼 먹읍시다

질 드 메스트르 감독의 다큐멘터리 <알랭 뒤카스:위대한 여정>을 보다


다큐멘터리 영화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를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했습니다. 프렌치 요리의 대가 알랭 뒤카스의 삶과 요리 철학을 다룬 이 영화는 2018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음식영화 부문에서 상영되었고, 2018년 제4회 서울 국제음식 영화제에도 초대되었던 영화입니다. 솔직히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저에게 알랭 뒤카스라는 이름은 생소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뒤카스라는 이름 앞에 왜 '거장'이라는 칭호를 붙이는지, 왜 그의 삶과 그의 요리가 '위대한 여정'이며 예술인지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포스터>


왕처럼 먹읍시다


영화는 베르사유 궁 안에 최초로 레스토랑을 여는 뒤카스의 <베르사유 프로젝트> 준비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에  23개의 레스토랑과 총 18개의 미쉐린 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뒤카스의 여행과 삶을 2여 년 간 추적합니다.  '왕처럼 먹읍시다'라는 모토로 프랑스 절대왕정 시대의 요리를 복원하면서 요리 자체뿐만 아니라 음식을 담을 식기, 직원들의 복장, 인테리어 스타일, 서빙의 동선, 요리의 속도 등 매우 디테일한 부분들까지도 세심하게 고민하고 고려합니다.  하지만 왕의 음식을 재현하려는 그의 고민과 노력은 단순히 과거의 복원이 아닙니다. 그의 기획은 또한 단순히 현대의 여유로운 미식가들에게 절대 왕정의 향수를 대리 만족시켜주려는 기획도 아닙니다. 역사 속에 죽은 왕의 음식을 복원하면서도 그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모방이거나 혹은 완전히 새로운 현대적인 해석으로 경도되지 않으려는 뒤카스의 <베르사유 프로젝트>를 보고 있으면 그의 요리가 왜 그의 삶이자 그의 철학이 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맛을 선물하고 싶다


영화 속에서 자신의 요리에 쓰일 가장 적합하고 고유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자신의 요리 철학인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맛을 선물하기' 위해  전 세계 각지의 식당을 찾아다니는 뒤카스의 탐구 여정을 보며 '잘 먹고 잘 산다'는 일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베르사유 프로젝트> 말고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뒤카스의 프로젝트들은 요리가 우리에게 어떻게 행복이 될 수 있으며, 요리가 어떻게 희망이 될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뒤카스가 후원하는 필리핀의 '뒤카스 요리학교' 학생들의 빛나는 눈동자와 흥분된 목소리 속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넘쳐납니다. 브라질 대도시의 빈민들을 위해 호텔에서 남은 재료를 재활용해 유명 셰프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도시 빈민들을 초대해 끼니를 제공하는 뒤카스식 '밥퍼' 행사에서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뒤카스의 따스한 시선이 숨어 있습니다.



알랭 뒤카스



프랑스 요리의 대가 알랭 뒤카스의 위대한 여정을 보며 '왕처럼 먹자'라는 말은 '잘 먹고 잘 사는 일'을 위한 하나의 시도이지 전부가 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왕처럼 먹자'는 것도 결코 과거의 궁중요리를 재현해 먹으며 선택된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과거의 향수와 현재의 우월감을 맛보는 일에서 그칠 수 없음을 확인합니다. 우리 삶이 단순히 먹고사는 일에서 끝날 수는 없기에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대한 뒤카스의 철학과 고민이 담긴 위대한 여정 80분은 즐겁고 특별한 자극이었습니다.    



그의 요리는 예술이자 삶이다


여담이지만, 뒤카스의 위대한 여정에 등장하는 일본, 중국, 몽고, 홍콩, 브라질 등 8개국에 한국은 포함되어 있지 않음에 아쉬움을 느끼며 한식의 세계화는 왜 벽에 부딪치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재료 자체의 고유한 맛보다는 온갖 재료를 뒤섞거나, 재료와 양념을 함께 넣고 오랜 시간 우려내는 우리의 '비빔'과 '무침', '삶기'와 '우려내기'의 요리가 개별적 주체의 고유성과 사회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서구의 개인주의 철학이 반영된 요리의 세계에서는 낯설고 이질적인 맛으로 느껴지기 때문일까요? 우리에게도 우리만이 가진 놀라운 맛의 세계가 있는데 그런 우리의 탁월한 맛이 거장의 입맛을 조금도 돋우지 못한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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