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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Aug 14. 2019

영원 속에 담긴 당신의 마지막 순간

이유리의 책 <화가의 마지막 그림>을 읽다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책은 '19인의 예술가들이 남긴 마지막 명작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유리 작가의 <화가의 마지막 그림>(서해문집, 2016)입니다. 예쁜 분홍색 책 표지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인 에곤 쉴레Egon Schiele의 그림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제목처럼 화가의 마지막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이라는 순간을 통해 한 예술가의 삶을 관통했던 영원한 예술혼을 다시 불러냅니다. 예술가는 삶의 한 순간적 단편에서 탄생시킨 자신의 작품 속에 자신이 꿈꾼 영원과 자신이 그린 초월적 세계를 응고시켰을 터이니까요. 

<화가의 마지막 그림>, 이유리, 서해문집, 2016년

이중섭, 나혜석, 잔 에뷔테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에곤 쉴레, 에드워드 호퍼, 빈센트 반 고흐, 프리다 칼로, 케테 콜비츠, 펠릭스 누스바움, 폴 고갱, 로렌스 스티븐 라우리, 마크 로스코, 장 미셀 바스키아, 잭슨 폴록, 카라바조, 렘브란트,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저자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는 총 19명의 예술가를 4개의 장으로 나눠 소개합니다. 잔 에뷔테른은 모딜리아니의 아내로서가 독자적인 여성 화가로서 소개하고 있는 저자의 배려가 인상적입니다. 에뷔테른과 모딜리아니를 같은 장에서 다루고 있기에 책의 전체 구성은 18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19명의 예술가들이 그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긴 작품들을 세밀히 들여다보면서 저자는 그 작품들이 그려진 인간적인 맥락과 예술적 위상을 설명합니다. 때론 잃어버린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때로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삶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을 담아, 때로는 평생 자신을 짓눌렀던 강박과 억압된 욕망을 풀어헤치며, 때로는 지난날 자신이 저지른 치기 어린 행동과 과오를 반성하는 마음을 담아 이 19명의 예술가들은 그들의 마지막 작품을 남겼을 것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19의 예술가들 중에는 쉴레, 고흐, 칼로, 콜비츠, 고갱, 폴록, 렘브란트, 카라바조, 보티첼리처럼 저에게도 조금은 익숙한 인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도 익숙한 이름의 화가들이 마지막 순간에 그렸거나 최후에 남긴 작품들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에곤 쉴레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쉴레의 그림을 처음 접했던 독일에서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올랐고,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의 레오폴트 뮤지엄과 벨베데레 궁을 찾아갔던 열정과 몰입이 생각나 미소 지을 수 있었습니다. 케테 콜비츠 부분을 읽으면서는 훔볼트 대학을 쏘다니던 저의 베를린 시절의 풋풋한 웃음이 떠올랐고요.


쟌 에뷔테른과 모딜리아니, 펠릭스 누스바움이나 로렌스 스티븐 라우리 등 저에게 생소한 화가들의 마지막 이야기와 그들의 작품세계를 듣는 일은 저에게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딛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그린 그림 속에서는 자신들의 죽음을 마치 예견이나 한 듯이 음울하고 비장한 죽음의 기운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도 있고, 지나간 삶에 대한 회한과 후회를 그림 속 인물의 표정이나 소품을 통해 드러내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이 책이 저에게 무엇보다 흥미로왔던 점은 이 책이 19명의 예술가들의 마지막 작품만을 분석하고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장마다 한 예술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상당히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충실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예술가의 죽음의 순간에서 시작해서 그들 삶의 전 과정을 깊이 있게 소개하고, 그들의 주요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이 책의 서술방식은 잘 정돈된 책장을 닮아 있습니다. 언제든 필요하다면 눈길 닿는 부분을 다시 꺼내 볼 수 있고, 또 언제든 책장의 다른 책과 함께 비교해 볼 수도 있는 책입니다. 여기 소개된 화가들의 마지막 순간과 마지막 작품들은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원 속에 살아 있기에 말입니다.


- 기다려도 오지않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 이중섭의 마지막 작품 <돌아오지 않는 강>

이중섭의 마지막 작품 <돌아오지 않는 강>, 1956
이중섭의 대표작 <소>




- 사랑을 잃은 세상에서의 마지막 선택, 쟌 에뷔테른의  마지막 작품 <자살> 

모딜리아니의 마지막 작품 <자화상> 1919  


그가 그린 대표작 <큰 모자를 쓴 에뷔테른>, 1918



    - 운명에 빼앗긴 행복한 꿈, 에곤 쉴레의 마지막 유화 작품 <가족>

에곤 쉴레의 마지막 유화 <가족> 1918
쉴레의 대표작 <죽음과 소녀>



- 세상에 바치는 마지막 인사, 에드워드 호퍼의 마지막 작품 <두 코미디언>

에드워드 호퍼의 <두 코미디언> 1965


에드워드 호퍼의 대표작 <밤샘하는 사람들>, 1942



- 그림자조차 남지 않은 조선 최초의 페미니스트의 삶, 나혜석의 마지막 작품 <해인사 3층탑>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여성화가 나혜석 <자화상>과 마지막 작품 <해인사 3층탑>



- 외롭고 불안했던 영혼의 흔들림, 고흐의 마지막 작품 <나무 뿌리>

고흐의 마지막 작품 <나무 뿌리>, 1890
고흐 <붕대로 귀를 감은 자화상> 1889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



- 멈출수 없는 삶의 노래,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작품 <인생 만세>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과 <부러진 기둥, 1944>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작품 <비바 라 비다> 1954




-  남은 것은 절망 뿐인가, 펠릭스 누스바움의 마지막 작품 <죽음의 승리>

펠릭스 누스바움, <죽음의 승리> 1944


펠릭스 누스바움의 작품들




- 이상향은 어디에도 없었다, 고갱의 마지막 작품 <눈 덮인 브르타뉴 마을>

폴 고갱 <눈 덮인 브르타뉴 마을> 1894~ 1903



폴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7




- 억압된 욕망의 인형으로 살다, 로렌스 스티븐 라우리

사망 후에 발견된 라우리의 유작들



영국의 도시 공장 풍경을 주로 그린 로렌스 스티븐 라우리





- 타협할 수 없는 자의 마지막 절규, 마크 로스코의  마지막 작품 <무제>

마크 로스코 <무제> 1970


로스코의 작품들



- 자본주의에 소비된 이단아, 장 미셀 바스키아의 마지막 작품 <죽음과 합승>

바스키아 <죽음과 합습> 1988


 

- 남은 것은 예술적 행위 뿐인가, 잭슨 폴록의 마지막 작품 <레드, 블랙, 실버>

잭슨 폴록 <레드, 블랙, 실버> 1956



잭슨 폴록의 대표작 <가을의 리듬> 1950



- 천재성 속에 감추어진 잔혹함의 이중성, 카라바조의 마지막 작품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1609~1610


카라바조의 작품들




- 빛과 어둠 속에서 흔들린 영혼, 렘브란트의 마지막 작품 <돌아온 탕자>

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1666
렘브란트의 작품들





- 혼돈의 시대에 당겨진 비극의 활시위, 보티첼리의 마지막 작품 <신비의 탄생>

보티첼리 <신비의 탄생> 1501




보티첼리 <봄, 프리마베라> 1478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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