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아실까 90년생의 마음을?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 때 직원들에게 추천했다는 임홍택 작가의 <90년생이 온다>를 읽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대통령이 추천했다는 기사가 나오기 전에 구입해서 이미 읽었다. 아무래도 내 신분이 공무원이고, 공무원에 관한 글을 많이 쓰는 편이다 보니 공무원 관련 글이나 기사에 관심이 많이 가는 편이다. 서점에 들러 이 책 저 책을 펴보다가 브런치 작가가 썼다는 이 책이 눈에 들어왔고, 첫 장을 넘기니 "그들은 왜 '9급 공무원'의 길을 택했을까"라는 제목이 내 흥미를 잡아당겼다.
메인사진:Photo by Zulmaury Saavedra on Unsplash
대통령이 추천한 책
이른바 '9급 공무원 세대'라는 1990년대 생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미래의 직업으로 '안정적인' 공무원을 택하는 문화적 이유를 이 책이 설명해 줄 것 같았다. 지금 우리 시대의 공무원 열풍의 근저에 자리한 '사회 경제적'인 원인은 많이 분석되어 있는 반면에, 90년대 생을 하나의 독자적인 세대로 범주화하고, 그 세대의 특징을 이전 X 세대나 80년대 생과 구분하여 비교 세대론적으로 문화적으로 설명하는 시도는 많이 접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삶에 있어서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20대 중반에서 후반에 이르는 90년생들을 나는 조카로서 처음 마주했다. 어렸을 때는 내 지갑을 축내도 아깝지 않은 귀여운 조카였던 녀석들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말 걸기 조심스럽게 세침 해지더니 이제 성인이 되어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제 갈 길을 간다. 어릴 때는 동화책 들고 와서 '삼촌, 재미있게 읽어 줘"라고 애교를 부리던 녀석들이 이젠 나와 마주 앉으면 내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응, 알았어." 한마디 쿨하게 뱉고는 자기 방으로 가버린다. 난 그들의 '진지충'이 된 것인가?
나는 '진지충'인가
해서 나는, 변해버린 조카들의 심리상태도 이해해 볼 겸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분석하고 설명한 밀레니얼 세대의 세대적 특징들은 세 가지다. 길고 진지한 것보다는 간단한 것을 좋아하고, 의미보다는 재미를 추구하고, 정의롭다고 하기까지는 좀 뭐하지만 정직, 진솔하다는 것. 그래서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약어와 축어, 이모티콘과 문자를 남발하고, 메시지의 내용과 의미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과 매체에 더 민감하고, 아주 완벽하고 고급스러운 취향보다는, B급이어도 독특하고 재미있으면 즐기며,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더 이상 믿지 않기에, 최소한의 절차적 평등이라도 준수하기를 요구하며, 손해보기를 싫어하고 부당한 대우를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든 세대론이 빠지는 당연한 함정인 '일반화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의 90년생에 대한 분석과 설명에 빠져들었고 매우 공감한다. 어떤 대목에서는 '아, 그랬구나!' 하는 가냘픈 탄식을 홀로 터뜨리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내 조카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같은 세대라 하더라도 그 구성원의 행동양식과 사유방식, 사회적 존재 방식이 동일하지는 않다. 이는 세대와 세대 구성원이 같은 분석 단위가 될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조카 중 하나는 소위 명문대를 나오고, 교사 임용고시를 보더니 졸업하자마자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그냥 전문대학 나오더니 이런저런 직장 옮겨 다니다가 지금은 유통업에 종사하며, 다른 조카 하나는 여전히 문화적 소양과 견문을 넓히기 위해 전 세계를 방황하고 있다. 마지막 조카가 가장 나를 닮은 편이다. 그래도 솔직히 다 사랑스럽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도 이들 셋이 같은 성격, 같은 세대로 분류되기에는 좀 어려울 듯하다. 개성과 취약, 능력과 자질이 상이하고 추구하는 목표와 택한 삶의 여정이 상이함으로.
언제나 요즘 것들은 이해 불가인가
고대 그리스 벽화나 메소포타미아 문명 유적지에 적혔다는 우스개 소리. "요즘 젊은 애들은 참 이해가 안 돼" 그 솔직한 고백과 고충은 386 세대를 향해서도, X 세대 향해서도, '김지영' 세대를 향해서도, 밀레니얼 세대를 향해서도 적용되는 것 아닐까? 늘 앞선 세대는 뒤에 오는 세대의 미흡함이 눈에 먼저 띄고, 뒷 세대는 앞선 세대의 기득권과 참견이 자신들의 기회를 제약하고 참여를 배제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나는 워라벨을 추구하려는 본능과 적절한 참여를 통해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 참견보다는 참여를 원하는 갈망은 특정 세대의 세대적 특징이 아니라 시대적 변화에 따른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변화된 욕구라 본다. 밀레니얼 세대가 자신들보다 앞선 세대를 모두 '꼰대'라고 편리하게 구획해 버리는 순간, 또는 X 세대가 밀레니얼 세대를 '이기적이고 도전을 모르는 세대'로 낙인찍어 버리는 순간, 함께 모인 자리엔 어색한 침묵만 흐를 뿐이다. 따라서, Stay, hungry! 서로의 이야기를 갈망하며 귀를 열어 놓을 것! 때론 그들이 든 촛불이 보편적 정의를 위한 것인지 자신들만의 침해된 이익에 대한 반발인지 구별하기 힘들고, 답을 정해 놓은 듯 보이는 윗 세대의 의견과 지시가, 앞서간 그들 삶의 경험과 시행착오 속에 한번 쯤은 검증된 작은 혜안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젊은 꼰대'가 있을 수 있듯이 '늙은 인싸'도 있을 수 있기에. 너희들도 언젠가 둘리와 또치를 괴롭히는 고길동의 입장이 이해될 날이 올 것이기에.
이 책을 읽고 대통령은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셨을까, 문득 궁금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