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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Aug 27. 2019

나눠먹기식 중선거구제의 도입

1973년 2월 27일 실시_ 제9대 국회의원 선거

1973년 2월 27일 실시된 제9대 국회의원선거는 제4공화국 유신체제 하에서 실시된 첫 국회의원선거로 우리나라 선거역사상 처음으로 1개의 선거구당 2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로 치러졌습니다. 총 국회의원 의원정수는 219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중선거구제도에 따라 73개 지역선거구에서 2명씩 선출하여 지역구 선출 의원은 146명이었고 유신헌법에 따라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73명은 1972년 12월 23일 실시된 선거를 통해 구성된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였습니다. 이 통대에서 선출하는 국회의원 73명도 대통령의 추선을 받아야 했으므로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초로 중선거구제가 도입된 제9대 총선 홍보 포스터

중선거구제 도입에 따라 전국구제도는 폐지하였으며, 다시 10년만에 무소속 출마가 허용되었습니다. 무소속 후보자의 출마를 다시 허용하고 중선거제를 도입한 것도 여당 후보자들을 도시에서 당선시키려는 정략적 의도와 야당의 분열을 노린 정권의 전략이었습니다. 이전 선거에서 여당 후보자들이 도시에서 대부분 낙선하자 일률적으로 선거구별로 2명씩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해 나눠먹기식 선거를 치렀던 것입니다. 실제로 무소속 후보자들이 출마하는 경우 여당후보자와 야당후보자간의 담합으로 무소속 후보자를 견제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던 것입니다.


제 9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에서 6년으로 늘어났으며 다만,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된 국회의원의 임기는 3년이었고 이들은 유신정우회라는 별도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여 정당처럼 운영되었습니다.

후보자 선거벽보와 선거 홍보포스터

선거결과 민주공화당은 집권당의 위력과 동반 당선제의 제도적 배경으로 모든 지역구에서 1명씩 당선되어 지역구 의원정수의 50%에 해당하는 73명을 확보했습니다. 신민당이 52명으로 35.6%를 얻어 제1야당의 명맥을 겨우 유지할 수 있었으며, 민주통일당이 2명으로 1.4%를, 그리고 무소속이 19명으로 13.0%를 차지하였습니다. 정권이 의도했던 대로 여당은 도시건 농촌이건 모든 선거구에서 후보자들을 당선시켰고 야당은 신민당, 민주통일당 무소속이 나눠 갖는 양상을 나타냈습니다. 여당 쪽 당선자는 대통령의 지명에 의하여 선출되는 유정회를 합치면 천체 국회의원 정원의 66.7%인 146석을 차지하였습니다.

투표소 모습

유신체제 하에 처음으로 실시된 제9대 국회의원 선거는 정략적인 중선거구제 도입과 무소속 후보 출마 허용, 통일주체 국민회의에 의한 간접선거 병용 등으로 매우 제한적인 범위의 선거였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선거운동은 선전벽보, 선거공보, 합동연설회만 허용되었으며, 유신체제 하에서 정치적 자유가 제약된 가운데 실시된 제대 총선은 지역선거구에서 339명이 후보자 등록을 함으로써 평균경쟁률 2.3 대 1의 비교적 저조한 경쟁률을 보인 선거였습니다. 선거를 통해 여당은 유신체제를 공고히 하고자 했고 개헌가능 의석을 초과하는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이 목표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투표소 풍경




역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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