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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공 Aug 27. 2019

'체육관 대통령'의 탄생

1972년 12월 23일 실시_제8대 대통령선거

1971년 제7대 대선에서 더 이상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국민들 공약을 한 박정희는 그 약속을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지켰습니다. 다름 아닌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 직선제 선거제도를 '유신헌법'이라는 초헌법적 조치를 통해 아예 폐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통일주체 국민회의'라는 2,359명의 대통령선거인단을 체육관에 모아놓고 실시한 대의원 선거를 통해 4번째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유신헌법 공포식

1971년 제7대 대선과 제8대 총선 결과를 치른 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재집권이 불가능함을 확신한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이른바 '10월 유신'이라는 특별선언을 통해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활동을 중단시켰습니다. 이러한 비상조치로 박정희는 한편, 헌법의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킬 뿐만 아니라 국회의 권한을 비상 국무회의가 대행하도록 하였고 이후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상 국무회의는 1972년 10월 26일 헌법개정안을 의결하고 공고하였고, 11월 21일 국민투표를 통해 91.5%의 찬성으로 소위 ‘유신헌법’을 확정하였고 이 유신헌법은 12월 27일 공포됩니다. 이렇게 유신체제가 그 어두운 서막을 드러냈습니다.

유신헌법을 위한 국민투표


유신헌법에서는 대통령 직선제를 통일주체 국민회의에 의한 간접선거로 변경하였으며, 또한 대통령의 임기를 6년으로 하고 중임이나 연임 규정을 없애 사실상 무제한적 연임이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방식도 총의석의 3분의 2는 한 선거구에서 2명씩 뽑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했고,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폐지하고 정기국회와 임시국회 회기도 줄여 국회 활동의 기반이 매우 취약해졌습니다.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담화문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은 구·시·읍·면·동 등 행정구역 단위를 선거구로 하여 전국을 1,630개 구로 나누되, 농촌에서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도시지역에서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여 인구 2만 명을 기준으로 1인에서 5인까지 다양화하여 전국의 대의원 정수를 2,359명으로 하였습니다.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1972년 12월 15일 실시되었고, 통일주체 국민회의를 구성 한 이후 1972년 12월 23일 실시된 제8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는 박정희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투표에는 통일주체 국민회의 전 대의원이 장충체육관에 참여하였고, 투표 결과 무효표 2표를 제외하고 2,357표를 얻어 99.9%의 찬성으로 박정희는 제8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유신체제하 한국사회

대통령 선거인단이라 할 수 있는 통일주체 국민회의는 이후 1987년 민주화 운동에 의해 다시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할 때까지 대통령 선출을 정당화시켜주는 형식적인 기구로 기능합니다. 이 통대는 법적 권한은 단지 대통령 선출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국회가 발의한 헌법개정안을 확정할 권한도 갖고 있었고, 국회의원의 3분의 1까지 선출할 수 있고, 통일정책을 결정하거나 변경하는 막강한 권능을 유신헌법에 의해 부여받았습니다.

후보자 수락서?

하지만 통대의 이러한 막강한 권한은 실제로는 2천여 명에 이르는 대의원들이 모여서 단일한 하나의 의견을 낸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고, 중앙정보부 등 정보기관이 대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상황에서 자율적인 의사결정은 보장되지 않았고 정해진 대통령 후보자를 체육관 모여서 형식적으로 승인하는 역할을 담당할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실제 통대의 막강한 권한은 대통령에게 위임된 것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대의원들의 필적을 중앙정보부가 미리 확보해 가지고 있다가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대통령 선출을 위한 통일주체 국민회의가 끝나면 필적을 대조해 반대표를 던진 대의원을 색출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습니다.

유신 체제 하에서 대통령은 긴급조치권뿐만 아니라 대법원장과 대법관, 법관 임명권까지 갖고 있었고, 국회해산권, 법률안 거부권, 통일주체 국민회의 몫인 국회의원 3분의 1 임명권 등을 갖고 있어서 실질적인 삼권분립은 붕괴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유신체제 하에서 대통령은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이른바 '총통'에 다를 바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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