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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Sep 11. 2019

하나가 아니어도,  무언가 나눌 수 있다면

윤가은 감독, 김나연 김시아 주예림 주연의 영화 <우리집>을 보고

영화 <우리들>로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낸 윤가은 감독의 후속 작품 <우리집>을 본다.  영화는 부모님의 불화로 불안한 '우리집'의 문제를 가족여행과 가족들이 같이 밥먹는 걸로 해결해 보겠다고 나서는 하나, 부모님의 부재로 흔들리는 '우리집'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어린 유진, 유미 자매의 이야기다.



부모의 존재로도 위태롭고, 부모의 부재로도 위태로운 가족

하나의 부모님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자녀들 앞에서 자주 언성을 높이며 다툰다. 직장 문제일 수도 성격 문제일 수도 있다. 부모가 나이 어린 자녀들 앞에서 심하게 다투면 자녀의 머리에 총격을 가하는 것과 유사한 정신적 충격이 가해진다고 하던데... 아무튼.


그래서 하나는 불안한 시선으로 엄마와 아빠의 시선을 살피고, 부모의 이혼으로 끝나버릴지도 모를 파국을 예감하며 자기 나름대로 이 무너져 내리는 가족을 묶어보려 애쓴다. 하나의 '우리집 건강 회복 프로젝트' 중 하나는 '가족여행'이고 다른 하나는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같이 밥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집>이 무너지는 이유가 '가족여행'이나 '저녁식사'의 부족에 있지는 않았기에 오히려 하나의 부모님과 가족을 둘러싼 갈등은 증폭된다.  



부모님의 갈등으로 위기에 처한 <우리집>을 구해야 하는 하나가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유진, 유미 자매는 오히려 부모님의 부재로 위기에 처한 <우리집>에 살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로 어린 자매들만 집에 남겨진 유진, 유미 자매는 같은 처지의 하나를 만나 오랜만에 행복한 가족, 웃음이 넘치는 <우리집>을 자신들끼리 만들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도 잠시 가져보지만, 부모님의 사정으로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고 곧 이사를 준비해야 한다. 부모님이 존재해도, 부모님이 부재해도 위기는 찾아온다.




우리집, 마음의 상자로 쌓아 올린


하나와, 유진, 유미는 부모님의 존재 혹은 부재로 인해 위기에 처한 <우리집>을 처음에는 어떻게든 다시 하나로 묶어 보려 애쓴다. 유진 자매가 다른 사람들은 쓰레기로 버리는 상자를 집으로 가져와 오려 붙여 자신들만의 <우리집>을 쌓아 올리는 것이나, 하나가 피로 이어진 자신의 가족들과는 함께 나눌 수 없었던 끼니를 유진, 유미 자매와 나누는 것은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부모님의 결정으로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된 유진, 유미와 헤어지지 않기 위해 하나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도 역시 가족의 하나됨을 위한 어린 구성원들의 안간힘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우리집>의 일은 세상과 무관하지 않고, 상자를 쌓아 올리듯 <우리집>과 우리 가족의 유대는 그렇게 단순하게 쌓이지 않는다. 상자로 지은 집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갑작스러운 여행에서 서로 사소한 불화와 다툼을 겪고 다시 화해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하나와 두 자매가 배운 <우리집>에 대한 깨달음은 어쩌면 '정상 가족'의 신화는 없다는 것 아닐까?  





하나가 아니어도 괜찮아


짧은 여행은 우여곡절 끝에 좌절되었고 <우리집>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하나의 부모님은 이제 이혼을 하실지도 모를 일이고, 유진, 유미 자매도 부모님 때문에 또 다시 자신들은 원치 않는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 헤어짐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 구성원으로 엮어진 하나와 유진 자매의 이별을 예정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우리집>을 구하려는 어린 주인공들의 시도와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고, 그 노력은 위기의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가족 구성원들의 작은 시도를 통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우리집은 도대체 왜 이럴까'에 대한 대답은 '하나가 아니어도 괜찮아'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 한 장면




가족,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


우리에게 가족의 의미가 단순히 '동일한 가족관계 등록부 내에 있는 친족'이라는 사전적 의미의 첫 번째 항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조직체에 속하여 있거나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두 번째 의미로도 확대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무언가를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의미로도 분화될 수 있다면 <우리집>은 문제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함께 모인 이들이 무언가를 나눌 마음만 있다면, <우리집>의 모든 구성원들이 반드시 함께 모여 식사를 하지 못해도, 우리가 자주 함께 가족 여행을 떠나지도 못해도, 그 구성원들이 언제나 함께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지 않아도 <우리집>은 여전히 <우리집>이며, 가끔 흔들리고 무너져도 다시 쌓아 올릴 수 있는 <우리집>이 되지 않을까.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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