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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Sep 20. 2019

누가 살인을 추억하는가?

봉준호 감독, 송강호 김상경 주연의 <살인의 추억>을 소환하다

DNA 감식 기술이라는 과학이 33년 전 경기도 화성시 일대에서 시작된 연쇄살인 사건을 소환했다. 덕분에 봉준호 감독의 2003년 작품 <살인의 추억>도 다시 보게 됐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여성을 상대로 유괴, 납치, 강간, 살인을 저지른 전대미문의 연쇄살인범을 소재로 다룬 봉준호 감독의 대표작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밥은 먹고 다니냐?"부터 "향숙이 이뻤다."에서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까지 영화의 주요 대사를 유행어로 만들었고, 관객들은 처음 접하는 완성도 높은 한국적 미스터리 스릴러물의 긴장감과 속도감 있는 전개에 빠져들었다.

영화 포스터 


디테일의 황제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봉준호 감독은 주요 등장인물들의 성격, 배우들의 대사, 현장의 소품 배치과 미장센의 기획에 이르기까지 연출할 수 있는 영화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디테일을 살려내고, 디테일을 강조한다. 덕분에 영화는 스릴러 장르 영화가 빠지기 쉬운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고 장면 장면마다 해학과 풍자를 드러내며 생기발랄하게 전개된다. 이는 러닝타임이 130분이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결정적 이유일 것이다.



김상경과 송강호


영화는 먼저 '미치도록 잡고 싶은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두 형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송강호가 연기하는 시골형사 박두만은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 추론과 이성적 판단보다는 직관과 예감에 의존하고, 균형 잡힌 사유보다는 사물의 일면적인 현상과 부분에 집착하는, 과학수사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현장에서 범인의 체모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무모증 환자를 유력 용의자로 올려놓고 수사를 벌이거나, 범죄현장에 남겨진 운동화 자국에만 집착하여 마을의 지체장애인을 범인으로 몰아 자백을 받아내려는 시도가 그런 직관적 무모함의 사례이다. 최근 유전자 감식을 통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범인을 애초부터 용의 선상에서 제외했던 이유도 혈액형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박두만 형사 역 송강호


한편, 서울에서 지원 온 도시형 수사관 서태윤(김상경)은 현장보존과 증거분석을 중요시하는 나름 과학수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식 있는 엘리트 형사로 그려진다. 그러나 시골마을의 평온이 연쇄 살인과 강간으로 처참하게 깨지고 범인은 단 하나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연쇄살인을 이어 나가고, 경찰과 수사관들의 무능에 대한 질책과 비난이 격해지면서 그도 자신의 '과학수사의 원칙'을 버리고 자백에 매달리게 된다. 범인을 찾아내는 일이 요원해지자 범인을 만들어 내는 일에 집착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서태윤 형사 역 김상경

영화 <살인의 추억>이 새로왔던 점은 연쇄살인이라는 폭력성을 해결하지 못하는 원인이 국가권력 혹은 경찰로 대표되는 국가 공권력의 폭력성에 있음을 직,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선량한 시민을 단지 털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운동화를 신었다는 이유로 일단 폭력을 가해 자백을 받아내려는 수사 관행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인 전두환 정권의 폭력성과 비민주성에 대한 고발로 읽을 수 있다. 범인 수색을 위해 인력지원을 요청하지만 경찰병력은 시위 진압에 동원하느라 지원받을 수 없고, 술자리에서 형사들이 옆 좌석의 대학생들과 벌이는 집단 난투극과 이 싸움으로 인해 얻은 파상풍으로 다리를 잃어야 하는 조용구 형사의 모습은 공권력의 무능력과 폭압성, 불구성을 드러낸다. 


1986년에서 1987년에 이르는 시기, 우리 정치사는 박종철 고문치사 및 은폐 시도,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인마살상용 최루탄 직격 발사로 인한 연세대생 이한열 사망사건에 이르기까지 군부독재의 폭력성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즉, 국가권력의 폭력도 연쇄적이었고, 폭력의 수준은 매우 잔인했고, 폭력의 범위는 권력 상층부에서부터 지방도시 경찰서의 취조실에서도 고문이 자행될 정도로 도처에 편재되어 있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범인인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는 여자아이의 "그냥 평범했어요."라는 말처럼 군사독재폭력성은 특이하고 유별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토록 잔인하고 견고해 보였던 공권력의 문제 해결 능력은 결여되어 있었고, 형사들은 범인은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고, 결국엔 아무에게라도 너무나 듣고 싶었다 "내가 다 그랬다" 자백이.      



영화 속 한 장면

영화의 마지막에서 결국 그토록 잡고 싶었던 범인을 끝끝내 잡지 못하고 평범한 영업사원이 된 김두만 형사가 우연히 범죄현장에 들러 알게 되는 사실, 이 화성 연쇄 살인범이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 살고 있으며, 우리 주변의 누군가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영화가 끝나도 쉽게 가시지 않는 긴장과 두려움을 던져준다. 


최근 DNA 유전자 데이터 분석을 통해 밝혀낸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는 1994년에 자신의 처재를 강간한 뒤 잔인하게 살해하여 부산교도소에서 모범수로 복역 중이라고 한다. 그의 유전자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 중 3건에서 수거된 범죄 용의자 DNA와 일치한다고 한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이춘재'의 자백을 받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영화 포스터

유전자 감식 기술의 발달로 갑자기 소환된 33년 전의 연쇄살인 사건이 내게 환기시켜 주는 것은 '살인의 추억'이 아니라 '살인의 현재성'이다. 국가권력의 폭력성을 고발한다는 선의를 위해 전시되는 여성 피해자들의 참혹한 이미지들도 여전하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현실에서는 범죄의 주요 희생자가 되고, 대중매체 속에서는 다시 주로 희생자의 이미지로 과다 소비된다. 33년 전에도 그랬듯이 33년 후인 지금도 여전히 여성들은 잔혹한 '묻지마 범죄'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고, 여성 피해자들은 도처에서 양산되고 있고, 국가는 이들에게 적절한 보호와 안전을 제공하지 못한다. 



여성을 주요 공격 대상으로 하는 잔혹 범죄에 대한 예방책과 문제 해결을 공권력에 기대하기도 요원하다. 33년 전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는 말이 무능력의 고백처럼 들렸듯이, 지금 "유력 용의자가 화성에 거주했다면 조사를 받았을 것"이라는 당시 수사관의 발언은 공허하다. 범인이 사건을 저지르고 거주지를 이동하면 절대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인지... 



우리는 이제 33년 전에는 우리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던 그 범죄들의 반복과 확산에, 그 범죄들의 잔혹성에 이제는 무감각해진 듯 덤덤하게 살아간다. 누가 살인을 추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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