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당신도 가끔은 이런 생각에 빠져든 적이 있지 않던가.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왠지 '잘' 살고 있지는 못하다는....
불성실하거나 게으름을 피운 적도 없는데 삶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당신은 결국은 늘 무언가 입력되길 기다리며
제자리에서 깜박거리는
모니터 속 커서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길한 생각.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표해야 할 최소한의 예우는 무엇인가?
그것은 고객과 점원,
고용주나 고용인, 자본가나 노동자 등
특정한 사회적 지위나 관계 이전의 인간을,
사기꾼이라느니 게으르다니 하는 가치판단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인간 자체를,
숫자나 기호로 표현되거나,
지표나 수치로 계량화되지 않는,
고유한 체취를 지닌,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individual)' 한 개인을,
그 존재의 '고유명사'
즉, 자신의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
그리고 그 고유한 존재로서의
자존심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물적 조건과 사회적 대우를
제공하는 것 아닐까?
주인공 다니엘이 숨을 거두기 직전에 외쳤던 것도
바로 그 단순한 요구였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효율성과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분으로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인간에게 가했던 최대의 폭력이
바로 그 최소한의 삶의 조건조차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자유롭게 전 세계 국경을 넘나들며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던 국제금융자본은
'서브프라임'이라는
부실 모기지 상품으로 국제금융위기를 초래했고,
주인공 다니엘처럼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전 세계 중산층들의 삶은
국적을 가릴 것 없이 일순간에 붕괴되었으며,
극단적인 사회적 양극화 속에서
공적 영역까지 파고든
신자유주의의 망령은 그 몰락한 중산층에게
그 어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도
제공하지 못했다.
그 철저한 인간소외와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여파 속에서
최소한의 인간적 자존심마저 무너뜨리는
관료주의에 분노하며 다니엘이 외치는 말,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보험 번호 숫자도 ,
컴퓨터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