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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Jul 10. 2021

숨이 멎을 듯한 <빛나는 순간>

소준모 감독, 고두심 지현우 주연의 영화 빛나는 순간을 보다


 



소준모 감독의 장편 영화 <빛나는 순간>은 제주 해녀 진옥(고두심)과 그녀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다큐멘터리 PD 경훈(지현우)의 '빛나는 사랑'을 그린다. 4. 3. 사태 때 숨을 참지 못해 아버지를 잃어야 했던 어린 진옥은 섬사람의 본능으로 처음엔 '육지 것들' 중 하나인 경훈에게 거리를 둔다. 바닷속 깊이 사랑하는 사람을 묻고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서 삶을 이어 나가야 하는 진옥은 이제는 바닷속에서 가장 오래 숨을 참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사랑을 잃은 상처로 바닷속에서는 춤을 쉴 수 없는 경훈의 상처를 이해하는 순간 그를 다시 보게 된다. 서른의 나이도, 육지라는 출신도 보이지 않는 '알몸'의 그를. 그는 평생 동안 그 누구도 그녀에게 단 한 번도 말해준 적 없는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이고 그녀의 손을 잡아 준다. 그렇게 그의 사랑은 세상 누구보다 숨을 잘 참는 진옥을 숨 막히게 하기 시작한다.   




빛나는 순간, 특별한 사랑

경훈보다 서른 살 연상의 해녀 진옥(고두심)을 사랑한다는 경훈(지현우)의 고백을 듣고 경훈의 선배는 "역겹다"라고 비난한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 아니, 한 사람으로 인해 숨이 멎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진옥과 경훈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빛나는 순간>이 보이지 않고, 이 영화가 그리는 특별한 사랑이 특이하게만 여겨진다. 숨이 멎을 듯한 사랑에 빠진 사람이 가까스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고르는 휘파람 같은 '숨비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인지 들리지 않는다.




그들에겐 이 사랑의 특별함이 보이지 않고 특이함만이 보인다. 70대 여자와 30대 남자의 사랑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되지 않는다. 아니, 사실 이 사랑의 당사자들 진옥과 경훈도 그들 사랑의 특별함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젊은 남자의 몸을 탐하는 자신의 욕망이 부끄러웠고 그를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이 미웠다.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남들에게 들킬까 봐 두려웠다. 그 감정이 서로에게 줄 상처가 무엇보다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해녀의 삶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빠져들었고 비록 이 사랑이 영원할 수 없음을 알더라도 거부할 수 없었다. 꽃이 필 때 잎은 없고 잎이 자랄 때는 꽃이 피지 않으므로 서로 볼 수 없다는 상사화처럼 자신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았지만 이 <<빛나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들의 감정과 욕망을 받아들이기로 한 진옥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네, 특이한 게 아니라 특별한 거였네."


사랑은 '물질'이어라

사실, 진옥에게 사랑은 그녀가 평생 해 온 물질과 닮아있다. 한번 빠지면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기쁨과 상처를 그 안에 모두 품고 있는 것도 그렇다. 깊은 바닷속에서 자신의 숨 하나에 오롯이 의지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송두리째 자신의 몸을 던져야 자신이 지닌 소중한 것들을 조금씩 내어주는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겁먹지 않고 상대를 믿음으로 대해야 살아 돌아 올 수 있다. 그래서 진옥은 괴로워하는 경훈에게 "바다는 알고 있어"라며 마음의 위로를 전하는 것이다.



진옥이 어린 딸을 그 속에 묻고도 해녀로서의 삶의 기반인 물질을 그만둘 수 없듯이 진옥과 경훈은 이 특별한 사랑을 시작하기로 한다. 새로운 사랑의 시작엔 당연히 기존의 것과의 결별이 따른다. 그 결별엔 대가와 희생이 따를 것이고 그러므로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파도처럼, 바람처럼 들이닥친 이 사랑을 따라 제주를 떠나 '육지 것'인 경훈과 함께 하겠다며 진옥은 눈물을 흘린다. 그녀에게 해녀학교 교사 설희는 이렇게 말한다.                            

"진옥 삼춘, 겁먹지 말아요."





사랑한다는 말

어쩌면 진옥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사랑이 시작될 때부터 이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그래서 그녀는 경훈에게 공항에서 만나자면 집으로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 진옥과 비슷한 연배의 대다수 여성의 삶이 그랬듯이 평생을 같이 살긴 했지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들어본 적 없는 그녀의 삶은 어떤 의미에선 불구의 삶이었다. 뒤늦게 처음 느끼고 처음 알게 된 사랑의 감정을 따라 나서기 위해 짐을 꾸리고 방문을 열었지만 송장처럼 누워있는 남편의 눈을 마주친 진옥은 결국 떠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상처와 기쁨,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준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바다 위에는 그녀의 고운 숨비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빛나는 순간>이 새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 늘 그녀에게 이 바다와 함께 했음을. 이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더욱 빛나고 오래 간직될 것임을! 그녀의 가슴속엔 언제까지나 이 한마디 말이 가득 채워져 있을 것임을!    


"이녁 소랑 햄시다"   



숨이 멎을 듯한 사랑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이 영화가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아름다운 영화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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