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꿈공 Oct 15. 2020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영화 <서프러제트>와 여성 참정권 운동 _실화와 영화_01


사라 가브론 감독이 만들고 캐리 멀리건, 메릴 스트립, 헬레나 본햄 카터 등 명배우들이 출연한 영화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있었던 여성 참정권 운동을 다룬 영화다. 영화 제목 서프러제트 (Suffragette)는 참정권 또는 투표권을 의미하는 단어인 suffrage에 귀여운(?) 여성을 뜻하는 접미사 -ette를 붙여 만들어진 단어로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를 부르는 말이다. 이에 비해 19세기 중, 후반 영국 남성 노동자들의 참정권 운동은  차티스트 운동(Chartist Movement)이라고 부른다.  영화 <서프러제트>는  영국의 급진적 여성 참정권 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 1858~1928)의 자서전 <My Own Story, 한국어판: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평범한 세탁 노동자였던 모드 와츠( 캐리 멀리건)



영화 속에서도 팽크허스트(메릴 스트립)의 활동이 나오기는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세탁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다 우연히 서프러제트 동료 바이올렛를 만나 여성 차별적인 노동환경과 임금격차에 눈을 뜨고 스스로가 서프러제트로 변모하는 가상의 인물 모드 와츠(케리 멀리건)이다. 모드는 공장에 들어온 서프러제트동료와 그저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권리, 직장 내 성차별적 노동환경과 여성 참정권의 필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직장과 가장에서 배척당한다. 끝내, 같은 세탁 노동자인 남편으로부터 이혼당하고 가정에서 쫓겨나 아들의 양육권마저 빼앗기게 되자 모드는 가정과 사회에서 자행되는 성차별과 억압적 현실에 눈을 뜨고 여성 참정권 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실정법의 테두리와 합법의 한계 속에서는 자신들의 의지가 관철될 수 없음을 자각한 그녀는 자신을 폭력적이라 비난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당당하게 외친다.


"내가 법을 존중하길 바라나요? 그럼 존중할만한 법을 만드세요." 

"You want me to respect the law? Then make the law respectable."


공장장의 반복적인 성착취와 억압


영화는 이렇듯 가상의 여성 노동자를 설정하여 그가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어떤 차별과 억압을 당하는 지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이런 영웅적 인물 중심의 장르 영화가 흔히 빠지기 쉬운 도식인 선한 주인공의 교훈적 투쟁과 이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악의 무리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난다. 영화는 한 평범한 여성 노동자에게 가정과 사회에서 가해지는 구체적인 차별과 억압의 양상은 어떤 모양인지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러한 억압과 차별 속에서 주인공은 어떻게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해석하며 스스로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자각하고 변모하며 마침내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지를 세심하게 묘사해 낸다.    


여성 참정권에 눈을 뜨다


직장에서 사용자의 습관적 성폭력에 반감을 느끼고  여성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가정에서의 가부장적 폭력에 차츰 저항하기 시작하는 모드가 남편과 나누는 대화는 그녀의 의식적 성장을 보여준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자각한 모드는 그 시대의 여성을 대신해 남편에게 묻는다.

"우리가 딸을 낳게 되면 우리 딸은 어떻게 살게 될까?"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남편도 그 시대의 남성을 대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처럼 살겠지."



결국, 그 시대의 당연한 질서인 남성 우월적 지위를 거부하고 직장과 가정,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대우를 꿈꾸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자신의 아이마저 남편에게 빼앗기는 모드의 처지는 

여성으로서의 주체적 삶이 개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아들에 대한 양육권을 빼앗긴 모드가 이에 항의하자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법적으로 아이는 내가 가져가게 되어있어. 법이 그렇다고!"

그러자 모드는 단호하게 선언한다. 

"그럼 내가 법을 바꾸겠어." 


더 이상 숨죽이고 억압을 견디지 않는 


그렇게 모드는 20세기 영국에서는 허용되지 않던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대우, 평등한 권리를 주장했기에 모든 것을 빼앗긴 상황에서 평범한 여성 세탁 노동자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가로 새로 태어난다. 그리고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평등한 지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서프러제트>의 주인공 모드의 외침은 큰 울림을 얻는다. 




물론, 영화와 달리 실제의 서프러제트 운동은 그 성과만큼이나 많은 한계가 있었다. 당시 여성 참정권 운동의 지도자 에멀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는 여성 사회 정치연합(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 WSPU)과 같은 전투적 투쟁단체를 결성하여 가두시위, 유리창 깨기, 기물파괴, 방화, 단식 투쟁 등등의 과격한 투쟁을 통해 여성 참정권 투쟁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하고 1918년 마침내 영국 최초로 여성들은 참정권을 보장받는다. 그 연설 중 한 대목을 여기 옮겨보자면, 


"우리 서프러제트가 유일하게 함부로 다루는 목숨은 자신의 목숨뿐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하건대, 

우리의 정책은 결코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위태롭게 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다루는 것은 우리의 적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은 전쟁을 벌이는 남성들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런 일은 여성들이 취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대중과의 관계를 보더라도,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투쟁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사람의 삶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재산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산을 통해서 적을 공격할 것입니다." 

- 에멀린 팽크허스트 저.〈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 김진아, 권승혁 공역. 현실문화연구. 2016, p. 343)



하지만, 이때 투표할 수 있는 영국 여성은 에멀린 팽크허스트처럼 30세 이상의 부르주와 계급 출신의 여성들에 국한되었고 영화 <서프러제트> 속 주인공 모드와 같은 노동자 계층에까지 참정권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출신 계층과 재산의 보유 여부를 떠나 21세 이상의 모든 영국 여성들에게 참정권이 보장된 것은 세계대전의 여파로 여성 노동력이 다급하게 필요해지자 여성들의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1928년이었다. 팽크허스트는 바로 그 직전에 사망했다. 

영국 서프러제트 운동의 지도자 에멀린 팽크허스트



팽크허스트 자신도 상류층 출신이었고 당시 대부분의 서프러제트는 상류 계급 출신이었다. 영화 주인공 모드와 같은 노동자 출신 서프러제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영화 속에서 서프러제트의 활동은 백인 여성들의 투쟁만으로 다뤄지지만 실제 1911년 서프러제트 행진에는 당시 대영 제국에 속한 호주, 인도, 뉴질랜드 여성들도 참가했다. 대표적으로 인도의 소피아 둘레프 싱 공주는 여성의 국제적 연대를 믿으며 영국 여성의 참정권 운동에 함께 하기도 했다. 당시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참정권을 획득하면 다른 영국 식민지들에서의 여성들의 정치적 권리를 위한 투쟁을 지원할 수 있을 거라며 그들을 설득했던 것이다. 식민지 여성들의 참정권 투쟁에 동참한 영국 여성들도 있었지만 심지어 급진적 여성 운동가로 평가되는 에멀린 팽크허스트조차 제국주의적 한계를 드러냈고 노라 엘람 같은 서프러제트는 극우 파시스트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영국 서프러제트 운동에 함께 했던 식민지 인도 여성들


실제 서프러제트 운동이 일정한 한계를 노정하고 있었다고 해서 여성운동과 참정권 투쟁에 있어서 그 역사적 의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도 영화 <서프러제트>가 실제의 서프러제트 운동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예술의 목적이 현실의 모방적 재현 그 자체에 있지 않듯이 영화 <서프러제트>의 의의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있었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영화적으로 재현하는 데 있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영화 <서프러제트>는 생생한 차별주의를 내면화한 등장인물들에 구체적이고 세밀한 성격 부여와 간결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대사를 통해 이 영화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재현하는 시대극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 스릴러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앞에서 언급한 대사 이외에도 영화 속에는 여성에 대한 내면화된 차별과 냉소를 고스란히 들어내는 철촌살인의 대사가 넘쳐난다. 예를 들어 여성 참정권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모드에게 남편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투표권? 당신이 투표권을 가져서 뭘 하려고?" 

이에 격분한 모드는 간결하게 대답한다. 

"뭘 하긴? 투표를 하지. 당신처럼."


이혼 후에 아들마저 빼앗긴 모드



어쩌면 이런 사태의 정곡을 찌르는 대사들 덕분에 관객들은 이 영화를 어느 영화 평론가가 표현했듯이 '보이는 것이 사물보다 더 가까이 있다'라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영화 <서프러제트>가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이후 상영 중인 극장 내에서 남성 관객들에 의해 자행된 여성 혐오적 소란과 폭력사태는 이 영화의 주제가 갖는 현재성을 그 어떤 주장과 논리보다 더 생생하게 웅변해준다. 영화는 끝나도 영화 속 현실의 실재성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놀라는 혼자가 아니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