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신화에서 그리스도교까지
신이 작가가 되고자 했을 때 그리스어를 배웠다는 것
그러나 그가 그것을 더 잘 배우지 못했다는 것은 미묘한 일이다
Es ist eine Feinheit, dass Gott griechisch lernte, als er
Schriftsteller werden wollte - und dass er es nicht besser lernte.
- 니체, <선악의 저편> 중에서
우리가 '서양' 혹은 '서구'라고 말할 때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지역은 보통 유럽이다. 그래서 서구 문명, 서구 문화, 서양 철학이라고 말할 때도 우리는 주로 우리가 '유럽'이라고 부르는 지역을 염두에 둔다. 물론 영국과 미국이 나름의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서구 문명사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음이 사실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서구 문명'일라고 말할 때 우리는 '유럽'과 구분되는 '영미권'을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서구 문명의 중심이 무엇보다 우리가 '유럽'이라 부르는 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 유럽 문화, 유럽 문명의 본류를 이루고 있는 두 줄기가 바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바탕으로 한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유럽의 미술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무수히 많은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서의 한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미술관뿐만 아니라 유럽의 거리에서도 그리스 로마 문화의 유적을 만나는 일은 피할 수 없고, 수많은 성당과 교회 건축물을 떠나 서구 건축과 미술을 이야기할 수 없다.
철학은 또 어떤가? 서양 철학의 시원을 이룬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아퀴나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중세철학이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철학 그 자체이다. 니체와 하이데거, 질뢰즈와 데리다, 라캉과 메를로 뽕티에 이르는 현대철학을 읽다 보면 이들이 '그리스 시대'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니체는 어디선가 "아, 그리스인들은 진정 삶을 사랑할 줄 알았다!'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구문화와 예술, 서양 철학과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핵심 키워드인 그리스 문화 즉 헬레니즘과 기독교 문명 즉 '헤브라이즘'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는 현대 유럽을, 서구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로마 문화와 기독교 문화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동서양 문명사를 연구하는 안계환 작가가 쓴 <유럽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는 바로 이 목적에 가장 충실한 책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그리스도교까지"라는 책의 부제처럼 <유럽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는 유럽을 이해하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로 그리스 문화와 기독교 문화를 꼽는다. 유럽을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인 그리스 신화를 다루는 앞부분에서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과 영웅,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등장하고 신화에 나타난 인간과 신의 행동의 의미들을 추적한다. 물론 우리가 그리스 문화라고 할 때 그 '그리스'가 현재의 그리스와는 다른 '헬라인'들의 그리스임을 잊지 않는다.
유럽을 이해하는 두 번째 키워드 그리스도교를 다루는 책의 뒷부분이 내게는 더욱 흥미로웠다. 사실 그리스 로마 문명에 대한 소개는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지만 그리스도교 혹은 기독교에 대한 객관적이고 풍부한 문명사적 소개는 아직 드문 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유럽 문화의 또 다른 골격을 형성한 기독교가 유대인들의 민족 종교에서 로마시대를 거쳐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보편 종교로 어떻게 재탄생했는지, 또 어떻게 기독교 문화가 유럽 문명에 수용되어 서구인의 삶과 문화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유럽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는 한마디로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도교가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끼쳐왔는지, 그리스 로마 신화와 기독교라는 종교는 어떻게 유럽 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
오늘날 유럽 문화의 진짜 얼굴을 만들었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서구문화와 예술, 서양 철학과 역사를 그 뿌리에서, 그 근원에서부터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