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로츠뎀 Nov 07. 2022

가재는 노래하지도,
울지도 않지만

올리비아 뉴먼 감독, 데이지  에드가 존스의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모처럼 오랜만에 아름답고 감동적인, 긴 여운이 남는 영화를 만났습니다. 

델리아 오언스가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썼다는 소설을 영화화한 <가재가 노래하는 곳>입니다. 선악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자연의 섭리에 대한 원작의 깊이 있는 사유와 독립적 여성들의 삶과 연대에 관한  풍요로운 서사를 영화가 오롯이 담아내지는 못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분명 지금의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깊은 울림을 남기는 영화입니다. 어린 나이에도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주는 아역 배우들부터, 데이지 에드가 존스나 테일러 존 스미스 같은 앞으로도 주목할만한 MZ 세대 배우들, 관록을 자랑하는 데이비드 스트리 탄 같은 명배우들이 영화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줍니다.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가봐. 저 멀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올리비아 뉴먼 감독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미국 남부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의 해안 습지를 무대로 홀로 살아남아야 했던 '습지 소녀' 카야의 아름답고 눈부신 생존의 기록입니다. 

동명의 원작 소설을 쓴 델리아 오언스(Delia Owens)는 미국 조지아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캘리포니아대에서 동물행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생태동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원작자의 전문성 덕분에 영화의 주요 배경인 습지의 생태 묘사는 영상으로도 봐도 너무나 탁월합니다. 나뭇가지마다 유령처럼 걸린 스패니시 모스와 무른 흙에서부터 드넓은 늪과 못에 떠다니는 물풀들까지, 올리비아 뉴먼 감독은 투명하게 부서지는 자연광 속에 아우터뱅크스 해안습지의 비현실적인 풍광을 과분할 정도로 아름답게 담아냈습니다.  




영화는 어느 가을 아침, 자전거를 타던 마을 소년들이 해변 습지에서 체이스 앤드루스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시작됩니다. 자살의 단서도, 타살의 흔적도 남기지 않은 체이스의 죽음은 어린 나이에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채 습지에서 홀로 살아가던 '습지 소녀' 카야 클라크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만들어 법정에 세웁니다. 문명 세계에 속하는 마을 사람들과 떨어져 그들에겐 '더럽고 냄새나는 야생의 습지'일 뿐인 곳에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채 홀로 살아가며,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고 죽은 체이스와 가까이 지낸다는 '소문'이 돌던 카야는 그렇게 사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입니다.



그러나 편견에 가득 찬 마을 사람들과는 달리 어린 카야에게 호의적이었던 은퇴한 변호사 톰 밀턴의 도움으로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떻게 야생의 숲에 홀로 버려진 자신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어떻게 완전한 고립과 외로움 속에서도 독립된 여성으로 성숙하고 자연과 생명, 삶과 사랑의 의미를 깨우칠 수 있었는지를. 

어떻게 절망과 아픔, 배신과 좌절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 자연과 인간의 진정한 관계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는지를.

무엇보다 어떻게 카야가 사랑으로 위장한 야만적 폭력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포식자의 잔인함에 짓눌려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그 폭력에 저항하여 자신의 삶을 당당히 개척해 나갔는지를. 





결국, 카야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보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은 습지는 단순히 음습하고 축축한 늪과 구렁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때론 슬픔과 고통이 진흙 가득한 수렁처럼 우리의 발목을 잡더라도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역시 단단한 맨땅이 아니라 잡초와 이끼 가득한 축축하고 어두운 습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습지의 가혹한 운명이 어떻게 자체로는 모든 생명과 생존의 바탕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눈부신 풍광과 기막힌 반전, 인간의 삶과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곱씹어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한번 보기에는 너무 아쉬운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가재는 때로는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기도 하고 해변 습지의 모래 속을 파헤쳐 찾은 먹이를 잡아 먹기도 하지만 가재는 노래하지도, 울지도 않고 어미는 자식을 낳고 살고 죽으며 그렇게 삶을 이어 나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무 가까이, 희미하게 깜박거리는 이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