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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Nov 08. 2022

'성덕'되기가
이토록 힘든 일인가

오세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을 보다


성덕. 임금의 덕을 높여 부르는 말도 아니고, 성인의 거룩한 덕을 이르는 말도 아니다. '성덕'은 '성공한 덕후'의 줄임말이다. 오세연 감독의 다큐 영화 <성덕>은 '성덕되기'의 어려움과 아픔을 그린 영화다. 왜 성공한 덕후 되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그냥 자신의 맘에 드는 연예인 오빠를 그저 몹시 좋아하기만 하는 일이 한국사회에서는 왜 이토록 힘든 일이 되는가? 나의 열정과 기대를 왜 오빠들은 이다지도 쉽게 배신하는가? 그리고 우리 덕후들은 왜 여전히 오빠의 잘못 때문에 아파해야 하고,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 오빠의 이해할 수 없는 배신을 이해해보려 머리를 싸매야 하는가? 

왜? 왜, 한때 나의 우상이었던 오빠는 한순간에 파렴치한 성범죄자가 되었는가?



“어느 날 오빠가 범죄자가 되었다. 나는 실패한 덕후가 되었다”

 

  


오세연 감독 자신이 한때 인기 아이돌 가수 정준영의 '덕후'로서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을 ′성덕′이라 자처했다. 팬 미팅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라'는 오빠를 말을 가슴에 새겨 실제로 전교 1등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오빠의 말은 소중했고, 오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그런데 그토록 믿었던 오빠는 몇 년 뒤 성관계 장면 불법 촬영 및 유포, 집단 성폭행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렇게 오빠를 사랑했던 오 감독과 오 감독과 함께 오빠의 열성 팬이었던 성덕들은 실망과 분노, 슬픔과 연민으로 뒤섞인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 빠져들었다. 감독은 이제는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하는 범죄자가 된 오빠를 만나러 법원에 가기도 하고, 한 때 함께 울고 웃었던 팬들을 만나 그들의 속마음과 소회를 들어본다. 



배신감과 분노로 치를 떨며 이젠 '실패한 덕후'가 되어 아무런 기대도 없는 팬들도 있고, 같은 '오빠'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젠 같은 처지의 '실패한 덕후'가 된 팬들도 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단지 그들이 인기 아이돌 오빠를 좋아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의 추억과 열정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경험을 공유한다.  ′너무 많이 사랑했기에 더욱 많이 고통받는′ 같은 처지의 성덕들을 만나다가 여전히 오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일부 골수팬들의 심정이 '태극기 부대'의 그것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박근혜 석방 시위′를 이어가는 서울역 앞 태극기 부대에까지도 침투해 그들의 속내를 들어본다. 그리고 거칠고 과격한 구호가 난무하는 시위대의 마음 한구석에서 '실패한 덕후'인 자신들의 마음과 조금은 닮은 아픔을 발견한다. 




결국, 영화 <성덕>은 덕질조차 맘 놓고 할 수 없는 우리 현실에 대한 신랄한 사회고발 영화이자,

단칼에 자신들의 사랑을 부정할 수만은 없는 사랑으로 인해 여전히 괴로워한 연인들의 애절한 멜로드라마이자, 자신들의 덕질이 의도와는 달리 연예계애 만연한 여성 혐오와 성범죄를 묵과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고민하는 자기 성찰 영화이다. 마지막으로 한때 오빠로 인해 울고 웃었던 추억을 여전히 간직해야 할지, 지워야 할지를 고민하는 많은 '실패한 덕후'들에게 들여주고 싶은 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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