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제19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 참관기_EP.01
독일과 우리나라 선거 풍경 무엇이, 왜, 어떻게 다른가
2017년 9월 2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선거방송>의 프로그램 촬영, 제작을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투표소를 방문했습니다. 이번 독일 연방하원선거(우리의 국회의원 선거에 해당) 참관은 유럽 의회 민주주의 모범이자 정치 선진국인 독일의 선거와 투표 현장을 직접 방문해서 늘 미흡한 선거관리와 부정선거 시비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선거관리 업무에 교훈을 삼고자 함입니다. 과거 독재정권이 자행한 부정선거의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 유권자들은 우리나라의 투표제도와 선거관리에 대해 현재는 상대적으로 높은 신뢰감을보내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정파 간 이해관계에 따라 부정선거의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선거 때가 되면 일부 '시민단체'가 눈에 불을 켜고 전국의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직접 밤을 새우며 지키기도 하고, 선관위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샅샅이 촬영하며 선거관리의 문제점을 찾아내려 애를 씁니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엄정한 선거관리를 위해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감시하는 주체로 나선 것입니다.
정치 선진국 독일은 선거를 어떻게 관리할까?
2017년 9월 24일 오늘은 독일 전역에서 제19대 연방의회(Bundestag, 분데스탁) 선거(총선)를 통해 임기 4년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날입니다. 요즘 우리 정치권에서도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패스트 트랙 때문에 논란이 많은데 새로운 선거제 개혁안이 모델로 삼고 있는 선거제도가 바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입니다. 오랜 의회민주주의 전통과 운영의 묘를 살린 선거제도를 통해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는 효율적이고 정당성 높은 정치제도를 갖추고 있는 독일은 유럽국가들 중에서도 정치 선진국으로 손꼽힙니다. 그래서 저도 독일 총선이 실시되는 투표소 현장을 돌아보며 그 생생한 투표현장과 투표소 풍경을 전하고 아울러 독일의 선거제도 및 투표제도와 우리나라 선거와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가 오늘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프랑크푸르트 Frankfurt am Main 시에 소재한 한 고등학교 Bettinaschule에 설치된 투표소입니다. 우리나라 선거는 보통 오전 6시에 시작해서 오후 6시면 종료되지만 독일의 투표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오전 7시 30분경 투표관리관과 투표사무원들이 투표소 설비를 하고 있습니다. 투표소 입구에는 투표소 번호(100-02, 180-02 등)가 적힌 투표소 표지판이 걸려있고 투표소 안에는 기표대 4개와 투표함 하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선거철이면 거리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19대 연방의회 선거 공고문도 하나 투표소 안에 걸려 있습니다.
투표소 입구에서 왼쪽에 놓여있는 테이블에는 투표사무원 4명이 앉아 2명은 투표용지를 나누어주고 나머지 두 명은 투표하러 온 사람이 이곳 투표소 선거인명부에 등록되어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투표함은 놀랍게도 투표소 한가운데가 아니라 투표사무원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사이에 놓여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투표소의 평온함과 여유로움입니다. 이제 곧 8시면 투표가 시작될 텐데 투표소에는 투표관리관과 투표사무원들이 조용히 투표소 설비를 점검하고 있을 뿐 아직 투표하러 온 선거인으로 붐비지는 않습니다.
내 마음은 불안한데 투표소는 몹시 평온하다!
그런데, 투표소 설비를 하고 있는 투표사무원들 보면서 저는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투표관리관과 투표사무원은 보통 해당 지역 지자체 공무원들 중에서 선발해서 일정기간 선관위의 교육을 받고 투표관리 업무를 담당합니다. 공무원 경력이 꽤 되는 분들 중에서 선발하기 때문에 투표관리 노하우도 상당히 축적하신 분들이고 따라서 엄정한 선거관리와 투표관리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는 투표관리관과 투표사무원들은 그냥 일반 시민들이라고 합니다. 일정 시간 교육을 받기는 하지만 해당 지역 유권자들 중에서 무작위로 선발되어 투표관리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고 하며 이것은 일종의 시민적 의무여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거부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일반 시민들에게 투표관리 업무를 전담시키다니! 그들 중에는 당연히 정치적 입장이 다른 당원들도 포함됩니다. 저는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들 일반인으로 엄정하고 중립적인 선거관리가 가능할까? 정치 선진국이라는 독일이 왜 이런 허술한 선거관리 제도를 도입한 것일까?
투표가 시작되기 전에 투표관리관은 투표함을 확인한 후에 봉인하고 기표대의 이상 유무를 살핍니다. 우리나라에서 투표함을 봉인할 때 사용하는 특수 봉인지나 특수 자물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냥 하얀 종이테이프를 투표함 뚜껑 주위에 붙이는 게 전부입니다. 누구나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테이프를 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특수 봉인지는 한번 붙였다 떼면 표시가 드러나기 때문에 재사용할 수 없는 안전한 특수 봉인지입니다. 그리고 자물쇠는 뻰치로 잘라내야만 떼어낼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고 강력합니다.
투표소를 점검하는 투표관리관의 모습을 보며, 투표소에 설치된 기표소의 모습을 보며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럽의 선진국이라는 독일, 의회민주주의의 모범으로 늘 인정받는 독일 선거, 독일 투표소의 실제 모습이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저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과연 공정하고 중립적인 선거가 가능할까? 선거 결과에 대한 시비에 휩싸이지는 않을까? 끝없는 의구심과 걱정이 밀려들기 시작합니다.
그럼 독일의 투표는 우리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요? 우선, 투표소 설비들이 허술하고 미흡하기 짝이 없습니다. 먼저 기표대를 보면 조립식 판때기 3개를 경첩으로 이어 붙인 패널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이 전부입니다. 약간만 힘을 줘도 쓰러지거나 넘어지겠죠. 그리고 그 기표대에는 연필 한 자루가 끈으로 묶여있습니다. 연필이라니 기가 막힙니다. 연필로 소중한 투표용지에 기표를 하다니! 우리 투표소에서 볼 수 있는 3면이 철저히 막혀있고 가림막까지 쳐져 있어, 투표하는 선거인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기표하는 모습이 노출될 수 없는 완벽한 기표대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허술한 기표대에서 투표를 한다면 어떻게 투표의 비밀이 보장될 수 있을지, 부정선거의 가능성이 얼마나 높을지 걱정스럽습니다. 번질 염려 없는 특수 인주를 묻힌 특수 기표용구가 아니라 연필로 기표를 하다니 도대체 어쩌자는 것일까요? 연필로 기표를 해서 지워지기라도 한다면, 아니 누군가가 지우개로 내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지우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려고 독일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연필로 기표를 하는 것일까요? 독일이 정치 선진국, 민주주의의 모범 국가는 맞는 것일까요?
하지만 제 걱정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8시 정각이 되어 선거인들이 투표하러 오고 투표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충격과 의구심으로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독일 선거에서는 투표용지를 정말 허술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아, 심지어 투표용지를 기념품으로 가져가라고 제게 주기도 합니다. 투표용지에는 그 부정투표를 방지하기 위한 일련번호도 찍혀있지 않습니다. 투표관리관에게 물어보니, 자신이 전날 프랑크푸르트 시청 선거담당자로부터 투표용지를 인수하여 집에다 보관하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 가져왔다고 합니다. 큰일입니다. 부정선거가 발생하려면 어쩌려고...
투표용지가 기념품?
우리나라 투표용지는 독일의 투표용지와 비교하면 거의 완벽에 가깝습니다. 우리나라 투표용지는 일련번호에 의해 관리되고 선거관리위원회 청인과 투표관리관 직인이 찍혀 있어 위변조가 불가능합니다. 이에 비해 독일의 투표용지는 어떻습니까? 일련번호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 어디에도 선거관리위원회의 청인이나 투표관리관의 직인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허술하기 짝이 없는 투표용지에 연필로 기표를 하다니. 과연 선거부정 없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선거관리가 가능할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거의 완벽에 가까운 투표용지에도 불구하고 항상 투표용지가 위조되었다느니 상이한 투표용지로 투표를 했다니 하는 의심과 불신이 끊이질 않는데 말입니다. 독일 시민들은 왜 불안해하지도 않고 부정선거를 걱정하지 않는 것일까요? 도무지 알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일련번호가 찍혀있는 투표용지를 인쇄하면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인쇄소에서 투표용지 보관장소인 선관위 사무실까지 경찰이 호송을 합니다. 투표용지 보관장소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고 경찰은 매일 밤 투표용지가 보관된 선관위 사무실을 순찰합니다. 투표 당일에는 유권자에게 투표용지를 줄 때 투표용지에 붙은 일련번호를 떼어내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그것도 밀봉해서 소중히 보관합니다. 투표용지를 함부로 보관하거나 유권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배포하거나, 일련번호가 없는 투표용지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투표용지를 철저히 관리해야 부정선거 시비가 일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투표용지를 소중히 관리합니다.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하나라도 없어지는 날에는 엄청난 사건이 되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 투표용지를 함부로 가져갈 수 없습니다. 아무 표시가 없는 종이장에 불과해도 투표용지는 소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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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들이 투표하는 모습을 보니 다시 한번 입이 벌어집니다. 독일에서는 유권자가 투표하려면 선거일 전에 각자의 집으로 배달된 <투표안내문 Wahlbenachrichtigung>을 보고 투표소를 확인한 뒤에 선거일에 그것을 가지고 투표소로 나오면 됩니다. 투표소에서는 투표사무원이 선거인이 가져온 안내문에 적힌 투표소 번호를 확인하면 투표용지를 내어 줍니다. 맙소사!! 본인 확인, 신분증 확인도 없습니다! 투표용지를 받은 유권자는 위에서 말씀드린 그 허술한 기표소에 들어가서 연필로(세상에나!) 자신이 선택한 후보자와 정당에 기표를 하고 투표지를 접어서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면 투표를 마친 선거인이 기표된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기 전에 투표사무원이 이제야 선거인명부에 해당 선거인이 등재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투표안내문>을 회수합니다. 그러면 선거인은 자신이 기표한 투표지를 투표함에 집어넣고 투표소를 나감으로써 투표절차는 끝이 납니다. 그러나 이때도 신분증은 필요 없고 확인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기표하고 나온 선거인이 선거인명부에 없으면 그 투표지를 들고 다른 교실에 설치된 투표소로 가도록 안내하거나 집으로 가도 됩니다. 기표된 투표지를 가지고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해당 투표소에서 투표해야 하는 선거인이 아닌 사람에게 투표용지를 주었더라도 그 기표된 투표지를 회수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투표관리가 정말 허술하고 엉망입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투표안내문>을 가지고 와서 투표를 하더라도 신분확인을 하지 않으니 모를 일입니다. 투표하려는 선거인이 선거인 명부에 등재되어 있으면 본인이 확인해서 서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투표사무원이 해당 선거인 명부의 확인란에 표시를 해 놓을 뿐입니다. 그것도 연필로!
결정적으로 독일의 선거에서 발견된 문제점은 모든 투표소에 투표 참관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투표의 비밀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기표대에서 특수 제작된 기표용구로 기표를 하고 철저히 관리된 투표용지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부정선거를 예방하기 위해 모든 투표소에 정당과 후보자가 선정한 투표참관인이 배치되어 있고 심지어 그들에게 세금으로 참관인 수당까지도 지급합니다. 이런 투표참관인들이 투표현장에서 부정선거가 일어나는지를 감시하고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투표함 봉인, 투표함 이송 과정에 항상 참여합니다. 허술한 독일의 선거관리와 달리 우리의 경우는 부정선거가 발생할 틈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사진이 붙어있는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을 하고, 선거인 본인이 직접 서명을 해야 투표용지를 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독일의 본인 확인 절차는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독일이 정치 선진국이 맞는지 의구심이 밀려옵니다. 아니 이젠 화가 날 지경입니다. 이렇게 허술한 선거관리를 하면서도 정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투표관리를 소홀히 하면서도 선거가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제 생각에 독일에서는 중복투표 문제, 허위 투표, 이중투표 문제와 부정투표로 인한 시비가 투표소마다 끊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입니다. 제가 방문한 투표소에서는 투표가 시작된 지 한 시간이 흘렀지만 항의하는 유권자도 없고, 소란을 피우는 사람도 없고 조용히 순조롭게 투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긴장감이나 분주함조차 없습니다. 그러니까 참관단으로 온 제가 맘껏 촬영도 하고 질문도 하면서 투표소를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부담감이 없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혹시 제가 방문한 이 투표소의 평온함은 드문 예외적인 현상일까요?
그래서 프랑크푸르트 소센하임 Sossenheim의 다른 투표소로 이동해서 독일의 투표현장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봅니다. 그러나 이곳 투표소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의 투표관리관과 투표사무원들도 한 60은 넘어 보이는 고령의 어르신들입니다. 또한 투표소에는 투표하려는 선거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입장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도 연필만 달랑 하나 달린 허술한 기표대와 일련번호도 없는 투표용지로 투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관계자에게 문의해 보니 독일의 경우는 이런 모습이 전형적인 투표소 모습이라고 합니다. 전국적으로 특별한 기표대나 기표용구는 사용되지 않으며 투표용지도 이런 식으로 허술하게 관리된다고 합니다. 투표하려는 선거인은 신분증이 없어도 우편으로 배달된 <투표안내문>만 지참하면 투표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독일의 경우는 우리나라처럼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표대, 기표용구, 투표함 등이 사용되지 않으며 주에 따라 조금씩 상이하지만 프랑크푸르트 지역 투표소처럼 단촐한 기표대와 연필, 특수 봉인지와 자물쇠도 없는 투표함 등이 사용되고 투표참관인은 별도로 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허술한 투표용품과 안이한 투표관리를 하면서 독일은 어떻게 정치 선진국이라고 자부할수 있는 걸까요? 선거부정이나 소홀한 선거관리를 문제 삼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없는 것일까요? 이런 안일한 투표관리, 선거관리를 하면서도 부정선거 시비가 일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너무나 궁금해집니다. 다음번 글에서는 계속해서 독일의 우편 투표제도와 개표 방식을 살펴보고 문제점이 없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P.02 <참을수 없는 독일선거 개표의 가벼움으로 이어집니다.)
<독일 연방의회>
https://www.bundeswahlleiter.de/ 독일 연방선거관리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