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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May 05. 2019

참을 수 없는
독일 선거 개표의 가벼움?

2017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 참관기_EP.02_개표소 풍경

지난번 글에서는 독일 연방하원 선거 투표 모습을 주로 다루었다면 오늘은 개표소 풍경을 주로 전합니다. 이번 글을 처음 읽으시는 분들은 지난번 글을 먼저 읽으시는 게 독일 선거와 우리나라 선거의 차이를 이해하시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독일의 선거가 투표방식에서 우리나라와 엄청나게 달랐던 것처럼 독일의 선거 개표도 우리와는 많이 다릅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독일의 경우에는 선거 개표도 투표 종료 이후에 투표소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투표가 끝나면 행정구역별(보통 시군구)로 모든 투표함을 한 곳에 모아 높고 투표소와는 다른 장소에 별도의 개표장을 마련해서 개표를 진행합니다. 이를 집중 개표라고 합니다. 반면, 독일은 오후 6시 투표가 종료되면 그 자리에서 개표를 진행합니다. 

독일 선거 개표사무원들 

독일은 투표소에서 그대로 개표를 진행하기 때문에 별도의 개표 진행요원이나 개표사무원도 없고 투표소에 근무하던 동일한 투표관리관과 투표사무원이 개표를 진행합니다. 투표 참관인이 없듯이 개표 참관인도 없습니다. 개표소 문은 개방하기에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개표소에 들어와 개표에 방해되지 않게 참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투표사무원과 별도로 개표사무원들을 위촉하고 개표참관인도 투표참관인과 별도로 선정할 수 있습니다. 투표함이 모두 개표장에 도착해야 개표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개표를 시작하려면 각 투표소에서 투표관리관과 참관인들이 경찰의 호송을 받으며 투표함을 개표장까지 가져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개표장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선관위 위원이나 직원, 개표사무원 및 참관인, 개표관람인, 허가를 받은 언론 취재인원과 개표 보조요원들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독일 선거 개표소 모습

우리나라는 개표가 시작되면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개표장 주위를 경찰이 삼엄하게 지키고 통제합니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에는 개표가 시작되어도 경찰은 단 한 명도 투표소에 배치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실망을 금치 못합니다. 독일은 투표관리도 허술하게 하더니 개표까지도 이렇게 허술하게 하는 겁니다.  이렇게 투표관리와 개표관리를 소홀히 하면서 공정하고 중립적인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도무지 불안한 마음에 독일의 선거 개표를 지켜볼 수가 없습니다. 

투표지 분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서로 다른 정당, 시민단체가 선정하거나 일반인 중에 선정한 수십 명에 이르는 개표참관인들이 개표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감시하고 자유롭게 촬영하고, 수많은 관람인들이 지켜보고, 수많은 언론에서 자유롭게 취재를 하고, 오랜동안 개표를 진행해 온 지자체 공무원들과 교원, 선관위 직원들이 개표를 진행해도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 제기가 멈추지를 않는데 독일은 어쩌자는 것일까요? 개표 결과를 좀 더 빨리 집계하기 위해 투표지 분류기를 사용해서 투표지를 카운팅만 해도, 해킹을 해서 부정선거를 한다느니 디도스 공격으로 부정개표를 했다느니 하는 유언비어와 각종 의혹에 시달립니다. 선관위 사무실에는 투표일  당일 내내 투표소에서 자신은 다른 투표용지를 받아 투표했다는 민원 전화가 빗발치지만 막상 개표 때는 그 '이상한 투표지'를 발견했다는 얘기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투표지 분류기를 이용해서 집계를 하고 이를 다시 은행에서 돈 셀 때 사용하는 계수기를 이용해서 카운팅을 해도 투표지 분류기를 사용했으니 부정선거라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고, 일부 유명 기업 '총수'가 이런 의혹을 증폭시키고, 선거 이후에는 정보공개 청구나 선거소송을 제기합니다. 도대체 이런 의심의 끝은 어디일까요? 

투표지 분류

그러면 투표소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개표참관인이나 언론의 감시도 없이 투표사무원 몇몇만 앉아서 손으로 개표를 진행하는 '주먹구구식' 독일의 선거 개표에 대해서는 왜 독일 국민이나 언론, 시민단체에서는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까요? 이런 불안한 마음으로 독일의 개표절차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으려니 제가 심장마비가 올 지경입니다. 불안한 마음을 움켜잡고 조심스레 독일의 선거 개표절차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독일의 개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독일 정치 선거제도와 의회 구성 절차 등에 대해 조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세한 독일 선거제도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고 오늘은 기본적인 사항만 소개합니다.

독일의 투표용지, 제1표는 지역구 후보자에게 제2표는 지지 정당에게

독일의 투표용지를 보면 한 사람이 두 표를 행사합니다. 이를 제1투표(erstestimme)와 제2투표(zweitestimme)라 합니다. 제1투표는 선거구의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것이고, 제2투표는 각 정당에 투표하는 것입니다. 투표용지도 각 정당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왼쪽에 A정당의 지역구 후보자, 오른쪽에 A정당의 비례대표 명부를 게재하는 식입니다. 어느 정당이 지역구 후보자를 배출하지 않았으면 그 란은 공란으로 남게 됩니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지역구 후보자는 맘에 들지만 그가 속한 정당이 맘에 들지 않으면 이른바 교차투표를 할 수도 있습니다. 후보자에 대한 투표와 정당에 대한 투표가 다르게 말입니다. 이런 독일의 정당명부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참으로 독일스럽고 합리적이며 흥미로운 선거제도입니다.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가 정확하게 의회의 의석비율로 반영되고 사표의 가능성도 줄일 수 있으며, 정당정치의 활성화와 정책중심 선거의 강화로 이끌어질 수 있는 오묘한 선거제도입니다.

독일 연방의회 건물

 독일은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를 갖고 있는 의회민주주의 국가로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도 다음 선거에서 바로 이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 중입니다.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는 따라서 정당에 대한 투표인 제2투표가 가장 중요합니다. 각 정당별 제2투표 득표율에 가장 정확하게 '연동해서' 의회 의석을 배분하기에 '연동형 비례대표제'입니다. 연방의회 총의석은 선거법상 지역구 299석 비례대표 299석을 합해 총 598석이지만 2019년 현재 실재 국회의원 수는 709명입니다. 독일 연방의회 총 의석 598석을 각 주별 인구비례로 배분한 주별 할당의석수(독일은 16개 주로 구성된 연방국가입니다.)에 따라 각 정당이 주별로 획득한 제2투표 득표비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받습니다. 그런데 어떤 정당이 그 주에서 득표한 제2투표 득표율에 따라 분배받을 의석수보다 더 많은 지역구 당선자(초과의석 Überhangmandate)를 배출했다면 그 지역구 당선자는 우선적으로 인정되기에 실제 연방의회 의석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추가적으로 인정된 지역구 당선자 때문에 국회의 정당별 의석비율이 정당별 득표비율과 괴리되면 이를 다시 조정하기 위해서 조정 의석(Ausgleichmandate)을 배분하기 때문에 독일의 국회의원 수는 총 의석 598명보다 더 많은 709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복잡한 의석 배분 과정을 일반국민들은 잘 몰라도 독일 의회 민주주주의는 잘 작동하고 정치 수준은  높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번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이렇게 독일의 유권자들은 1인 2표를 행사합니다. 따라서 개표도 그 특성에 맞게 이루어집니다. 우선 일반인으로 구성된 개표사무원들이 둘러앉아 투표지를 먼저 일차 투표(후보자에 대한 투표)와 이차 투표(정당에 대한 투표)가 같은 정당인 투표지를 분류합니다. 그 다음 1차 투표 후보자 소속 정당과 2차 투표 지지 정당이 다른 투표지를 별도로 분류합니다. 1차 투표와 2차 투표의 유효 무효 여부는 각각 다르게 판단합니다. 1차 투표를 기표하지 않아서 무효이더라도 2차 투표에서는 기표가 제대로 되어 있으면 유효입니다. 이렇게 분류된 투표지를 정당별로 다시 분류하면 개표가 끝납니다. 개표가 끝나면 기록담당 사무원이 연필로 1차 투표, 2차 투표 집계를 기록하고, 선거인명부와 대조를 해봅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시청 선거과로 전화로 집계 결과를 알려주면, 이곳에서 프랑크푸르트 시 전역의 개표 집계 결과를 취합해서 주 선관위로 통보하고, 주 선관위가 연방 선관위에 집계 결과를 통보하면 예상 개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시 선거담당 직원들이 투표지를 재검표해서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최종 개표 집계를 산출하는 것입니다. 

개표 결과를 연필로 집계하는 독일의 개표사무원들


저는 독일의 이런 개표절차를 보면서 정말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개표 참관인도 없이, 투표소에서 손으로 집계를 내서, 전화로 선관위에 통보를 해주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독일의 개표절차 및 집계 절차 곳곳에 부정선거와 부실 집계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 아닌가요? 개표장에 폭도들이 난입해서 투표지를 탈취해 가면 어떻게 하려고 경찰이 개표장을 지키지 않는 것일까요? 그런데 도대체, 왜, 어떻게 독일의 국민들과 언론과 시민단체와 정부는 이런 선거절차, 개표절차에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일까요? 독일 국민들은 바보인가요? 성숙한 민주의식이 모자라는 멍청이들인가요? 왜 부정선거, 선거관리 부실 의혹을 제기하는 고발 다큐멘터리를 만들지 않을까요? 왜 시민단체들이 투표소나 개표소 앞에서 텐트를 치고 밤새 지키지 않는 것일까요? 독일은 정말 정치 선진국이 맞는 것일까요? 저의 이런 의문이 아직 조금도 풀리지 않아 다음번에 독일의 선거제도와 정치구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전에 독특한 독일 선거운동 방식도 생생하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EP.03 <독일의 정당명부식 연동형 비례표제 선거제도>으로 이어집니다.) 


<독일 연방의회>


<독일 연방 선거관리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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