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언어치료를 하겠다고 다짐하며 남편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처음에는 긍정적인 대답을 하던 남편이 '일단 그 중 하나라도 해 봐'라는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결혼 초기부터, 아니 어릴때부터 나는 정말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제안하고, 구체화 하고, 고민하고, 결국 실행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그렇게 타고난것만 같다. 육아에 있어서도 쉴틈만 나면 (잠이나 잘 것이지)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기 바빴는데 사실 실행한 것은 많지 않다. 엄마표 언어치료를 하겠다며 머릿속으로 여러가지 수업자료도 생각하고 수업 방법도 생각했지만 끝무렵 '시간도 없고 체력도 없으니 다음에 해야지'라는 식의 결론이나기 일쑤였다.
그 가운데 거창하지 않아서 손쉽게 실천할 수 있던 활동들만 나열해 보면
1. 낱말카드 랜덤뽑기 후 전지에 그림그리며 놀기
큰 전지를 꺼내놓고 아기와 함께 낱말카드를 랜덤으로 뽑아 내어 전지에 그림을 그려 주는 활동. 그림을 그리며 놀기 때문에 아가의 참여율이 높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소근육 발달과 언어 능력을 키워줄 것으로 예상되지만 엄마의 미술실력이 형편없어서 몇 번 해보고 말았다. 끽해야 자동차정도만 그릴 수 있는 미술무능력자 엄마가 공작새같은 동물을 그려내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이 활동은 아가가 매우 재미있어 했기 때문에 대량구입한 전지를 이따금씩 꺼내어 아가와 낙서하며 놀고 있다. 천사 아기님은 엄마가 개똥같이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색칠도 하고 따라그리기도 하고 행복해 한다.
2. 일주일 한 번 색다른 경험하기
주로 남편이 있는 주말에 해왔지만 앞으로는 어린이집에서 주1회 빠른 하원을 하여 둘만의 데이트를 해 볼 생각이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아가는 가족과 함께 무언가 하는 시간 자체를 행복해한다. 카시트에 앉아 잠이 들어 다시 집에 오는 일이 생기더라도 나갔다 왔다는 사실 자체로 아가의 기분은 좋아진다. 피곤이 역력한 상황에서도 카시트에 앉아. '버스다'라고 말하는 아가의 말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초록색 버스가 지나가네','초록색 버스가 멈췄네'라고 말해주며 문장 말하기를 도와주기도 하고 '초록색 버스다','빨간색 버스다'하며 색깔에 대한 어휘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사실 처음에는 '횡단보도','신호등'같은 단어는 아기에게 너무 어려운 단어인 것 같아서 언급하지 않았는데 어느순간 아가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정황상 '신호등'인 것 같은 단어를 말하기도 하고 '신호등이 없는 길에서~ 빨간불 안돼요~'하는 노래를 멜로디만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으로 부르기도 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 해 주게 되었다. 이 활동의 장점은 아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어휘의 종류가 많고 역동적이라는 것이지만 단점은 옆에서 꿀잠을 자고 있는 신생아가 깨서 아수라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 아가는 어느순간부터 신호등에 대기하는 버스들을 보며 '멈췄어요'라고 말하기도 하고 초록불이 빨간불로 바뀌는 순간 '빨간불 안돼요!'라고 외치기도 한다.
3. 놀이터를 시끄럽게 하기
이 활동은 주변 사람들이 싫어할 수도 있지만 우리 아가에게만 들리는 정도의 대화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놀이터는 가장 간단하게 아가의 '나가요'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곳이다. 가까우면서도 안전하고 다양한 체험 시설이 있다. 우리 아가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기구는 그네인데 체격이 작아 혼자는 올라가지 못한다. 말을 하지 않고 몸으로 모든 것을 다 표현하던 아가 답게 처음에는 그네 위로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써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당장 달려가 위로 올려주고 힘차게, 과묵하게 그네를 밀어주는 어제의 나와 이별하고 나는 아가를 매우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
'그네 탈거예요?'
'그네 타고 싶어요?'
'초록색 그네 탈거예요?'
'초록색 그네가 너무 높아요?'
당장 타고 싶어 안달이 난 아가에게 계속 말을 걸며 대답을 유도해 보았다. 처음에는 '네'와 같은 단답형 대답만 나와도 그네에 올려줬는데 조금씩 욕심을 내어 '무슨색 그네 탈거예요?' 또는 '그네 타고 싶어요라고 말해보세요'라는 식으로 아가가 말을 길게 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성공하면, 혹은 비슷하게 따라하면 그네를 태워줬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가들을 둘러보면 대체로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웃으며 뛰어놀기 바쁘지만 이미 우리아가는 뛰어놀기는 영재수준으로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1대1 밀착마크를 하며 말을 걸어 주었다. (착각일 수 있지만)아가는 싫지 않은 눈치라 요즘은 더 나아가 그네를 혼자 탈 수 있도록 말을 걸고 있다.
'다리를 오므렸다가, 폈다가'라고 외치며 실제로 다리도 움직여 엄마가 더이상 밀어주지 않아도 되게끔.
4. 장난감 활용하기
장난감 활용하기는 너무 구체적인 일상이라 여기에 담기가 애매하지만 목표언어를 학습함에 있어 우리 다람쥐에게 최적이었다. 이것은 언어치료도 아닌것이 놀이치료도 아닌것이... 그래도 아가와의 시간도 가지면서 언어치료 취지에 맞는 활동을 하기에 딱이었다. 애초에 내가 세웠던 수많은 아이디어 중에는 '장난감을 활용한 엄마표 언어치료!'라는 책 출판이 있었는데 아가들의 특성이 저마다 다른데 예시 대사를 담자니 드라마 대본 쓰는 것도 아니고 재미도 없을 것 같고 열정도 부족하고.. 그냥 우리 아가와 놀아본 일상이나 기록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아이디어다. 가장 효과가 좋았기도 하고.
이렇게 굉장히 무계획적인 엄마의 도전에도 아가는 응답을 해주어 처음 무언가 해주기 시작한 지 반년도 되지 않은 지금, (잘 못알아듣겠는 말이 천지지만) 아가는 수다쟁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