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블럭놀이

by 행복한꿈

장난감을 이리저리 어지르는걸 싫어하던 나는 모 기저귀회사에서 포인트로 구매한 블럭 장난감을 둘째가 태어날때까지 전시만 해 두었다. 처음에 배송되자마자 열어보니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너무 거슬렸고 아가가 잘 쌓지 못해 계속 무너지고 던지고 하는 모습을 보여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하는 마음으로 고이고이 간직해뒀다.

둘째가 태어나고 첫째님 비위맞추기에 돌입하자마자 꺼내준 장난감이 바로 이 블럭이었다. 30개월이 되었으니 이제 잘 할 수 있을 것도 같았고 가뜩이나 둘째때문에 마음 상한 우리 첫째님이 하고싶으시다니 기꺼이 꺼내드렸다.


처음에 블럭을 꺼냈을 땐 자꾸 무너지는 블럭을 보며 화를 내거나 울어서 '우리 아가, 혹시 말이 아니라 다른 쪽에 문제가 있는걸까?'하는 걱정까지 하게 되었는데 산후도우미이모님이 사근사근 아가를 달래며 차분히 쌓을 수 있도록 유도하시는 것을 보며 가르쳐주지도 않고 풀어만 놓은 상황을 급 반성하게 됐다. 아가는 블럭에 재미가 들었는지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항상 블럭을 쌓곤 했는데 엄마아빠가 관여하지 않고 혼자 탐색만 하니 블럭놀이는 높이 높이 쌓아 올리고, 균형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무너지는 모습의 무한반복이었다. 거기에 아가의 언어가 늦고 해결하고 싶으나 아무런 방법도 대책도 없었던 엄마였던지라 나는 무너지는 블럭의 소란스러움에 묵묵히 주어담거나, 중심을 잡아주거나, 함께 쌓아줄뿐이었다.

33개월 무렵 영유아검진 문진표를 미리 찾아 보다가 '아가가 색깔을 구분할 수 있는지'여부에 대한 문항에 또다시 마음이 초조해져왔다.

'우리 아가가 색깔을 알고 있던가? 알고 있겠지? 근데 말을 안하는데 얘가 색을 안다고 해야 해 모른다고 해야해...어떻게 확인하지? 색연필? 크레파스?'

뜬금없이 눈에 들어온 블럭을 보며 색깔놀이를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블럭을 쌓는 아가 옆에서 입아프도록 떠들었다.

'빨간색 블럭이네~ 노란색 블럭이네~'

지금 생각해보면 자동응답기와 같은 한결같은 크기와 톤으로 아가가 들어 올리는 블럭의 색깔을 외쳤다. 하루이틀 떠들어대니 음성지원이 없으면 아가가 허전해하는 수준이 되었고 주말이 찾아왔다.


"오빠, 아가랑 블럭놀이해줘!"

우리 남편은 아가를 위해 뭔가 해달라고 하면 자기가 더 심각하게 꽂혀버리는 경향이 있다. 단순히 쌓아 올리고 놀아주면 되는 거였는데 공룡도 만들고 건물도 만들고 매우 신난 가운데 마침 파란색 블럭이 대부분 아가쪽에 있는 상황.

"꿈이야~ 파란색 블럭 아빠 갖다줘. 파란색 블럭은 아빠꺼야!"

동생이 태어난 후 동생 모빌이며 침대며 동생 물건들을 하도 갖고 놀아서 '그건 동생꺼야'라는 말을 수없이 하니 아가가 자연스럽게 '소유개념'을 알게 되고 밑도끝도 없이 '이건 꿈이꺼~ 이건 동생꺼'할 때가 있었기에 급하게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그냥 '엄마꺼 얼른 줘요.'라고 말하곤 했다. 아가가 파란색 블럭을 갖다주지 않아서 아빠꺼라고 외치니 자기 근처에 있는 파란 블럭을 '아빠꺼'라고 갖다 주더니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파란블럭을 갖고 놀 때마다 '아빠꺼'라고 외치며 놀았다.

나름대로 말을 한 거니 좋아해야 하는건지, 색깔 이름을 잘 모르는 것 같으니 걱정해야하는건지.

한동안 파란블럭은 아빠꺼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아가를 위해 계속해서 '빨간색 블럭이네~ 노란색 블럭이네~'하고 외쳐주니 아가도 색깔에 대한 발화를 시작하였다. 물론 발음은 매우 부정확하지만 엄마 귀는 아가에게 특화되어 있기에 자랑스런 우리아가가 색깔을 스스로 말한다는 사실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수준이었다.


그렇게 색깔을 마스터하고, 기어다니는 둘째가 자꾸만 블럭을 빨아먹었기도 하고- 첫째가 무너뜨린 블럭에 둘째가 맞기도 해서 블럭은 다시 장난감 수납함 구석에 자리하게 되었는데 언어치료에 대해 열정이 차고 넘치게 된 어느 날 '쌓다, 끼우다, 무너지다, 높다, 낮다'등의 단어를 들려주기에 블럭이 너무나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꺼내들었다.

블럭을 이용하여 놀다보면 어휘를 늘릴 수 있는 요소가 참 많은데 '노란색블럭끼리 모으자'라든지 '빨간색 블럭과 초록색 블럭을 이어 보자'와 같이 엄마가 목표로 삼는 동사를 어떻게든 활용할 수 있는데다가 '블럭을 이용해 성을 쌓을거야'라고 말하며 함께 '성'이라는 명사도 이야기해볼 수 있고 요란스러운 소리에 '시끄러워'라는 동사까지 넣어줄 수 있다.

이 때 주의할 것은 놀이 활동 내내 엄마 입이 쉬지 않아야 한다는 것.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찍는 주인공처럼 쉴 새 없이 혼잣말을 해야한다.


"엄마는 블럭을 높이 쌓을거야. 쌓아! 블럭을 쌓아! 엄마 블럭이 꿈이 블럭보다 높구나! 꿈이 블럭은 낮아! 엄마 블럭은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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