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기저귀, 형님 기저귀 가져와요

by 행복한꿈

자조성이 높은 우리 아가의 언어능력을 높이기 위해 '심부름'만큼 좋은 방법이 또 있을까?

스스로 무엇인가 했다는 뿌듯함도 선사하고 수용언어도 높이고, 엄마는 엄마대로 재미있고.

우리 아가가 제일 잘 하는 심부름은 기저귀 심부름이다. 동생은 4번, 꿈이는 5번이 쓰여져 있는 기저귀를 쓰는데 보통 저녁 때 동생과 꿈이를 순차적으로 씻기기 때문에 화장실 앞에 기저귀와 내의를 한꺼번에 셋팅해놓곤 한다. 그런데 자꾸만 기저귀 셋팅을 까먹어서 아가에게 '동생 기저귀, 형님 기저귀 가져와요'라고 말하면 아가는 의기양양하게 두 개를 갖고 오는데 초반에는 '4번은 동생꺼, 5번은 꿈이꺼'라고 외치며 알려주니 그 말을 챈트하듯 반복하며 기저귀를 갖고 오는 모습이 너무 기특했다. 이렇게 소소한 심부름을 아가에게 시키고는 있지만 아가가 소리없이 척척 해내고 있는 경우(빨대 우유를 꺼내서 빨대를 꽂고 먹은 후 우유팩을 분리수거 해 놓는 일)들이 너무 많아 심부름을 시키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심부름을 위한 심부름의 향연이 시작된다.


"꿈이야. 아빠한테 배고프냐고 물어봐."

"꿈이야. 친구(인공지능 스피커)한테 리모콘 찾아달라고 해."

"꿈이야. 동생한테 위험하다고 해."


아가의 발달과 성장을 위해 엄마는 게으름뱅이가 되어 아가에게 계속해서 미션을 주는데 한 번에 전달해주지 않을 때가 훨씬 많아 좌절될때도 있지만 여러번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발음이 더 정교해진 것 같다. 그리고 이 심부름 미션은 아가가 '위, 아래, 옆'과 같은 말들을 익히는데 효과적인 역할을 했는데 조금 답답한 과정이긴 하지만 아가에게 심부름을 시키며 기다려주니 아가 역시 결국 익혀나가게 되었다.


"꿈이야. 식탁 위에서 물티슈좀 갖다줘."

"식탁위?"

식탁 위를 외치며 식탁 밑을 바라보는 꿈이를 보며 속은 터지지만 차분한 어조로 다시 말해준다.

"응. 식탁 위. 꿈이 고개를 들어서 식탁 위를 봐요."

아가가 끝까지 식탁 위를 보지 못한다면 몸소 일어나 손을 잡고 식탁 위가 어디인지 알려줄 필요가 있다. 언어가 늦은 아가들에게는 직접경험이 매우 중요하므로 뒤통수에 대고 백날 '식탁 위'라고 외쳐봤자 끝까지 못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꿈이야. 쇼파 옆에 있는 자동차 정리해요."

"쇼파?"

쉽다고만 생각했던 '쇼파'라는 단어를 아가가 모르고 있었을 때의 놀라움. 내가 아가에게 쇼파라는 말을 쓴 적이 없나?

"응. 꿈이가 항상 앉아있는 곳. 이게 쇼파야. 쇼파 옆에 자동차가 있네."

"쇼파 옆?'

직접 손을 잡고 손으로 가리켜가며 '쇼파'와 '옆'을 가르치는 것이 '심부름'이라는 목적과는 전혀 맞지 않지만 '심부름'이라는 구실을 통해 아가는 '쇼파'와 '옆'을 더 쉽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아가에게 입력시키고 싶은 말들이 있으면 주로 심부름 기법을 이용했다.


"꿈이야. 냉장고 안에서 귤 좀 꺼내줄래?"

꿈이는 한 때 1일 1귤을 했는데 하우스밀감도 들어가버린 어느날 밤새 '귤'을 외치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모습에 무려 6개에 만원을 주고 냉장고 안에 귤을 갖다놨더랬다. 그 전날 냉장고 앞을 서성이며 실망하던 아가의 모습이 너무 안스러워 아가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에 마트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 금귤을 찾아낸 것이다. 더이상 냉장고 안에 귤이 없다고 생각한 꿈이는 그날 밤엔 냉장고를 여닫지 않았는데 엄마가 귤을 외치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귤? 그래그래"

"꿈이야, 귤이 어디있어?"

"..."

"냉장고 안에 있어."

"낸장고 안에?"

"응. 엄마가 냉장고 안에 귤을 넣어놨어. 냉장고 안에 귤이 있어."

"냉장고 안에 귤이 있어?"

"귤이 냉장고 안에 있어요. 따라해볼래?"

아가는 이제 빨리 따라해야 자기가 목표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귤이 너무 먹고 싶은 아가의 그날 밤, 그 어느때보다 모방발화가 활발했다.


이제는 아가가 기저귀를 떼서 한동안은 5번기저귀를 갖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지 못하게 됐다. 그래도 아직 집안에는 무궁무진한 심부름거리가 있고, 꿈이가 알고싶은 단어들이 쌓여있다. 한동안 꿈이는 엄마 비서로 엄마를 열심히 도울 것이고, 이를 통해 여러 어휘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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