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위한 일지쓰기

by 행복한꿈

아가의 언어에 신경쓰기 시작하면서 이런 저런 일로 상처받는 일이 허다하다. 흔들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감이 뚝뚝 떨어진다. 내가 보기엔 분명 우리 아가의 언어가 늘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특히 가까운 가족이 인정해주지 않을때만큼 기운빠지는 일이 없다.


"오늘 우리 아가가 왜요?라는 말을 했어!"


엄마는 마치 '목 가누기, 뒤집기, 배밀이, 기기, 걷기'와 같은 과정을 지켜보듯 아가의 한 걸음 한 걸음에 놀라고 행복해하지만 가끔 보는 누군가에겐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가'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아가들과 비슷한 속도로 말이 늘고 있는 아가였다면 아가의 왜요?라는 대답, 아가의 두 문장, 세 문장의 대답이 전혀 신기할 것이 없다. '우리 아가가 103일 되는날 뒤집기를 했어!'라고 대화하는 일은 흔하지만 '우리 아가가 00개월때 왜요?라고 물었어!'라는 대화는 흔하지 않은 것은 누군가에게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흐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을 잘 하지 않는 아가를 키우며 아가의 말 하나하나가 너무나 특별해 대강의 끄적거림이라도 기록으로 남기곤 하는데 사실 그 누구도 알아주는 이는 없다. 엄마의 자기만족이자 독려정도. 그럼에도 아가 언어를 걱정하는 부모는 일지를 쓸 필요가 있다.

내가 우리 아가의 언어에 대해 본격적으로 끄적거리기 시작한 것은 31개월 어느날이었다. 동생이 태어나고 난 후 오랜만에 꺼낸 아기 침대와 모빌이 반가웠는지 틈만나면 아기침대에 들어가 모빌을 잡아당기던 아가에게 '이건 동생꺼야'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했던지 아가의 '소유개념'이 갑자기 단단하게 확립되었다. 31개월 어느날 분명한 발음으로 '동생꺼'와 '안돼요'라는 말을 시작한 아가의 언어에 대해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31개월>

동생꺼/안돼요-신호등이 있는 길에서 빨간불 안돼요~

어린이집에서 배워왔는지 집에서 동요를 들려줄 때마다 이 노래가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며 듣다가 '안돼요'부분에서 손동작을 함. 그 모습이 재미있어 자주 틀어주니 안돼요발음도 분명히 따라하고 동생 침대에 올라가다가도 '꿈이야'라고 말하면 동생꺼~하고 말하거나 '안돼요' 하며 내려옴

<32개월>

기차/차/나무/꽃

경전철이 다니는 동네로 이사를 와 새로운 어린이집 등원. 등하원때 만나는 경전철을 보며 '칙칙폭폭'하고 말을 하더니 '기차'라고 말하기 시작

오고 가는 길에 만나는 도로의 차들을 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차'라고 말함

새롭게 습득한 어휘가 아닌, 그동안 낱말카드로 보여줘왔던 단어들인데 한 번도 내뱉지 않다가 갑자기 폭풍 발화하기 시작함

<33개월>

없네/바나나/까짜(사과)/코끼/뺑기(비행기)/토끼/삐약삐약/빵../여러 노래 가사들

갑자기 어휘량이 폭발함. 발음은 좋지 않으나 알아들을 수 있음.

<34개월>

이거 뭐야/할머니/할아버지/아니/꼬추/노란색/깜깜해/사랑해/같이 놀자

말이 터짐과 동시에 입력시킬 수 있는 단어가 늘어남. 주변 사물에 관심을 갖고 궁금해하기 시작. '이거뭐야'라는 말을 자주 하며, 그 때마다 즉각대응해주니 흡수하기 시작

<35개월>

노란색/갈색/파란색 등

블럭쌓기를 할 때마다 옆에서 색깔을 이야기해주었는데 초반에는 들은체도 안 하던 아가가 갑자기 스스로 색깔을 외치며 블럭을 들고 쌓음. 격려하고 기뻐하니 쉴새없이 색깔을 갖다 댐.

<36개월>

문장발화 시작.....


아가는 이제 42개월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아가의 언어치료에 관심을가진지 1년이 거의 다 되어 간다. 사실 아가가 딱 세돌무렵에 문장발화를 했는지 잘 몰랐다. 이 기록이 아니었으면 기억도 못 했을 것 같다. 아가의 문장발화는 이제 신기한 일이 아니다. 이번주에 터진 '왜요?'라는 말도 몇 주, 몇 달 후면 전혀 신기하지 않은 일상이 되겠지. 생후 103일에 보여준 뒤집기를 지금 한다고 환호해주지 않는것처럼.


누군가는 '언어치료센터'라는 고속도로를 두고 왜 차막히는 '엄마표 언어치료'라는 국도를 이용하냐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다람쥐같은 우리 아가에게 놀이실보다는 넓은 세상이 더 도움되는 교육환경임을 오늘 다시 들여다본 일지를 통해 깨닫는다. 그날 그날의 일과 속에 '그림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몇 장 읽더니 도망가서 자동차 놀이를 시작함'과 같은 일들이 40분간 진행되는 센터 수업에서 있었던 일이라면 둘째를 들쳐안고 택시를 타고 찾아갔을 그 센터 안에서 얼마나 짜증이 났을 지, 그리고 영문도 모른채 엄마의 짜증을 받아줘야 했을 우리 아가는 얼마나 괴로웠을지... 나는 우리 아가의 언어가 늦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분명 늘고 있으니까. 잘 따라가고 있는 기특한 꿈이를 응원해 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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