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월령대의 아가가 말을 얼마나 잘 하냐의 척도 중 하나로 '몇 어절로 이어 말하는가'가 있다. 밥을 먹고 싶은 아가가 '밥'이라고 외치고 있는지 '엄마 밥'이라고 외치고 있는지, '엄마 밥 주세요'라고 외치는지 여부이다. 사실 꿈이 월령대라기 보다는 세 돌이 되지 않은 아가들 수준에서 그렇다. 우리 아가는 조금 느리게, 열심히 따라가고 있으니 10월생과 비교하자면 말이다. 엄마 말투가 변하기 시작했던 35개월 무렵, 우리 아가는 두 세 단어를 이어 말하기는 하나 문장을 말한다고 보기 애매한 수준이었다. 넘어져서 다쳤을 땐 '아야'라고 외치고 '여기 아파'라고 말하는 수준 정도. 열심히 책을 읽어 줘도 책에 있는 문장을 모방하기 보다는 책에서 울거나 웃고있는 아가들의 모습을 흉내내는 것에 더 취미가 있었다.
'아가가 엉엉엉'
'아야, 하지마!'
'하하하 호호호'
우리 아가는 주로 책 속 주인공들의 감정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때다 싶어 감정표현을 집중적으로 다룬 동화전집을 구입하여 읽혀 보았다. '속상해요','사랑해요','미안해요'와 같은 단순한 제목으로 되어 있는 이 책에는 제법 글밥이 많아 아가가 집중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내용 자체가 친근해서 그런지 엄마 옆에서 열심히 읽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모두 동생이 잠들고 난 후(저녁 7시무렵)부터 꿈이가 잠들기 직전(저녁 8시무렵)까지 일어나야 하는 활동이었다. 동생이 깨어 있는 시간에 책을 꺼내 들었다가는 책은 동생의 먹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실제로 감정표현 책 중 '속상해요'라는 책은 엄마가 동생을 달래주느라 형아인 주인공을 혼내기도 하고 마음을 몰라줘서 속상하다는 내용인데 동생이 활동하는 시간에 책을 읽다가 처참히 먹혀버렸다.(정확히 말하자면 찢겨진 채 동생의 침에 적셔져 뱉어졌다.)
어쨌든, 목표하는 내용을 저녁시간에 수험생처럼 바쁘게 수행하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에 감정표현 동화 속 주인공과 같은 말투로 아가를 대하기로 했다.
"엄마는 꿈이가 밥을 먹지 않아서 속상해요."
평소 말투라면 '밥 먹어'정도, 혹은 '꿈이!' 아니면 '하...'정도의 깊은 한숨이었을 식사시간에 무척이나 열심히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떠들다보니 확실히 할 말도 많이 생겼다. '고기!'하고 반찬 이름을 외치며 주는 것이 아니라 '먹다'라는 동사도 함께 외치게 되고 '아' 하고 주문을 외우기 보다는 '아 해요!'라고 말하며 친절한 엄마모드로 식사시간을 보냈다.
"꿈이 고기 얌얌 먹어요"
"고기가 맛있어요?"
"꿈이 아 해요!"
"밥이 뜨거웠어요. 엄마가 호호 불어줄게요."
구어체 말투에서 꼬박꼬박 쓰지 않던 조사를 있는힘껏 갖다 붙이고 문장의 종결을 확실히 지켜내며 말을 하다 보니 나중에 복직해서 이런 말투를 쓰다간 학생들에게 놀림감이 되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가가 유창하게 말을 잘 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이야기했다.
말투가 바뀌고 나니 육아도 왠지 재밌어진 느낌이었다. 복직의 그날을 기다리며 저녁때쯤 '아가 얼른 재워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일상의 반복이었는데 마치 텅 빈 공간에서 라디오에 대고 대화하는 사람처럼 혼자 떠들다보니 '사람과 대화 하는 느낌'이 조금, 아주 조금 들었다.
이 느낌을 우리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꿈이는 평소에도 사람이었어'라고 말을 했지만, 육아를 하는 사람들은 이 말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이다. '엄~마!','아 잘했어요!'라는 말만 하루종일 쓰다가 조금 더 사람같은 말을 하게 된 것이 육아에서 얼마나 숨통트이는 일인지. 아가의 언어가 조금 더 발달해서 정말 사람같은 대화를 하게 되는 그 날이 온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리고 그 땐 아가와 둘이서 손잡고 다니느라 복직의 그 날을 뒤로 뒤로 미루고 싶을까?
엄마 말투가 다소 어색하고 부담스럽게 변한 이후 아가는 조금씩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40개월인 지금 다른 친구들처럼 유창하게 말을 하진 않지만 '엄마 머리가 아파요'라든지 '손가락이 끼었어요'와 같은 표현, '잠깐 기다려봐, 내가 갖고 올게'와 같은 조금 놀라운 표현들도 자신있게 해나가고 있다. 단점 하나를 찾았다면 엄마 말투와 아가 말투가 너무 비슷해서 억양이 조금 특이한 것도 같고... 목소리도 너무 솔 톤인것같고 그래서 조금 과하게 친절한 말투가 된 것도 같고, 그와중에 엄마가 화낼때의 말투도 귀신같이 캐치하여 남들 앞에서 써먹는 바람에 가끔 부끄럽게 만들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