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소리를 질러!

by 행복한꿈

앞서 언급한 엄마 말투에 대한 모방, 그 중 너무 부끄러운 사건이 하나 생겼다.

돌이켜보면 과거에도 이 비슷한 일들이 있었는데 애써 부정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가가 아주 어릴 때 부터 혀끌는 소리를 참 잘 내서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무척 신기해했는데 사실 그건 내 습관이었다.

뉴스를 볼 때, 드라마를 볼 때, 혹은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 너무 안타깝다는 느낌이 들면 습관적으로 '쯧쯧쯧쯧쯧쯧'정도 느낌으로 빠르고 힘차게 혀를 차곤 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도 1초에 여섯번정도 혀를 차는 이 행동을 아가가 따라한다는 생각이 들어 의식적으로 그만두었다. 그 대신 너무나 큰 한숨을 쉬는 습관이 생겨버렸지만.

선생님께서 신기해할 때 '아 그래요?'하며 모르는 척 했지만 그건 분명 내 것이었다. 그 후로 아가의 습관도 조금씩 옅어졌고 새롭게 생긴 고쳐야 할 말투는 '아 진짜'였다. 혼잣말을 하듯 조용히 내뱉는 이 말은 사실 옆에 없으면 잘 들리지도 않는다. 처음에 아가가 부정확한 발음으로 '아 진짜'라고 말할 땐 발음이 너무 부정확하여 욕을 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아가가 여러번 써먹고 발음을 다듬어 사용하는 것을 보니 '아 진짜'였고 또 내 것이었다.

아가가 밥을 먹다가 뱉어버리거나 심하게 저지레를 했을 때, 뭔가 짜증나는 일이 생길 때 조용히 '아 진짜'라고 말하는 엄마의 말을 흉내내버린 것이다. 이 역시 밖에서도 열심히 써먹었는데 말도 잘 못하는 아가가 너무 자주 '아 진짜'라고 외쳐대니 민망함에 '얘는 어디서 이런 말을 배워온거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디서 배웠는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너무 창피하므로.

그 말투 또한 엄마가 줄이고 나니 자연스럽게 빈도가 줄었는데 여전히 주1회정도는 쓰는 것 같다. 미안 아가야.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부끄럽고 결정적인 한마디를 아가가 따라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말도 좀 늘었다고 제법 긴 단어.

"어서 소리를 질러!"

사실은 "어디서 소리를 질러!"가 더 정확한 표현이지만 아가는 "어서"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아가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소리를 지르는 일이 왕왕 있는데 평소에는 유순해 보이다가도 엄마가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너무 여러차례 못 하게 하면 소리를 질러버리는 것이다. 마치 맹수가 으르렁 거리듯 엄마에게 센 척을 하는 모양새다. 아가가 자기 장난감을 가져가는 동생에게 화가 나서 동생을 밀어 울려버렸다. 우는 동생을 달래주고 아가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 하는데 아가는 도통 들을 생각이 없다. 장난감을 빼앗긴 억울함이 크기에 자기가 혼나는 상황 자체가 화가 난 것 같았다. '꿈이 엄마 보세요.' 언젠가부터 꿈이는 혼나는 상황에서 '엄마 보세요'라고 말을 하면 두 볼에 손을 갖다대고 예쁜척을 한다. 그날도 눈을 깜빡이며 예쁜척을 하고 있는 아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해 줘야 할 것 같아 두 손을 강제로 내리자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디서 소리를 질러!"


소리를 지르는 아가를 향해 버럭하고 외친 그 한마디를 아가는 자꾸만 써먹는다. 자동차를 갖고 역할놀이를 하다가도 '어서 소리를 질러?'라고 말하기도 하고 울고 있는 동생을 향해서도 '어서 소리를 질러'라고 말하기도 한다. 분명 어린이집에서도 써먹었을거다. 정말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위안을 삼자면, 엄마가 했던 그 버럭거림이 아닌 귀엽고 다정한 말투로 '어서 소리를 질러'하고 말을 한다. (혹시 엄마 말투가 저렇게 만만이 콩떡처럼 들렸던 것은 아니겠지?)

그동안 배웠으면 하고 따라하라 외쳤던 그 많은 말들은 그렇게 안 따라해놓고 이 말은 어떻게 그렇게 쏙쏙 받아들여 따라하는건지 속상한 한편 지금 이 시기에 정말 많은 인풋을 주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더 가열차게 쫑알거려야겠다는 다짐또한 하게 되었다. 그 쫑알거림 속에 불순한 말이 들어가지 않도록 스스로 열심히 정화하는 것은 당연하고. 도를 좀 닦아야 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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