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넘어졌어?

by 행복한꿈

우리 아가 40개월, 이 월령대 아가들은 '왜'라는 질문에 급속히 빠져든다. 아가가 없을 때, 아가 언어발달에 관심이 없을 때에는 쉴새없이 '왜요?'라고 묻는 아가들이 얼마나 대단한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옹알이 수준에서 단어수준, 문장수준으로 자신의 언어를 확장해나가던 아가들이 드디어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왜요?'라는 의문을 품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그땐 미처 몰랐다.


아가의 언어 능력치가 점점 높아지는 것 같아서 다음단계를 계획하다가 이제 슬슬 '왜요?'라는 대화를 이끌어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의 성향마다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 아가는 추피홀릭이기 때문에 추피를 읽어줄 때 건네는 질문 유형을 바꾸어 보았다. 예를 들어 '이 그림은 뭐야?'와 같이 단순히 그림을 말로 설명해보게 하던 활동에서 '추피가 넘어졌네. 왜 넘어졌지?'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넘어진 그림 하나만 가지고도 추피가 왜 넘어졌는지에 대한 대답은 다양하게 나올 수 있기에 아가의 상상력도 자극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상상력이 언어화되어 나오기 위해선 아직 어휘량이 많지 않음이 안타깝다.


"추피가 울고 있어요. 왜 울고 있지요?"

"추피가 다쳤어요."

"추피가 다쳐서 울고 있어요. 왜 다쳤어요?"

"추피가 쿵 엉엉엉"

"추피가 왜 쿵 하고 넘어졌어요?"

"..."


아가와의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진 않았지만 처음엔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고 자기 할 말만 하던 아가가 제법 핑퐁대화를 이어나갔다. 아직 왜요?병에 걸리진 않았지만 '원인과 해결'이라는 포맷 자체는 이해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매일 밤 추피를 읽으며, 아가는 빨리 이야기 전체를 읽고 싶은데 맨 첫장에 있는 그림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왜?'에 익숙해 지는 작업을 하던 중에 하나의 사건이 생겼다.


"꿈이가 오늘 코피를 세 번이나 흘렸어요."


어린이집 하원 중 선생님께서 우리 아가가 오늘 여러차례 코피를 흘렸음을 알려주셨을 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실 아가가 줄줄줄 코피를 흘린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우리 아가는 건강하기에, 왠지 코를 후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꿈이 오늘 코피났어?"

"응"

"왜?"

"..."

"친구랑 부딪혔어?"

"아니"

"코 팠어?"

"..."


아가가 왜 코피가 난건지 알려주지 않아 말 늦음에 대한 아쉬움이 더해지던 차에 코피 묻은 낮잠이불을 빨기 위해 세탁기에 넣으려는데 그 양이 상당했음을 알고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 아가가 큰 병에 걸린건 아닐까? 코를 팠다고 이렇게 피가 많이 날리 없잖아!"

"꿈이야, 괜찮아? 너 코피 왜 난거야? 누가 코를 때렸어?"


그 순간 아가의 코에서는 또다시 코피가 주루룩 흐르고 있었다. 왠지 얼굴도 핏기가 하나도 없는 것 같고 너무 깜짝 놀라 회사에 있는 남편을 호출하고 둘째를 안고, 꿈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급히 소아과에 갔다. 가는 길 내내 왜 코피가 난건지 물어봤지만 아가는 무응답.


"코 안쪽엔 상처가 없고 겉면에 긁힌 자국이 있는걸로 봐서 코를 후벼서 그런거예요."


아놔. 코를 파서 하루에 코피가 세 번이나 나다니. 코 팠냐는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것은 마지막 자존심인건가. 아무 일도 없어서 참 다행이긴 하지만 우리 아가가 조잘조잘 자기 이야기를 하는 아가였다면 이렇게 호들갑스럽진 않았을텐데 하는 마음에 더 열정적으로 '왜요?'라는 말을 이끌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야. 코를 후비면 안돼. 왜냐하면 코에서 피가 나잖아."

"꿈이야. 오늘 아빠가 일찍 오셨지? 왜냐하면 꿈이가 코피가 많이 나서 그래."

"꿈이야. 아가가 졸려서 울어."

"꿈이야. 아가 왜 울지?"


밤마다 추피를 읽어주는 것 외에도 시도때도 없이 말을 걸어주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 몸소 왜요?를 시전하며 아가와 대화를 이끌다 보니 아가도 그에 대한 응답을 하긴 했다.


"이거 주세요."

상자 안에 있는 장난감을 꺼내달라는 꿈이, 테이프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상자. 손톱으로 열심히 긁어대며 뜯고 있는데 한 번에 잘 되지 않았다. 그 순간 아가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했다.


"왜, 잘 안돼?"

"응. 너무 세게 붙었어. 엄마를 믿고 기다려줘."

"응"


왜냐니! 따라해보라고 해도, 쉬도때도없이 쫑알거려도 해 주지 않던 '왜'냐는 질문을 이렇게 가볍게 툭 던져버리다니. 이게 핑퐁대화라는걸까? 하루종일 아가와 수다를 떠는 엄마들은 얼마나 즐거울까? 그래도 엄마가 노력하면 그 노력에 대한 응답을 반드시 해 주는 아가 꿈이가 언제나 너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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