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말, 말

by 행복한꿈

엄마표 언어치료를 하겠다고 다짐하며 몇 번씩이나 이런 저런 말에 휘둘리지 말고 아가에게 집중하자는 생각을 해 왔다. 그렇지만 엄마도 사람이고, 특히 나는 멘탈이 좀 약한 편이라(바꿔 말하면 극소심한 사람이라) 사람들의 이런 저런 말에 상처받곤 한다.

우리 동네에는 유난히 우리 아가와 동갑인 아가들이 많은데 엘레베이터에서 만난 4살 아가들이 왜그리 말도 잘 하고 덩치도 크고 말도 잘 듣는지 자꾸 비교를 하게 되어 내가 먼저 방어적으로 '우리 아가는 말이 좀 느려요.'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본인 손주를 너무 사랑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우리 아가는 10월생인데도 지금 뭐도 하고 뭐도 해요.'라든지 '우리 애는 몇 개월부터 말을 아주 잘했어요.'라는 말을 그 1분도 안 되는 시간동안 꼭 해 주셔서 등하원 후 마음을 무겁게 만들어 버린다.

월요일이면 단지에 있는 실내체육관에서 놀이체육 수업이 있는데 한 번은 평소보다 일찍 도착해 앞 반 수업에 잘못들어간 상황이 됐다. 그 날따라 앞반 수업에 아가가 한 명밖에 오지 않아서, 한 명이 열심히 놀고 있기에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인 줄 알고 착각을 해 버린 것이다. 아무튼 그 아가가 우리 아가 어린이집 체육복을 입고 있어서 인삿말로 할머니께 '같은 어린이집이네요.'하니 대뜸 몇 살반이냐며, 우리 아가는 4살인데 일부러 3살아가들 반 체육 수업을 듣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알고보니 우리 아가와 그 아가는 어린이집 같은 반인 것이다. 한 번도 올라온 사진에 우리아가와 같이 나온 적이 없어서 얼굴을 알아본 적이 없었는데 성향이 달라서 놀이 활동이 겹치는 적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어쨌든 그 할머니는 나를 보자 마자 아가 이름이 뭐냐고 하더니 '아, 우리 아가를 때린 적이 있대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사실 활발한 우리 아가가 누군가를 때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늘 하고 살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죄송해요. 우리 아가가 조금 활발해요. 아가가 말이 좀 느려서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몰랐어요.'라는 말을 했는데 그 다음 말이 두고두고 나를 마음 상하게 만들었다.

'우리 아가는 말을 잘 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주 자세히 말을 해요. 하루는 이 아이가 때렸다고 하고, 하루는 저 아이가 때렸다고 하고, 우리 아이는 누구한테 맞았는지 늘 이야기 해요.'

일단, 친구들한테 맞았다는 사실 자체는 너무 속상한 일이긴 한데 순간 '정말 맞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는건 너무 나쁜 생각일까? 우리 아가가 말이 늦긴 하지만 우리 아가도 '엄마 오늘 친구가 때렸어요.'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00가 뺏어갔어요.'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나는 사실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렇게 신경쓰지 않는 편인데 그 이유는 동생과 함께 노는 모습을 봐도 동생이 잠깐 치고 가도 '때렸어요'라고 말할 때도 있고 장난감을 동생이 손으로 만져도 '뺏어갔어요'라고 말하기도 해서, 아가들은 자기만의 생각으로 상황을 파악하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아가가 매번 빼앗기고 맞고 한다면 선생님께서 당연히 말씀해 주셨을텐데 하루 일과를 자세히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므로, 집에서 하는 그런 이야기들에 집중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 아가는 정말 이 아이, 저 아이에게 맞았을까?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인지 내내 그 할머니의 말씀이 귀에 맴돌아 자꾸만 마음이 무겁다. 그 할머니 논리라면 우리 아가도 '말을 아주 잘하고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늘 이야기 해 주고 매일 맞고 다니는 아가'인데 내가 너무 강하게 키운 걸까.


한 번은 아가와 길 가다 만난 한글학습지 상담하시는 분께 '우리 아가는 말을 못해서 이건 아직인것 같아요.'라고 말을 했는데 그 분의 말씀에 혹해서 나는 결국 한글학습지 신청을 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이 학습지도 우리 아가 언어에 큰 도움이 되었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그 분은 '아가가 말을 못한다니요. 우리 아가가 지금 얼마나 말을 잘 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자기 마음을 열심히 표현하고 있잖아요. 엄마가 아가가 말을 못한다고 하면 아가가 듣고 상처받아요.'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인품이 엄마인 나보다 백만배는 나은 것 같아 당장 한글을 뗄 마음은 없지만 일주일 한 번 만나며 응원의 메시지라도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신청해 버렸다.


우리 아가가 말을 잘 한다 못 한다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 아가가 체육관에서 만난 그 할머니의 손자였다면 우리 아가아가도 '말 잘 하는 아가'라는 소리를 들으며 지냈을까? 엄마 기준이 너무 높아서 아가의 노력을 자꾸 무시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다. 객관적으로 잘 하지 못하더라도 아가도 듣는 앞에서 '우리 아가는 말을 잘 못해요.'라는 말을 밥먹듯이 하고 다닌 내가 아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반성한다. 근데 제발. 반성에서 그치지 말고 말조심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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