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우리 아가보다 8개월 앞선 아가를 키우는 동료가 있다. 내가 보기엔 전혀 문제가 되어 보이지 않는데 아가를 데리고 주1회 언어치료를 다니고 있다고 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엄마 여기 아파."와 같은 의사표현을 할 줄 안다고 들었는데 언어치료를 다닌다기에 그 땐 우리 아가의 두돌검진 전이기도 했어서 머릿속에 온통 물음표만 띄워 놓은 채 듣고 넘겼는데 막상 우리 아가에게 언어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니 조언을 얻고 싶었다.
"요즘은 어때? 말 많이 늘었어?"
"안 할때보단 나아. 비싼 문화센터를 다니는 기분이랄까? 이게 언어치료를 해서 늘게 된건지 늘 때가 돼서 늘게 된건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느는게 눈에 보이니까."
비싼 문화센터라는 말이 딱이다. 센터에서 언어치료를 배우게 되면 한타임당 4만원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주1회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주2회정도 진행하게 되며 이 경우 한 달 30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셈이다. 요즘은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바우처'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 아가의 경우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진단 자체가 나오지 않을 것 같고 소득 기준에 의해 지급되는 바우처도 해당사항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나는 운전무능력자에 임신중이지 않은가. 다람쥐와 같은 아가를 데리고 남산만한 배를 쥐어잡고, 택시를 타고 언어치료센터에 간다는 것이 상상만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동생이 생겼다는 사실에 상실감이 클(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아가와 상호작용을 하며 엄마와의 교감과 언어능력을 길러보겠다며 '셀프 언어치료'를 선택했다.
각종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 방문한 도서관에서는 큰 소득을 얻지 못했다. 내가 얻고자 한 내용은 가정에서 활용 가능한 '대본'과 같은 내용인데 조음기관의 원리나 언어 발달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비춰지는 워크북 또한 우리 아가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가의 수준에 맞는 맞춤형 언어치료가 필요했다.
즐겨 가는 맘카페에서, 그리고 말을 잘 하는 아가를 둔 선배 엄마들의 육아 방식에서 힌트를 얻기로 했다.
"무조건 말을 많이 해! 함께 보든 안 보든 책을 읽어!"
공통적으로 부모가 수다스럽거나 책을 많이 읽혔다고 하는데 한 수다 하는 내가 지난 2년간 쉴새없이 떠들어댔지만 아가의 말이 늘지 않았던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아가와의 대화는 하지 않은 채 너무 어른들과의 빠른 말만 하며 지내고 있었다. 아가가 혼자 잘 놀면 그 근처에서 남편과 함께 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속도와 크기로 일상을 나누었고 '책읽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준답시고 근처에서 조용히 책을 읽기도 했다.
시험삼아 혹은 재미삼아 아가의 놀이를 해설하기 시작했다.
"꿈이는 자동차를 세워놓고 있구나. 주황색 자동차를 세울거야. 빨간색 자동차도 세울거야."와 같이 근처를 서성이며 해설을 하면서 놀이 방식을 엄마 주도로 바꿔보기도 하였다.
"자동차 그만 세우고 앞으로 보내볼까? 앞으로 앞으로!"
처음에는 시끄럽게 떠드는 엄마를 귀찮아 하던 아가는 '아니야' 라든지 '그래'같은 말을 하며 조금씩 무언가 말을 하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반복되는 '자동차 진열' 속에서 어떤 말을 어떻게 해 줘야할지 도무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변화를 줘 봤자 "위험해! 차가 오고 있어!", "어떻게 해! 구급차를 불러줘!"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 연출뿐이었다.
"꿈이야, 우리 자동차 그만 갖고 놀고 책 읽을까?"
"으음으음~"
결국 제 풀에 지친 나는 아가를 재우기 전에 꼭 혼자 소리내어 동화책을 읽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수면 교육을 시작한 꼴이 됐다. 혼자 열 권 정도 읽는다 치면 아가가 다섯권 정도는 관심을 보여줬는데 그 정도면 성공이라 생각하며 아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는 자기위안을 얻게 되어 한동안 이 패턴을 계속해서 유지해 나갔다. 이 패턴을 통해 어느순간 아가는 '자동차'나 '소방차', '구급차'라는 단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엄마가 어떤 말을 했을 때 그 단어가 나오는 책을 집어오는 상황을 연출했다. 옆에서 시끌시끌 읽을 땐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 같았는데 은근히 내용을 듣고 있었다는 생각에 더 신이나서 책을 읽히게 되었다.
체계적인 교육과정으로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서 우리 꿈이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만 '보통의 아이들' 역시 이러한 과정으로 말을 배우고 있는데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절대 들지 않는다. 우리 아가도 말이 조금 늦게 트이는 '보통의 아이들'일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