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와 인어공주

by 행복한꿈

어린이집에서 종종 뮤지컬을 보러 가는데 아가가 언어표현을 하지 않을 땐 그 내용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오늘 어디 가는구나 정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이후로는 등원길 또는 하원길에 어린이집 스케쥴을 대화하기 시작했는데 아가는 소풍. 특히 뮤지컬을 보러 가는 것을 참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흥이 많아 이런 저런 만화 주제곡은 어느정도 외우고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뮤지컬을 보고 온 날은 더욱 더 신나게 그 노래를 부르며 하원하곤 한다. 우리 아가가 몇 달이 지나도 계속해서 응용하는 이야기는 피노키오와 인어공주이다. 사실 처음에는 발음이 불명확해서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몇 달동안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다 보니 아가가 어떤 타이밍에 어떤 어휘를 쓸 것인지 감이 와서 함께 호응해주며 문법을 교정해주기도 한다.


하루는 밥먹다가 뜬금없이 아가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아빠를 향해 외쳤다.

"싫어."

"응? 뭐라고?"

"싫어. 아빠 싫어."

갑자기 아빠가 싫다고 말하니 너무 당황스러워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아빠가 왜 싫어? 아빠는 꿈이를 사랑하는데 서운하시겠다."

"코가 길어셔."

마치 '아빠 코가 길기 때문에 아빠가 싫다.'로 판단될 수 있는 이 대화는 사실 아가의 거짓말놀이였다.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해서 코가 길어진 것이 밥먹다 말고 갑자기 생각나 아무 거짓말이나 하고는 '코가 길어진다'라고 표현한 것. 처음에 엄마가 '코기 길어져'의 발음을 잘 알아듣지 못하자 스스로 본인의 코를 손으로 쭉쭉 잡아당겨 코가 쌔빨게지고 말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깔깔거리고 웃어버렸다.

"그렇지. 거짓말을 하면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져. 장난치는 것도 재미있지만 거짓말을 하면 안 돼."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가의 모습에 '거짓말은 절대 안돼!'라고 단호하게 말하기 보다는 부드럽게 말하긴 했지만 거짓말을 하는건 안될 일인데 참 어렵긴 하다.


나는 평소에 쇼파에 앉아 이불을 덮고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밤 시간에 아가를 재우고 나면 안방에서 이불을 끌고 나와 쇼파와 한 몸이 되는데 요 며칠 아가가 잠을 안 자고 장난을 치려고 해 '그러면 꿈이는 오늘 혼자 자요. 엄마는 밖에 있을래요.'하고 쇼파로 나오곤 했다. 그 뒤를 졸졸졸 따라나온 우리 아가는 '엄마 곤쥬님.'이라고 말을 했는데 아가가 화가 난 엄마를 녹이려는 필살 애교를 펼친 줄 알았는데 이불로 다리를 꽁꽁 싸맨 모습이 이 어린이집에서 보고 온 인어공주와 비슷했던 것 같다. 이유가 어찌됐든 '곤쥬님'이라는 단어 자체에 녹아버리자 아가는 그 후로도 하루에 몇 번씩 엄마는 곤쥬님! 하고 외쳐대더니 이제는 '곤쥬님' 발음이 정말 훌륭하다. '엄마는 공주님이고 꿈이는 왕자님!'


몇십년전, 가정에 TV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TV는 바보상자라고 경계의 대상이 되긴 했지만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모님 밑에서 자란 우리 자매는 TV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특히 일요일 아침과 낮에 방영되던 만화영화를 참 좋아했는데 책을 좋아하는 언니와는 달리 누군가 환경을 조성해줘야만 책을 읽던 나는 대다수의 전래동화를 '은비까비의 옛날옛적에'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되었다. 그런데 요즘 아가들은 그런 전래동화를 잘 읽지 않는건지 학교에서 일하다보면 '콩쥐팥쥐'와 같은 기본적인 동화조차 잘 모르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나는 전래동화 특유의 '권선징악'을 절대적으로 믿지는 않지만 아이들은 어느정도 그러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아가가 그러한 전래동화를 잘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시중에 나온, 그림체 예쁘고 인기 많은 전집들은 창작동화나 자연관찰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전래동화 그림체 자체가 어른인 내가 봐도 재미가 없고 어둡다.

아가가 '공주님, 왕자님'에 대해 호감을 갖는 것 같아서 가끔 공주님이 나오는 전래동화 또는 동화뮤지컬을 보여주곤 하는데 옛날이야기이다 보니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산, 바다, 계곡과 같은 자연환경이 많이 나와 관련된 어휘도 노출할 수 있어 만족하며 몇 번이고 보여주고 있다. 다만,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종종 이상한 스토리에 헉 하고 놀랄 때도 있다. 가령 서동요. 이거 분명히 수능에도 나올 정도로 문학적으로도 중요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사실 요즘 세상에 이러면 잡혀가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렇게 이상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다 듣고 난 후 '꿈이야, 저건 옛날 이야기야. 요즘 세상에 저러면 큰일나.'와 같은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한다. 알아듣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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