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격의 장점이자 단점은 '현실을 쉽게 받아들인다'라는 것이다. 임신 중, 태교 중에는 우리 아가가 영재가 될 것만 같아 어떻게 하면 그 영재성을 제대로 발현시킬지에 대한 상상도 해 보았는데 정작 키우다보니 우리 아가는 '안먹는 아가'이며 '또래에 비해 몸집이 작고','말이 느린'아가이다. 다행히도 대근육 발달이 빠르고 또래보다 운동신경이 좋은 편인데 그렇기 때문에 '안 먹는데 살도 찌지 않고','뛰어 노느라 대화할 시간이 없는'특징이 있다. 아가의 언어에 관심을 가진 지 어느덧 1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지치지 않은 배경은, 44개월이나 되었지만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이 상황에 대해 문제의식은 있으나 크게 걱정하지 않는 긍정적인 성격이 주효했다. 만일 우리 아가가 1년째 무발화상태였거나 발전하는 모습이 보여지지 않았다면 나는 당장 센터나 병원에 갔어야 했겠지만 우리 아가는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내며 40개월 이후부터는 하루가 다르게 '이런 말을 할 줄 아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앞으로 80년 이상을 말하며 살 건데 몇 달 늦은건 큰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조금 경계해야 할 문제가 있으니, 그것은 내 성향의 끝에는 '합리화'라는 무서운 무기가 있다는 것이다. 아가 언어에 신경을 쓰는 편이기 때문에 나는 아가가 무슨 말을 하든지 유심히 듣고 있다가 그 말을 다시 정확한 발음이나 문법으로 되받아 주곤 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그 문법을 바로 받아들여 아가가 고쳐말하는 것이지만 그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버리면 질려버려서 입을 열지 않을 까봐 그냥 한 번 언급해주는 방법을 쓰고 있는데 예를들어
"동생가 혼내줘."
라고 말을 하면 반드시 더 긴 문장으로 풀어 말해주곤 한다.
"엄마가 동생을 혼내줘요?"
"응"
"엄마가 동생을 왜 혼내줘요?"
"동생가 뺏어"
"동생이 꿈이 장난감을 뺏었어요?"
"응"
"그래서 꿈이가 화가 났어요?"
"동생가 자꾸자꾸 뺏어. 혼내줘."
'을,를,이,가'가 등장한 지 꽤 되었는데도 우리 아가는 자꾸만 '00가'라고 조사를 통일시켜 버리곤 했는데 이렇게 대화를 해 나간지 몇 달이 지난 요즘 우리 아가는 '를'도 즐겨 말해 주고 있다. 물론 문법적으로 온전치는 않다.
"엄마를, 동생가, 혼내"
"엄마가 동생을 혼내줘요?"
"응"
"동생이 엄마를 혼내요?"
"응"
"누가 누구를 혼내야 하는거지? 엄마가 혼내줄까?"
"응.엄마가 동생을 혼내줘."
언어적으로 우수한 아가를 키우고 있다면야 아가가 조사로 '을'을 썼는지 '가'를 썼는지정도는 신경쓸 일이 아닐 수도 있으며 구어체 문장을 구사함에 있어 이렇게 주어와 서술어를 꼬박꼬박 붙여가며 되받아 주지도 않을 텐데 우리 꿈이는 언제나 자신이 한 말을 다시 한 번 완전한 문장으로 다시 듣곤 한다. 그리고 나는 어느순간 또다시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오빠, 우리 아가, 지금은 말이 이렇게 늦지만 나중에 학교 들어가면 언어영역을 잘 할 것 같아. 엄마가 조사 수정해 주고 주어 서술어 꼬박꼬박 챙겨주고 몇 달동안 문법 수업 듣고 있는거잖아."
"언어 지연 아이들이 학교 가서 일반 아이들에 비해 언어쪽 학업이 우수하다는 자료 혹시 없을까?"
사실 찾지는 못했다만. 우리 아가가 그렇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