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화의 품질이 브랜드 성과를 결정짓는 이유
“이거 무슨 말이야…?”
전투 중이던 유럽 유저가 채팅창에 뭔가를 써 내려갑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한국 유저의 화면 하단에 영어 문장이 자동으로 떠오릅니다.
“오른쪽에서 적이 다가오고 있어!”
그 순간, 두 플레이어의 움직임이 맞춰졌습니다. 서로의 말이 통하자, 전략이 되고 협업이 되었습니다. 어색하던 플레이가 마치 오래된 팀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이건 단지 멋진 장면이 아니라, 오늘날 게임에서 AI 기반 실시간 번역이 만들어낸 현실입니다.
MOBA, FPS 같은 게임들은 이제 말이 통하지 않아도 함께 싸우고, 웃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블리자드는 "Think Globally"라는 core value를 바탕으로 한 현지화 전략을 철저히 따릅니다.
이는 전 세계 플레이어들이 각자의 문화적 배경과 언어에 맞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게임 콘텐츠를 현지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블리자드는 단순히 번역을 넘어, 게임의 스토리, 캐릭터, 유머 등을 현지 문화에 맞게 조정하여 플레이어가 더욱 몰입하고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나 오버워치의 한국어 버전은 단순히 ‘번역된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욕설이나 밈은 ‘한국식’으로 바뀌었고, NPC의 어투나 퀘스트 명도 우리말 정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구성됐습니다.
예를 들어, WoW에서 NPC가 “Don’t piss me off”라고 말할 때 단순히 “화나게 하지 마세요”가 아니라,
“아, 진짜 성질나게 하네”처럼 한국 유저의 감정선에 맞춰 표현되었습니다.
이런 ‘정서적 번역’은 유저의 몰입감을 높였고, 결국 장기 플레이, 높은 결제율, 충성도 높은 커뮤니티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블리자드 이후에 한국에 들어온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 (LoL) 역시 꾸준한 현지화 품질 관리로 한국에서 PC방 점유율 1위를 유지하며, 게임과 유저 간 감정적 유대를 지켜냈습니다.
고품질 현지화의 중요성은 실제 수치로도 증명됩니다.
스팀 (STEAM) 유저 리뷰 분석 결과, 현지화 품질이 높다고 평가한 유저의 80% 이상이 해당 게임을 추천했습니다. 이들 게임은 평균보다 2~3배 높은 유지율과 결제율을 보였습니다
"원신 (Genshin Impact)"는 13개 언어 텍스트, 4개 언어 음성으로 철저한 현지화를 진행했습니다.
특히, 한국 유저는 UI부터 더빙까지 모두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고, “이건 한국 유저를 위한 게임이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이러한 감정적 연결은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에서만 약 3억 2천만 달러의 매출이 발생했고, 글로벌의 경우, 1.8억 다운로드, 90억 달러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즉, 몰입과 공감이 곧 결제 전환으로 이어졌다는 뜻입니다.
"위처 3 (The Witcher 3)"도 15개 언어 번역으로 4천만 장 이상 판매되며, 장기 흥행을 유지했습니다.
반대로, "어쌔신 크리드 3 (Assassin's Creed III)"의 대표적인 번역 오류인 (보스턴 학살 당시 영국 장교의 대사) "Damn you, Fire!"를 "불이야!"라던가 문화적 부적합으로 유저 이탈, 부정적 입소문, 평점 하락을 경험했습니다. 즉, 번역의 품질은 유저 감정과 브랜드 이미지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입니다.
과거 ‘현지화’는 게임 출시 전 텍스트를 각국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AI 기반 실시간 번역은 게임 플레이 도중에도 채팅, 음성, 명령어 등을 실시간으로 번역하며, 전혀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유저끼리도 팀 전략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문화권이 다른 플레이어가 서로 신뢰하며 협력하는 플레이가 가능해졌습니다. 그 결과, 플레이 시간은 늘고, 시즌 패스 및 스킨 구매율도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포트나이트 (Fortnite) 역시 이 흐름을 반영하며, AI 기술을 이용한 대화형 콘텐츠의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2025년 7월 기준, 포트나이트의 AI 채팅 기능은 모든 유저 간 실시간 채팅에 자동 적용되는 시스템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스타워즈 시즌 콘텐츠에서 도입된 다스 베이더와의 AI 대화 기능은 일반 유저 간 대화가 아닌 특정 NPC와의 상호작용 이벤트에 한정된 기능이었습니다. 또, 언리얼 에디터를 활용한 크리에이터 전용 AI NPC 기능도 준비 중인데, 이것 역시 NPC와의 대화에 AI를 적용하는 구조입니다.
즉, 현재까지 포트나이트에서 생성형 AI가 활용되는 범위는 특정 시즌, 특정 콘텐츠, 크리에이터 환경에 한정되어 있으며, 일반 유저 간 채팅에 실시간 AI 번역이나 생성형 AI가 일괄적으로 적용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적 적용조차도, 유저의 몰입과 감정적 연결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존재합니다. 지난해 콘퍼런스에서 소개된 해긴(HAEGIN)의 "플레이투게더" 사례는 번역을 넘어 ‘대화’로 확장된 AI 활용을 보여줍니다.
"플레이투게더"는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 소셜 모바일 게임입니다. 지원 언어만 13개에 달하는 이 게임에서, 한 유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 있는 NPC가 진짜 사람처럼 말을 걸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해당 유저 피드백에서 출발해, 해긴은 룸메이트 NPC가 말을 거는 생성형 AI 챗봇을 도입했습니다.
해긴은 초기에는 GPT-3.5/4 기반 모델을 테스트했지만, 비용 부담과 낮은 리텐션이라는 벽에 부딪혔습니다. 이후 Claude 3 Haiku로 전환하면서, 사용량이 3.6배 증가하면서 비용도 증가했으나, 기존 대비 토큰당 비용은 절반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특히, 유료 챗 포인트 역시 16배 증가하면서 ROI도 개선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유저가 NPC와의 대화를 ‘진짜 소셜 관계’처럼 느꼈다는 것입니다.
“게임이 나를 기억해 준다”는 감정이 생기고, 그 감정은 실제 결제로 이어졌습니다.
실시간 번역은 단순히 단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수준이 아닙니다.
이 기술은 AI 언어 모델이 사람처럼 문맥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의도를 전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인 흐름은 이렇습니다:
1. 음성 인식(STT): 사용자의 말을 AI가 듣고, 텍스트로 바꿉니다. 예를 들어, “뒤를 조심해!”라는 음성을 컴퓨터가 문자로 바꿔 인식합니다.
2. 문맥 분석: 단어 하나하나가 아니라, 어떤 게임 상황에서 나온 말인지, AI가 문맥을 파악합니다.
3. 자연스러운 번역 생성: 단순 직역이 아니라, 실제 플레이어들이 쓰는 말투로 번역합니다.
예) “Rush mid, I’ll frag” → “미드 밀자, 내가 잡을게”(한국어 번역)
4. 텍스트/음성 출력: 최종 번역 결과는 채팅창에 자동으로 표시되거나, 음성으로 재생됩니다. 즉, 다른 나라 유저가 쓴 말을 내 화면에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거죠.
이런 흐름은 보통 AI 모델과 음성 인식 기술, 실시간 반응 시스템이 함께 작동하면서 만들어집니다.
특히, 최근에는 서버에서 처리하던 작업을 일부 기기 안에서 처리하게 되면서, 속도와 반응성이 훨씬 빨라졌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을 모든 대화에 적용하기엔 운영 비용과 리소스 측면에서 만만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AI 번역은 유저가 입력한 문장을 클라우드 서버로 보내서 번역한 뒤 다시 유저에게 돌려주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동시 접속자 수가 많아질수록 서버와 AI 모델이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따라서 실제 운영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이 활용됩니다:
중요 순간에만 선택 사용: 글로벌 파티플레이, 이스포츠 매칭, VIP 사용자 대화 등 특정 상황에만 실시간 번역 적용
자주 쓰는 문장은 미리 번역 후 캐싱: "도와줘!"나 "이쪽으로 와!" 같은 자주 쓰이는 문장은 미리 번역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캐시에서 불러오는 방식으로 속도와 비용 절감
하이브리드 번역 구조 운영: 간단한 번역은 무료 오픈소스 번역 활용, 복잡하거나 중요한 대화만 AI 번역을 적용해 비용과 품질을 균형 있게 조절
정리하자면, AI기반 실시간 번역의 성패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운영 전략에 달려 있습니다. 게임을 위한 AI 기술은 실제 서비스를 고려한 운영 전략이 함께 설계되어야, 몰입과 효율, 비용까지 모두 잡을 수 있습니다.
AI 번역은 더 이상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저와 브랜드 사이에 감정을 연결하고, 몰입을 유지하며, 신뢰를 만드는 ‘경험 설계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제 ‘언어’는 UI 텍스트나 음성 대사를 넘어서, 브랜드가 유저에게 보내는 정서적 메시지입니다.
언어를 넘는 몰입, 그 경험이 유저와 게임 사이의 신뢰를 만들고, 그 신뢰가 브랜드 충성도와 매출이라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 이제, 현지화도 어느정도 마무리되었으니, 다음편에서는 게임 사업을 하는 분들께 많은 고민을 안겨주는 마케팅 캠페인과 관련하여 AI가 어떻게 부담을 덜어주면서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 위 내용은 저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문에서 언급된 기업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