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반장/도우반장의 생산지에 가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중국식재료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라오간마는 어느새 외국에서 매콤한 맛을 넣은 중식을 만들기에 두루 쓰이는 식재료가 되었다. 130여 개 국가에 수출을 하는 구이저우성의 자랑, 라오간마를 쓰는 야매 마파두부 레시피가 종종 눈에 띄는데 쓰촨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청두 사람들이 VPN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런 레시피가 공유되는 외부 소셜 미디어나 웹사이트 접속을 못하는 게 참으로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라오간마 넣은 마파두부는 청두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알게 되어도 갖은 핍박과 비난을 받기 좋을 식재료다. (참고로 우리집 냉장고에도 있는 라오간마를 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길.)
정통 쓰촨식 마파두부, 혹은 회과육/회이구어로우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식재료는 두반장이다. 것도 우리가 한국 슈퍼마켓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이금기 두반장이 아닌 피시앤(郫县)두반장(豆瓣酱)이어야 한다. 대량생산을 위해 발효기간이 짧고 밝은 선홍색에 제형이 묽고 부드러운 유명 브랜드의 두반장과 달리 피시앤 두반장은 붉은색 레이블이 좀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용물엔 쓰촨의 역사와 자부심, 정성과 시간이 꽤나 들어간 발효 제품이다. 인공 첨가물 없이 잠두콩, 고추, 소금만으로 만든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8년까지 자연 발효를 시키는데 우리네 고추장처럼 매일 항아리를 열어 햇볕을 쬐고 수작업으로 뒤섞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니 첫맛은 짜지만 끝맛에서 발효된 콩의 깊은 감칠맛과 복합적인 풍미가 올라온다. 피시앤 두반장의 진가는 기름에 볶았을 때 나오는데, 낮은 온도에서 기름에 충분히 볶으면 고소하고 깊은 맛이 확실히 살아나니, 이 과정을 거쳐 잘 볶아낸 쓰촨요리는 이미 그 결이 다르다.
오늘날 피시앤 두반장의 지역, 피두구는 2016년 피시앤(Pixian, 郫县)이라는 현에서 구로 승격되며 이름도 피두로 변경되었다. 청두 시내 중심부에서 북서쪽으로 10 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해 대중교통으론 한 시간가량, 택시로도 30분 이상 열심히 달려가야 하는 곳이다. 과학기술 대학교와 연구단지, 관련 기업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 관광객이 이곳까지 찾아오지는 않지만 두반장을 만드는 과정을 포함 쓰촨 음식에 대한 정보를 얻고 배울 수 있는 사천요리박물관과 피시앤 두반장 박물관이 있으니 쓰촨 음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나절 가량 시간을 내어 들러볼 만하다.
두반장의 생산자는 단순히 하나의 기업이 아니라, 사천성 청두시 피두구 내에서 지리적 표시 보호인증을 받은 약 70여 개의 업체들을 통칭한다. 피시앤이 피두구로 승격되어 지역의 명칭이 바뀌었음에도 두반장의 명성 때문에 피시앤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사용되며 전 세계적으로 통용된다. 피시앤 두반장의 탄생은 17세기 청나라 초기의 대이주와 관련이 있는데 푸지앤성에서 쓰촨성으로 이주해 온 진수신(Chen Shouxin)이라는 사람이 길을 오던 중,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잠두콩에 습한 날씨 때문에 곰팡이가 피고 발효된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버리지 않고 소금과 현지의 고추를 섞어 장을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아 주변에 퍼지기 시작한 것이 피시앤 두반장의 시초다.
피시앤 두반장의 생산은 기계 공정보다는 자연과 시간의 섭리를 따르는 슬로우 푸드에 가까운데 크게 아래 세 과정을 거친다.
1. 잠두콩 발효 (누룩 제조)
먼저 엄선된 잠두콩의 껍질을 벗겨 삶은 뒤, 밀가루와 황국균을 섞는데. 이를 발효실에서 약 48시간 동안 배양하여 하얀 곰팡이가 핀 콩 누룩을 만들고. 이후 소금물에 담가 6개월 이상 1차 숙성하며 깊은 감칠맛의 토대를 마련한다.
2. 고추 절임
쓰촨의 대표적인 고추, 얼진티아오(二金条)를 소금에 절여 2~3개월간 발효시키는데 이 과정을 통해 고추 특유의 아린 맛은 빠지고, 선명한 붉은색과 부드러운 매운맛이 생겨난다.
3. 산소를 공급하고 숙성시키는 과정
숙성된 콩 베이스와 고추 절임을 전해 내려오는 레시피를 참고해 섞어 대형 흙항아리에 담는데 이때 특히 피시앤 두반장만의 시간과 노력을 담게 된다. 매일 아침 수작업으로 장을 뒤집어 산소를 공급하고 낮에는 덮개를 열어 강한 햇볕을 쬐며 수분을 농축한다. 밤에는 밤이슬을 맞히며 온도를 낮추고 자연적인 습도를 조절한다.
숙성 기간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색상과 질감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1년 숙성하면 색상이 붉고 매콤한 맛이 살아 있어 대중적인 요리에 적합하고 3년 이상 숙성하면 검붉은 갈색으로 변하며, 수분이 적고 꾸덕해지는데 이때부터는 단순한 매운맛을 넘어 깊은 훈연향과 감칠맛이 폭발한다. 오래 숙성되면 무조건 더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용도와 만드는 사람이 원하는 맛에 따라 숙성시간이 다른 두반장을 섞어 쓰거나 취사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배웠다.
두반장이 되기 위한 첫 해, 고추의 색과 그 살결이 그대로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며 잘 숙성된 두반장은 검붉은 색으로 변하며
5년 이상 숙성이 되면 갈색에 가깝고 수분이 줄어들어 진득한 질감으로 변한다. 숙성이 오래되었다고 무조건 좋은 것만도 아니며 이를 잘 쓸 수 있는 요리사의 역량이 중요하다.
두반장 만드는 과정을 경험하고 주방으로 들어와 요리 실습을 했다.
피시앤 두반장을 잘 볶아 만들어본 마파두부엔 쓰촨의 깊은 맛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