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_ 완벽이라는 궤도를 벗어날 때

정해진 길을 벗어난 삶의 방식

by Evanesce

Deviate [ diːvieɪt ]

1. (일상, 예상 등을) 벗어나다

2. 일탈하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일정한 길 위를 걷도록 길들여진다. 눈을 뜨면 정해진 순서대로 하루를 시작하고, 누구나 비슷한 속도로 걷고, 멈추고, 웃고, 반복한다. 안정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는 어느새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조차 잊은 채, 단순히 움직이기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 반복은 처음에는 위로였다. 정해진 대로만 하면 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다른 사람이 앞서간 길을 따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성공이라는 길로 저절로 들어설 수 있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러한 반복적 일상이 나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이 '살아 있다'라는 증거마저 희미하게 지워 버리며, 익숙한 길 위에서 오히려 점점 자신을 잃는다.


이때, 필요한 것은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이탈의 의미는 아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다시 '숨을 쉬기 위해' 택하는 방향의 전환이다.


일탈이라는 단어는 두려움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규칙을 벗어나면 무너질 것 같고, 질서에서 벗어나면 혼란이 찾아올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혼란은 오히려 끝없이 반복되는 동일함 속에서 찾아온다. 그 반복이 감정을 잠식하고, 마음의 온도를 빼앗고, 결국 스스로를 납작하게 만든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일탈이 필요하기도 하다. 반항이 아닌 회복의 행위이며, 파괴가 아닌 생존의 방식이 될 수 있으니까. 우리가 하루의 리듬을 살짝 비틀고, 일상의 박자를 일부러 어긋나게 할 때, 그 틈새로 스며드는 빛과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정해진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걸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이 얼마나 다채로운 표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깨달을 시간이 주어진다. 그 순간만큼은 익숙함이 낯섦으로 변하고, 낯섦은 다시 삶의 온기를 되살린다.


작은 일탈로 부족할 때도 있다. 삶이 너무 단단히 굳어버렸기에, 미세한 흔들림은 흡수되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더 큰 일탈, 즉 자신을 송두리째 옮겨놓는 용기일 것이다.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속도로 다시 걷기 시작하는 사람들, 익숙한 관계의 틀을 끊고 홀로 서는 이들, 혹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동안 아무 목적 없이 떠나는 사람들. 사회의 시선으로 볼 때 이러한 사람들은 불안하고 미숙해 보이거나, 때로는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들에게는 그 벗어남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올 수 있는 행위가 될 것이다.


사회가 정하고 모두가 따르는 그 길을 벗어날 때, 우리는 방향을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라는 나침반을 되찾는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단지 세상의 좌표를 잃는 것이지, 존재의 방향을 잃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길을 잃었을 때 진짜 길을 발견할 수 있듯이 말이다.


삶은 직선이 아니다. 누구도 완벽한 궤도를 그리며 살아갈 수 없다. 직선은 안전해 보일지 모르나, 그 속에는 아무런 변화도, 기억도 남지 않게 된다. 굴곡진 곳에서 물이 흐르고, 틈새가 있어야 빛이 스며든다. 그리고 우리는 그 틈 속에서 자신을 다시금 본다.


완벽하게 다져진 길 위에는 발자국이 남을 여지가 없듯, 규칙적이기만 한 삶 속에서는 자신만의 흔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비틀림을 사랑하려 한다. 불완전한 궤도 위에서야 인간은 성장한다. 흔들림은 불안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징표이니까.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다, 벗어나면 위험하다고. 안정된 자리를 떠나면 후회할 거라고. 하지만 정작 위험한 것은 머무는 행위이다. 같은 자리에 오래 머무를수록 마음은 굳고, 생각은 그 틀에 갇힌다. 의도된 일탈은 파괴가 아닌 환기이다. 내 안의 공기를 바꾸고, 오래된 나를 낯설게 만들어 새로운 나로 이끌어 주는 것.


한때 나는 완벽한 질서를 믿기도 했다. 계획을 세우고, 그 안에서 정돈하며, 틀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갈수록 이상하게도 삶이 멀어져 감을 느꼈다. 내면의 무언가가 천천히 식어갔고,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의 본 궤도를 비틀었다. 아무 목적도 없이 먼 길을 떠나보고, 글을 다시금 꺼내 써보기도 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서 내 속도의 걸음을 되찾으려 했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의 시선만은 변화가 생겼다. 둘러싼 공기의 결이 바뀌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작은 일탈의 감각이 나를 다시 살아 숨 쉬게끔 만들어 주었다.


이제는 알게 되었다. 벗어남이 나를 잃지 않게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벗어남 속에서 나는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음을. '일탈'은 더 이상 반항이 아닌 다짐의 의미이다. 조금의 흔들림을 허락하며, 내 안의 균열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의 궤도를 의도적으로 벗어나 본다. 세상이 정해준 선을 따라가는 대신, 내 안의 방향으로 조금씩 기울어져 본다. 벗어난다는 것은 실패가 아닌 자신에게 돌아가기 위해 거쳐야 할 길이고, 오늘의 나는 지금 그 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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