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_ 텅 빈 마음, 새벽의 문 앞에서

상실을 여백으로 받아들이는 방법

by Evanesce

Emptiness [ ˈemptinəs ]

1. 공허(감), 허무

2. 텅 비어 있음

3. 텅 빈 곳


살다 보면 누구나 설명하기 힘든 공허함과 마주할 때가 있다. 방향을 잃었을 때, 오랫동안 붙잡아 온 꿈이 무너졌을 때, 또는 앞으로 걸음을 내디딜 힘조차 사라졌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는 텅 비어있는 듯한 공허의 울림이 퍼져온다.


그 순간, 쉽게 두려움에 잠기기 쉽다. 마치 모든 것이 끝나버린 듯, 더 이상 아무 의미도 남아 있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이를 바라보자. 그 순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약간만 돌려본다면, 공허함은 상실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여백일지도 모른다.


가득 찬 컵에는 더는 아무것도 담을 수가 없다. 아무리 좋은 음료라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술일지라도 이를 담아낼 수가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비어있는 컵은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 새로운 색채로 채워나갈 수도,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나갈 수가 있다. 공허함도 그렇다. 비어있기에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고, 무너져 내린 자리에서야 다른 가능성이 뿌리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불교에는 '공(空)'이라는 사상이 있다. 비어 있음은 단순한 '없음'이나 '비어 있음'의 의미가 아니라, '모든 것이 공하다'라는 선언과 함께 비어 있다는 사실 그 자체조차도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말한다. '공'은 무(無)가 아닌 관계의 그물망이며, 고정된 실체가 없는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는 관점이다.


이 속에는 비어 있음이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의 근거로 작용한다는 역설이 담겨 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는 것들, 결핍이 아닌 가능성, 사라짐이 아닌 시작의 자리, 그러한 점들이 공허함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사실, 공허함을 마주하고 서 있을 때 우리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게 되면 무너져 내릴 것만 같고, 끝끝내 혼자 버려진 듯한 불안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순간에야 비로소 스스로에게 이와 같이 물을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붙잡아온 것이 정말 나를 이루는 것들이었을까."



한 사람은 오래도록 바라던 직업을 잃고서 삶의 의미를 잃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는 그 공백 속에서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길을 찾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공허함은 그렇게 우리에게 묻는다. 그리고 결국 새로운 길을 고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준다.


겨울철에 나무는 자신이 지닌 모든 잎을 잃어버린다. 더욱 앙상해진 가지는 나무가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은 이 역시도 봄을 기다리는 나무의 몸짓이다. 잎을 떨군 나무는 더 깊이 뿌리를 내려, 그 뿌리에서 다시 봄날의 새순을 밀어 올린다.


우리의 상실 또한 다른 것이 아니다. 겉으로는 공허를 마주한 순간 모든 것이 끝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단지 넘어야 할 또 다른 문턱에 불과할 뿐이다. 깊은 겨울을 지나 새로운 봄이 오는 것처럼, 어둠을 건너야 새벽이 오는 것처럼, 공허함은 새로움을 품은 조용한 예고이다.


비워졌다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무엇이든 새롭게 그려 넣을 수 있다는 가능성의 선언이기도 하다. 비워야 채울 수 있는 것처럼, 공허함은 우리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이고, 아직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공허함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다. 잠시 멈추어 서게 하고, 다시 바라보게 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도록 하는 초대하는 시작의 자리인 것이다. 텅 빈 마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 여백은 결핍이 아닌 가능성이고, 아직 물들지 않은 순백의 도화지와 같다.



"공허함은 상실이 아닌 시작이며, 비움은 결핍이 아닌 채움으로 향하는 문이다."



이러한 문 앞에 서 있는 지금, 우리의 새로운 하루는 이미 조금씩, 조용히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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