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온도를 만들기로 한 날의 기록
한동안 내 안에서 아무 감정조차 움직이지 않는 듯한 시간이 있었다.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기대하는 일이 자연스럽지 않았고, 마음이 반응하기 이전에 머리가 먼저 상황을 계산해버리곤 했다. '이 감정이 의미가 있을까', '지금 이걸 시작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라는 생각이 앞서다 보니 스스로 감정을 차단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다보니 어느 순간에는 정말로 마음이 식어버린 줄만 알았다. 다시는 예전처럼 뜨겁게 무언가를 바라거나, 어떤 가능성에 마음이 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더는 이렇게 지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이 움직이길 기다리는 쪽이 아니라,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그동안 '자연스럽게 회복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에만 기대고 있었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저절로 살아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오래도록 방치된 악기가 언젠가 스스로 소리를 낼 것이라 믿는 것은 욕심이었고, 내가 먼저 손을 뻗어 현을 조여야만 비로소 울림이 생긴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감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다시 살아날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시작점 이전으로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다는 것은 아니며, 내가 겪었던 시간들을 지워버리고 예전의 나로 다시금 돌아가고 싶은 마음 역시도 없다. 그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생각에 이르렀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시간들은 필요했다. 그동안의 공백이 있었기에 지금의 미세한 떨림이 더 또렷하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기에. 오래 굳어 있던 관절이 겨우 움직이기 시작할 때 느껴지는 그 묘한 감각처럼, 아프면서도 반가운 감정이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이제는 감정이 움직일 때 막아서지 않고, 끝까지 흘러가도록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의 시간이 모두 허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멈춰 있었다기보다는, 길 옆에 잠시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던 것 뿐이다. 멀리 돌아온 것 같아도, 사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의 감정은 단순한 재시동이 아니라, 지난 시간들을 통째로 들쳐업고서 다시 한 번 걸음을 떼려는 일에 가깝다.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때보다 조금 더 무겁고 단단해진 나로서 같은 길을 다시 밟아보려는 느낌과 같다.
물리적인 시간이 분명이 흘러갔음은 부정할 수 없으나 마음이 그것을 나이로 계산하지 않으려 결정한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과거를 후회하며 지우는 방식이 아닌 과거 위에 새로운 층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말해 본다. 그게 더 자연스럽고, 단단하게 쌓아낼 수 있는 길이라는 믿음을 가져 본다.
마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예전처럼 흐지부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압박에 괜시리 조급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한다. 불씨가 다시 살아났다고 해서 곧바로 불꽃을 피우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타오르도록 두려 한다.
불을 지키는 일은 불을 일으키는 일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안다. 이 감정이 어디로 나를 데려갈지는 알 수 없으나, 예전과는 다르게 스스로에게 '이 마음이 다시 살아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되뇌인다. 그리고 그 이유를 억지로 찾아내려 하기 보다, 그 이유가 스스로 드러날 때까지 조용히 함께 걸어가 보려 한다.